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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의 하제별곡] 화마(火魔)의 여러 이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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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의 하제별곡] 화마(火魔)의 여러 이름들
  • 전국매일신문
  • 승인 2022.03.08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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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 언어철학자·시민사회신문주간

불탄다. 온 산이 벌겋다. 우리 가슴도 탄다. 저 이웃들은 얼마나 아플 것이냐? 대형 산불, 기후위기의 가장 나쁜 형태 중 하나다.

TV에서 산불의 이름들이 잇따라 들려왔다. ‘주불이 잡히지 않는다’고 했다. 곧 감(感)이 왔다. 아하 현장(에서 쓰는) 언어려니. 주된(main) 불 주불(主-)이겠지, 우리말에서 한자(어)가 갖는 여러 역할을 보여준다. 산불(山-)도 메(산)에 난 불 아닌가. 

잔불(殘-) 때문에 걱정이란다. 남은 불은 큰 불로 번질 수 있다. ‘꺼져가는(殘) 불’이다. ‘뒷불’도 비슷한 뜻이다. 솔방울 등이 불붙은 채 날아가 순식간에 불을 퍼뜨리면 이는 비화(飛火) 즉 ‘날아가는(飛) 불’이다. 도깨비불이다.

꺼진 불은 사화(死火)다. 골짜기를 뱀처럼 휘감으며 번지는 불은 ‘뱀불’이다. 이를 한자어로 뱀 蛇자 사화(蛇火)라 하지 않는 것은 같은 발음 死火와의 차이를 확보하기 위함이겠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불은 꽃불, 화화(花火)다. 숯덩이나 장작에 불이 핀 것은 잉걸 또는 불잉걸이다. 이런 단어 중 상당수는 사전에 없다. 국어 연구자들은 토속어나 현장의 언어에 무관심한 성 싶다. 기억 속의 쓸모 많은 말들이 시나브로 잊혀 사그라지는 것이다.

말(언어)과 함께 산이 타고 나무가 타고, 가옥 등이 소실(燒失)되어 사그라지는 것 또한 안타깝다. 풍경의 아름다움도 시든다.

기후는 변화와 위기를 넘어 이제는 재앙(災殃)이 된다. 빙산 녹아 바다로 떨어지고 그 아래 북극곰들이 빈약한 얼음 조각 타고 다니는 모습, 곧 인류의 살림 터전 아닐까. 나중에 걱정하자고? 그러지 뭐! 그런데 나중 언제? 당장의 일이다. 

기후, 피부에 와 닿는 이름으로는 날씨의 변덕으로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다. 양간지풍 때문이라는 근사한 말로 당국은 설명했지만 그 양간지풍이 이전에도 늘 저리 독하게 불을 질렀나? 양간지풍은 초봄 양양과 간성 사이를 부는 바람이란다.

인간은 참 철없다. 하긴 지기 힘으로, 우리 세대 안에 해결할 방법이 없어 보이니 그럴 수도 있겠다. 귤이 전남 특산물이 되고 강원도에서 사과가 잘 된다. 제주도 어류가 독도에서 잡히니 신난다고? 추세에 맞춰 1차 산업을 개편해야 한다고도 한다. 학자들도. 

기후 재앙에 스며 함께 침몰하는 것이다. 그 위에서 소득 극대화도 찾고 틈새시장의 강자(强者)가 돼야 한단다. 인간은 천지신명의 축복을 갈구할 자격이 있은 ‘존재’ 또는 ‘동물’인가? 모두 모여 의논할 지혜는 없는 것이리.

이번 산불 중 하나는 토치라고 부르는 버너로 불을 지른 범죄였고, 다른 불은 자동차에서 던진 담뱃재가 씨가 됐다는 추정이다. 메마른 산이 바람 불면 불꽃 하나가 화염방사기다. 

상당수 차 운전자나 승객은 차에서 담배를 피운다. 그리고 버린다. 어디에? 관찰한 바에 따르면 절반은 창밖으로, 다른 차나 사람의 눈치 살피다 그냥 버린다. 불씨는 꺼져 있었을까? 

한 가지 더, 왜 창밖이 그들의 재떨이가 돼야 하지? 꽁초 나뒹구는 길바닥, 익명으로 일부 시민이 벌이는 행실이다. 연기는 공기오염으로, 재는 (미세)먼지로, 피해를 줄 터다. 앞차의 불붙은 담배꽁초가 뒤차에 날아 들어가는 사고도 난다. 필자의 경험담이다.

매너의 차원으로는 자제를 청하는 것으로는 크게 부족하다. 창밖으로 담배 든 손 내밀면 마땅한 책임을 물어야 하지 않을까? 실효성(實效性)이 있을까 걱정도 하더라. 그런데 이제 차마다 카메라가 돌아가니 단속 가능하다. 

산불 없어져 저런 여러 이름들 대부분 사라지면 좋겠다.

[전국매일신문 칼럼] 강상헌 언어철학자·시민사회신문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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