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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산책과 소로, 그 아름다운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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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산책과 소로, 그 아름다운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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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11.30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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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귀태 前 대전시 중구의원

나는 걷기를 크게 세 가지로 나눈다. 첫째 건강을 위한 산책. 둘째 철학을 위한 산책. 셋째 자연 그 자체를 사랑하기 위한 산책. 건강을 위한 파워 워킹, 철학자들의 산책, 그리고 자연 그 자체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산책 사이에는 흥미로운 차이점이 있다.

건강을 위한 파워 워킹에는 건강하지 못한 몸을 향한 걱정과 생명 연장의 꿈이 담겨 있고, 철학자들의 걷기에는 사유를 향한 최고의 도구로서 산책을 선택하는 의지가 담겨 있다.

이 두 가지의 공통점은 자아를 향한 열정적인 관심이다. 그런데 자연 자체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산책에는 건강이나 사유의 필요성을 뛰어넘어, 나를 위한 것만이 아닌 자연 그 자체와 소통하려는 의지가 담겨 있다.

철학자의 산책과 자연 예찬자의 산책을 비교해보니 흥미로운 차이점과 공통점들이 발견된다. 나는 철학자들의 산책을 대표하는 사람으로서는 발터 벤야민을, 그리고 자연을 사랑하는 이들의 산책을 대표하는 사람으로서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를 꼽고 싶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에게 숲과 호수 근처를 산책하는 것은 온갖 다채로운 사람들과 안부 인사를 나누며 마을을 산책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의미가 있었다.

바로 자연과 나, 오직 둘만이 소통하는 풍요로운 대화의 체험이었던 것이다. 소로가 지닌 영감의 보물 창고는 크게 두 가지였는데, 하나는 어린 시절부터 광적인 책벌레였기에 언제든지 비슷한 주제만 나오면 거의 문장 자체를 외워서 말할 수 있을 정도의 엄청난 독서 체험이었고, 두 번째는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싶어 했던 야생의 산책이었다. 산책조차도 그에게는 일종의 독서이자 글쓰기였다.

산책을 통해 그는 돌멩이 하나, 야생화 한 송이, 나무의 나이테 하나하나에 세심한 관찰력을 집중했고, 그는 자연의 몸짓 하나하나를 읽는 과정을 통해 매일 성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문학평론가이자 철학자였던 발터 벤야민이 산책자(플라뇌르·flaneur)라는 개념으로 이 복잡한 대도시의 온갖 진귀한 상품과 문화를 탐구하는 예술가의 일상을 훌륭하게 압축한 것처럼, 그보다 훨씬 오래전에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대도시가 아닌 숲속에서도 의미를 창조하는 걷기의 여행이 가능함을 발견했다.

벤야민의 산책은 상품과 문명의 의미를 밝히지만 본인은 더욱 외로워지고 우울해지는 군중 속의 고독이라는 위험을 안고 있었지만, 소로의 산책은 하면 할수록 더욱 즐거워지고 기쁨으로 가득 차는 충만한 일상 속의 여행이었다.

그것은 너무도 여행을 떠나고 싶지만 경제적 형편 때문에 한평생 한 고장에 머물러 살았던 소로가 발명한 ‘내가 있는 장소를 매일 낯설게 하기’라는 새로운 산책법이었다. 발터 벤야민의 산책이 플라뇌르, 도시 속의 정처 없는 헤맴이라면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산책은 손터링(sauntering), 즉 아무 목적도 없지만 결국 자연과의 공존과 합일을 이루는 걷기의 유토피아였다.

우리 현대인에게는 이 두 가지 걷기가 다 필요하지 않을까. 세상의 빠른 변화 과정을 포착하고 이해하기 위한 벤야민의 산책, 그리고 자연 속을 걸으며 원래 내가 탄생한 자리, 나라는 존재가 비롯된 본래 그러함을 사유하는 소로의 산책. 그 모두가 우리에겐 필요하다.

벤야민의 산책이 끊임없이 골똘히 생각하며 비판적인 안목을 기르는 사유의 긴장을 추구하는 걷기라면, 소로의 산책은 아무리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해도 모자랄 자연의 아름다움과 풍요로움 속에 나를 훅 던지는 사유의 이완을 추구하는 걷기다. 이 둘 사이에는 아주 중요한 공통점도 있다. 벤야민의 산책과 소로의 산책, 이 둘의 공통점은 뚜렷한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절대로 빨리 걷지 않고, 걷기 속에서 자유롭고 창조적으로 사유하는 것이다.

건강을 위한 파워 워킹도 아니고, 정해진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한 실용적인 걷기도 아닌, 그저 걷는 것 그 자체에 온몸으로 집중하는 걷기를 통해 두 작가는 자기 안의 눈부신 잠재력을 최대한 끌어낸 것이다.

[전국매일신문 기고] 김귀태 前 대전시 중구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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