[윤병화의 e글e글] 기록의 정신 조선왕조실록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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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병화의 e글e글] 기록의 정신 조선왕조실록 ②
  • 전국매일신문
  • 승인 2020.11.24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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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병화 성남미래정책포럼 이사장

‘그럼 글 쓰는 사람만 다냐, 글 모르면 어떻게 하느냐’ 해서 나중에는 언문상소를 허락해 주었다. 그래도 불만 있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그래도 글줄 깨나 해야 왕하고 소통하느냐, 나도 하고 싶다’ 이런 불만이 터져 나오니까 신문고를 설치했다. ‘그럼 와서 북을 쳐라’ 그러면 형조의 당직관리가 와서 구두로 말을 듣고 구두로 왕에게 보고했다.

이래도 또 불만이 터져 나왔다. 신문고는 왕궁 옆에 매달아 놓으니 그러니까 지방 사람들이 뭐라고 했냐면 ‘왜 한양 땅에 사는 사람들만 그걸 하게 만들었느냐, 우리는 뭐냐’ 이렇게 된 것이다. 그래서 격쟁이라는 제도가 생겼다. 격은 칠격자이고 쟁은 꽹과리 쟁(錚)자이다. 왕이 지방에 행차를 하면 꽹과리나 징을 쳐라. 혹은 대형 현수막을 만들어서 흔들어라, 그럼 왕이 ‘무슨 일이냐’ 하고 물어봐서 민원을 해결해 주었다. 이것을 격쟁이라고 한다.

우리는 이러한 제도가 흔히 형식적인 제도겠지라고 생각하지만 그게 아니다. 예를 들어 정조의 행적을 조사해 보면, 정조의 재위 기간이 24년이다. 24년 동안 상소, 신문고, 격쟁을 해결한 건수가 5000건 이다. 이것을 제위 연수를 편의상 25년으로 나누어보면 매년 200건을 해결했다는 얘기이고, 공식 근무일수로 따져보면 매일 1건 이상을 했다는 것이다.

서양의 왕 가운데 이런 왕이 있었나? 이것이 무엇을 말하느냐면 이 나라 백성들은 그렇게 안 해주면 통치할 수 없으니까 이러한 제도가 생겼다고 봐야 한다. 이 나라 백성들은 만만한 백성이 아니다. 그러면 최소한도의 합리성이 있었을 것이다. 그 합리성이 무엇인가?

첫째는 기록의 문화이다. 공식 근무 중 사관이 없이는 왕은 그 누구도 독대할 수 없다고 경국대전에 적혀 있다. 우리가 TV 사극에서 간신배 만나고 장희빈 만나고 하는 것은 다 팩트가 아니다. 왕은 공식 근무 중 사관이 없이는 누구도 만날 수 없게 되어 있다. 심지어 인조 같은 왕은 너무 사관이 사사건건 자기를 쫓아다니는 것이 싫으니까 어떤 날 대신들에게 ‘내일은 저 방으로 와, 저 방에서 회의할 거야’ 그러고 도망을 갔다.

거기서 회의를 하고 있었는데 사관이 임금을 놓쳤다. 어디 계시냐 하다가 지필묵을 싸들고 그 방에 들어갔다. 인조가 ‘공식적인 자리가 아닌데서 회의를 하는데도 사관이 와야 되는가?’ 그러니까 사관이 이렇게 말했다. ‘전하, 조선의 국법에는 전하가 계신 곳에는 사관이 있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적었다. 너무 그 사관이 괘씸해서 다른 죄목을 걸어서 귀향을 보냈다. 그러니까 다음 날 다른 사관이 와서 또 적었다. 이렇게 500년을 적었다.

사관은 종7품에서 종9품 사이이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공무원제도와 비교를 해보면 아무리 높아도 사무관을 넘지 않는다. 그러한 사람이 왕을 사사건건 따라 다니며 다 적었다. 이걸 500년을 적는데, 어떻게 했느냐면 한문으로 써야 하니까 막 흘려 썼다. 그날 저녁에 집에 와서 정서를 했다. 이걸 사초라고 한다. 그러다가 왕이 돌아가시면 한 달 이내, 이것이 중요하다. 한 달 이내에 요새 말로 하면 왕조실록 편찬위원회를 구성한다.

사관도 잘못 쓸 수 있다. 그러니까 ‘영의정, 이러한 말 한 사실이 있소? 이러한 행동한 적이 있소?’ 확인한다. 그렇게 해서 즉시 출판한다. 4부를 출판했다. 4부를 찍기 위해서 목판활자, 나중에는 금속활자본을 만들었다.4부를 찍기 위해서 활자본을 만드는 것이 경제적인가, 사람이 쓰는 것이 경제적인가?

쓰는 게 경제적이다. 그런데 왜 활판인쇄를 했느냐면, 사람이 쓰면 글자 하나 빼먹을 수 있다. 글자 하나 잘못 쓸 수 있다. 글자 하나 더 쓸 수도 있다. 이렇게 해서 후손들에게 4부를 남겨주는데 사람이 쓰면 4부가 다를 수 있다. 그러면 후손들이 어느 것이 정본인지 알 수 없다. 그러니까 목판활자, 금속 활자본을 만든 이유는 틀리더라도 똑같이 틀려라, 그래서 활자본을 만들었다. 이렇게 해서 500년 분량을 남겨주었다.

유네스코에서 조사를 했다. 왕의 옆에서 사관이 적고 그날 저녁에 정서해서 왕이 죽으면 한 달 이내에 출판 준비에 들어가서 만들어낸 역사서를 보니까 전 세계에 조선만이 이러한 기록을 가지고 있다. 이것이 6400만자입니다. 그런데 6400만자는 1초에 1자씩 하루 4시간을 보면 11.2년 걸리는 분량이다.

 

[전국매일신문 전문가 칼럼] 윤병화 성남미래정책포럼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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