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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의 하제별곡] ‘하제’ 위한 서글픈 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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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의 하제별곡] ‘하제’ 위한 서글픈 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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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2.03.01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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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 언어철학자·시민사회신문주간

대표머슴 뽑는 일-우리 정치에서 전쟁은 무엇인가?

우리에게 내일은 있는가. 내일은 오늘의 다음날이면서, 상징적으로 미래(未來)를 가리킨다. ‘내일을 향해 쏴라’라는 영화(1970년) 제목을 떠올린다. 폴 뉴먼, 로버트 레드포드가 악당 한 패로 나와 마지막에 빗발치는 총탄 속으로 뛰어들며 지들의 내일(미래)까지 폭파해버린다.

‘버치 캐시디와 선댄스 키드’ 원제 영화에 수입사가 붙인 괜찮은 이름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로 ‘머리 위로 빗방울 쏟아지고’(Raindrops Keep Falling On My Head)라는 삽입곡은 오래 회자(膾炙)됐다.

페이 더너웨이와 워렌 비티 주연 ‘보니 앤드 클라이드’라는 남녀 갱단 영화는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라는 제목을 달고 소개됐다. 당시 미국 범죄 영화는 주인공들의 ‘내일의 부재(不在)’를 이렇게 서글프게 그렸다.  

우크라이나에 전쟁이 터졌다. 6·25전쟁을 부르는 것 같은 윤석열 후보의 ‘힘의 논리’를 걱정한다. 일본이 우리 영토에 ‘들어올 수도 있다.’고 했다. 60년생, 골목에서나마 코피 한번 터져보지 않고 자랐을 전쟁 모르는 세대다. 푸틴의 저 전쟁은 철부지 게임 아닌 처참의 현실이다.

안보는 정치를 초월한다. 묻는다. 우리에게 내일은 있는가? 다시 묻는다. 우리말에 내일은 있는가? 내일, 명일(明日)이 ‘투머로우’ 또는 퓨처(future·미래)의 뜻이다. 한국어지만 한자어다. 순 우리말로 이 개념의 동의어는 없다. 아니다, 있다. 오래 잊고 있었다.

내일 또는 미래가 없는 겨레는 암담하다. 내일이나 미래에 해당하는 우리말이 없는(잊혔던) 것의 의미를 명상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내일과 미래는 중요하지 않았다는 얘기일까? 

‘이 뜻’을 외래(外來)의 문자에 의존하게 된 것처럼, 우리의 미래를 외세(外勢)에 의존해서는 아니 된다. 원칙론이라고 타박 말라. 언제까지 그렇게 살 것인가? 특히 우리의 ‘주인공’인 젊은이들에게 강하게 묻는다. 우리가 식민지인가, 미국이, 중국이 우리의 주인인가?

來日의 뜻 우리말이 있었다. 우리 국어학이 찾아낸 ‘하제’다. 문자학자 故 진태하 교수가 고려 때 송나라 사람이 쓴 ‘계림유사’라는 책에서 찾아냈다. 고려 때 사람들이 명일(내일)을 하제라고 하더리는 기록이다. 

명일왈할재(明日曰轄載)가 원문이다. ‘명일은 轄載라 한다.’는 뜻인데, 할재의 당시 중국말 발음이 ‘하제’라는 것이다. 소리를 표시하고자 함이니 할재의 말뜻을 따지는 것은 의미 없다. 

또 있다. ‘아제’라는 말이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말과도 관련 있다. 어제(과거) 이제(오늘) 아제(내일, 미래)의 시간적 선형(線型)이 의미롭다. 겨레학자 故 백기완 선생은 ‘올제’라는 말을 가르쳐주었다. 

하제나 아제, 아름답다. ‘내일’도 익숙한 한국어지만, 하제나 아제, 올제도 함께 잘 쓰자. 또 우리의 하제를 위한 정치도 이제는 퇴영적 후진성을 벗어야 한다. 사람을 바라보는 정치, 미래세대를 사랑하는 정치가 필요하다. 

코앞의 선거에서 이기기만 하면, 전쟁이 나도 나라가 폭파돼도 상관없다는 투의 논리는 겨레와 인류를 깨뜨리는 억지이고 망발이다. 바이든과 유엔과 나토는, 돈줄만 죄겠다며 거의 바라만 보더라. 푸틴은 우크라이나 침략을 ‘평화를 위한 의무’라고 했다. 정녕 정의가 있는가? 

우리는 아름다운 하제를 자손에게 물려줘야 한다. 

[전국매일신문 칼럼] 강상헌 언어철학자·시민사회신문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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