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나이’라는 말, 원래 회갑 넘긴 이들의 나이였는데 지금은 어림없다. 사전도 ‘대개 80세 이상을 이른다.’고 양보(?)한 흔적이 보인다. 세상은 변한다.
역사연구로 애국 혼 불사른 단재(丹齋) 신채호 선생(1880~1936)은 회갑 전에 일본 제국주의의 감옥에서 생을 마쳤다. 그는 겨레가 잊었던 ‘선배’의 뜻을 찾아내 바로 세웠다.
지연 학연 권력연줄 돈줄 가문 같은 떳떳하지만은 않은 인연으로 ‘행님’ 행세하는, 조폭 같은 자들을 선배라 부를 수는 없다. 이유는 엄연하다. 신채호가 피로 쓴 ‘조선상고사’다. 스스로 선배 또는 선비이고자 했던 붉은 마음 단심(丹心) 느껴보자.
고구려에 특수계급 ‘선배’가 있었다. 고구려 초기 시작된 선배제도는, 당시 동아시아 최강으로 꼽혔던, 그 나라의 정신적 핵심 중 하나였다.
거국적인 축제에서 택견 칼춤 활쏘기 등을 겨뤄 뽑힌 몇몇은 국가의 녹(祿)을 받는 ‘선배’가 되어 공적(公的) 존재로 살았다. 무예와 학문, 산천 탐험과 강연, 공동작업 등이 그들의 일이었다. 사생활은 없었고, 전쟁 나면 스스로 싸움에 앞장섰다.
싸워 이기지 못하면 죽음을 작정하였다. 죽어 돌아오면 이기고 돌아오는 자와 같은 영광으로 축원했고, 혹 패하여 물러난 자들에겐 침을 뱉었다. ‘나’를 버린 삶, 선배들은 전쟁터에서 가장 용감했다... (비봉출판사 刊 박기봉 번역 ‘조선상고사’ 고구려 편)
고구려가 망하고 선배의 남은 무리들은 산촌에서 뜻을 이어갔으나 세상이 유교(儒敎)에 마음 빼앗기며 명칭도 ‘선비’로 바뀌었다. 이들의 무도인 수박(手拍)은 중국에서 권법(拳法)이 되고, 일본서는 유도(柔道)가 됐다. 경전 읽느라 무사(武士) 구박한 조선에서 차츰 자취가 스러졌다.
이런 역사는 식민주의 일제(日帝)의 음모에 길들여진 왜곡된 인식의 가짜 역사로 바뀐다. 얼마나 유명한 교수가 썼건, 역사를 적는 마음이 비뚤어져 있는 한 후세의 교훈될 수 없다. 우리가 아는(배운) 우리 역사의 억울한 슬픔이다.
조선상고사, 신채호는 빛난다. 또 어려움 극복하고 한문체(漢文體)인 선생의 서술(敍述)을 번역하고 출판한 박기봉 선생의 선배됨이자 선비됨이 함께 빛난다.
“사람은 가문과 배경의 자식이 아닌, 자기 행위의 자식이다.” 은사인 철학자 성진기 선생(전남대 명예교수) 말씀, 중요하다. 당신 인생은 뭘 했지?
한참 살아 경험 많다고 등판(登板)하더니 ‘이제 허수아비 짓만 하지는 않겠다.’며 제값받기 정치판 흥정에 열중인 한 팔순(八旬)이나, 신문 방송에 늘 불려 나가 ‘제 높은 학문’ 소개로 귀염 받는 1백세 어떤 노령 인사를 생각한다.
어쩐지 못 볼 걸 본 양, 저런 모습이 문득 부끄럽다. 얼굴 화끈거린다.
(훌륭한) 그들의 ‘업적’이나 ‘학문’이 (지금에) 어떤 의미와 결과를 불렀을까? 제 역할 했다면 세상이 이 모양일까? 후배들도 한심하다. 또 저들의 ‘선배의 도리’는 값을 어찌 산정(算定)해야 할지 참 난감하겠다. 나이 값은 쳐줘야겠지만 젊은이들 일터에서, 무슨 주책이람.
남의나이도 못 되어 ’자기 나이’에 세상 뜬 단재 신채호를 후세 사람들은 주저 없이 ‘선생’이라 부른다. 선배이자 선비다. 그들은 어떤 칭호로 기억될까? 또 우리는?
‘장중한 이별’을 흠모(欽慕)하는 여러분들의 나이에게도 정중하게 묻는다.
[전국매일신문 칼럼] 강상헌 문명비평가·우리글진흥원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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