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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익의 시선] 민주주의와 만장일치, 그리고 인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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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익의 시선] 민주주의와 만장일치, 그리고 인내
  • 양동익 제주취재본부장
  • 승인 2022.08.3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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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는 다수결을 원칙으로 한다. 그리고 소수의견의 존중 또한 민주주의의 중요한 덕목이다. 그러나 이러한 두 가지의 가치는 양립하고 있다. 우리는 일상에서 이러한 상반된 개념에 대한 수용이 쉽지 않음을 경험한다. 절대다수가 옳다고 하여 반드시 옳은 것도 아니고 나의 생각에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없다고 그른 것도 아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이러한 종류의 가치의 양면성은 자신의 아집과 독선을 변명하는 수단이 되기도 하고 극단주의를 낳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민주주의가 인내를 필요로 한다는 것은 이러한 상반된 가치통합을 위한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민주주의는 과정과 절차의 정당성이 요구되는 것이다. 단순한 대중민주주의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리고 다수의 결정이 반드시 옳은 것만이 아니라는 사실은 모두가 인지하고 있는 사실이다. 대부분의 당면한 문제는 ‘무엇을 하느냐’보다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있다. 또한 그것은 분명한 목적성과 명분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하나의 사회가 사회정의를 분명하게 규명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나는 ‘사람을 널리 이롭게 한다’는 것을 가치 기준으로 삼고 있다. 이것은 영국의 위대한 철학자 밴담이 말하는 ‘절대 다수의 절대 행복’과는 개념을 달리 한다. 곧 민주주의는 널리 사람을 이롭게 하는 것을 지양하여 발전해야 한다는 사실에 목적을 두어야 한다. 이는 밴담의 주장과는 달리 소수의견의 존중을 포함하고 있다. 그리고 보다 바름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옳고 그름의 문제는 모든 현실에서 정도의 문제로 귀결된다. 절대 선도 없으며 절대 악도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극단적인 죄를 범한 범법자라 할지라도 그를 낳은 어머니는 그를 용서하고 그럴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끄집어내며 변명하려 할 것이다. 무조건적인 사랑은 먼저 자식을 변호하려 할 것이고 그도 부족하면 자신의 탓이라 말할 것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의 다수의 결정은 ‘보다 바름’을 위한 노력이 되어야 한다. 모든 사회적 문제를 ‘정도의 문제’로 바라보아야 하며 최선의 선택을 위하여 사회적 합의를 위한 노력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이러한 결정은 자신의 생각을 내려놓는 승복의 미덕이 또한 필요하다. 그리고 관용과 포용은 민주주의가 발전하기 위한 사회적 합의의 결과가 되어야 한다.

나는 28세에 로타리클럽 회원이 되었다. 1990년대 이전에 로타리클럽의 회원이 된다는 것은 사회기득권에 들어섰다는 것을 의미했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사회적 지위를 물려받은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개인에 따라 다를 수는 있지만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많다. 그것은 단순했다. 소위 성공했다는 사회적 명망이 있는 사람들만의 전근대적 사교모임으로 인식된 이유이다. 그리고 국제적으로도 회원자격에 대하여 지난 100년 동안 폐쇄적 구조를 유지해왔기 때문이기도 하다. 서구사회는 현대에도 이러한 귀족적 사교모임이 사회의 기득권을 유지하고 있으며 사회전반에 걸쳐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전통적 사교모임은 일반인과 구별되어지고는 있지만 그들의 지위가 일반인들에 의해 인정되는 문화가 지금도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도 함께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로타리클럽과 같은 이러한 국제민간단체들은 1900년대 초에 대부분 설립되었다. 국제라이온스, JC 등이 비슷한 시기에 출발하였고, 이후 국제연합이 국제기구로 그 기능을 수행하면서 유네스코협회연맹, 유니세프, YWCA, YMCA 등 수많은 국제민간기구들이 생겨나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다. 이러한 국제민간단체의 시작은 서구의 전통적 사교모임의 규율과 운영방식을 모방하였다고도 할 수가 있는데 도덕적 지식인의 사회봉사의식과 책임의식을 국제적으로 확장하는 개념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사회에서 일반인으로부터 정서적으로 외면되어진 이유는 이러한 서구적 정서가 우리에게는 이질적으로 다가왔다는 사실이다. 일찍이 국제단체를 받아들인 일본이나 개방이후 이를 용인한 중국과 같이 권위주의 사회의 모습을 아직도 유지하고 있는 나라들은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는 기득권층의 사회봉사를 가장하고 자신의 기득권적 지위를 인정받기에 용이하기 때문이다.

로타리클럽은 전세계에 250만명 정도의 회원수를 가지고 있다. 세계인구의 0.05%정도 회원이 상류층 중심의 국제적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있다. 특이하게도 한국사회는 지난 10여년 동안 회원수도 급증하였고 대중적으로 개방되며 운영되어지고 있다. 북유럽의 경우는 오래전 이러한 특권적 회원구조가 무너져 있었다. 시카고에 국제본부를 두고 완벽하다고 할 만큼 국제민간교류의 효율적인 협력체계를 갖추었다. 지난 백 년동안 이 단체는 소아마비 백신을 전 세계에 무료로 공급하는 역할을 하였고 소아마비 퇴치를 이루었다는 사실에 나름 자긍심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향후 UN의 지속가능 목표를 민간 차원에서 지원하고 있다. 과거 우리나라가 저개발국가로 분류되고 있을 때 해외원조의 중요한 창구역할을 수행하기도 하였다.

오늘날 우리나라는 많은 해외원조활동을 펼치고 있다. 해외에 많은 저개발 국가를 상대로 민간교류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현지의 인적자원의 효율적인 동원과 현지상황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없다면 비용과 그에 따른 노력이 비효율적인 측면을 낳게 된다. 일반적으로 공신력이 있는 현지의 행정당국과 협조하여 이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실상 이러한 사업에 다양한 경비가 들어가게 되고 실질적인 사업비는 축소되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갖게 된다.

로타리클럽의 사업의 원칙 중에 하나가 수익자부담 원칙이다. 사업에 수반되는 부대행사 등에 참여하는 항공료와 체재비 등의 경비는 온전히 참석자가 부담한다. 그리고 해당 사업국의 회원들이 현지의 섭외 및 인력 동원 등을 책임지고 의전을 하게 된다. 현지 회원들의 사회적 지위를 최대로 활용하여 사업비 전체가 사업목적 실체에 사용되도록 체계화되어 있는 것이다. 이는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실천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노블리스 오블리주는 사실 귀족적 자긍심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기에 우리나라에서 스스로 귀족이라 생각하는 사람이 없으니 이러한 정서가 쑥스러움으로 다가오는 것도 사실이다.

로타리클럽은 만장일치를 기본 덕목으로 하고 있다. 덕목이라고 표현한 것은 이유가 있다. 학교에서 우리나라에서의 민주주의 제도 기원을 말할 때면 신라의 화백제도와 고려 중방의 만장일치를 예로 들곤 하였다. 만장일치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귀족정치의 특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인데 사실상 민주주의 정치제도와는 개념적으로 관련이 없다. 그러나 한 가지 강조되어야 할 점이 있다. 그것은 만장일치제가 갖는 도덕적 자세이다. 한 가지 사안에 대하여 만장일치가 이루어지려면 그 사안에 대한 사전조율이 있어야 하고 조율이 될 수 없는 사안은 의안으로 올릴 수가 없다. 자신이 다른 의견을 갖고 있더라도 그것이 설득되지 않으면 다수에 수긍하여 스스로 자신의 이견을 피력하지 않는 도덕적 자세가 요구된다. 그러나 과거 사실상의 만장일치제는 귀족정치가 갖는 협잡의 산물이었고 실리적인 협상의 결과물로 이루어져 왔다.

나는 사무총장이 직업이라 할 만큼 꽤 많은 사회단체의 살림과 운영에 관여해 왔다. 그 중 로타리클럽에서 쌓은 경험을 가장 값있게 생각한다. 이는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기독교의 교회운영에서도 비슷한 점을 찾아볼 수 있다. 만장일치제를 기본으로 의사결정을 하는 전통이다. 교회든 클럽이든 그 대표는 대외적인 대표성만을 가지고 회원관리 및 운영, 재무관리 등의 권한이 분산되어 운영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교회의 이사회에 해당되는 당회나 클럽의 이사회를 통해 중요한 의사결정을 한다. 이때 만장일치를 기본으로 하며 과반수의결에 의한 분열과 갈등을 경계한다. 일반적으로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단체는 회장 중심의 구조를 가지고 모든 의사 결정은 임원회의를 통해 회장이 의도에 의해 운영되는 일방적인 운영이 용인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에 대한 책임의 크기도 회장이 짊어지게 된다. 이것은 우리나라의 정치권력이 대통령 중심제로 이루어지는 과정과 오랜 군부독재로 인한 관변단체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이러한 현상이 우리나라의 문화적 특성이 되어 있다. 국회와 정당의 의사결정 구조 역시 이러한 연장선상에 있다.

과반수 의결과 만장일치라는 제도의 문제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어떠한 경우든 지배세력에 의해 독선적 수단으로 이용될 수 있다. 소수의견에 대한 충분한 기회가 주어지고 정당한 순서와 절차를 걸쳐 설득되어질 수 있어야 하며 결정된 사안에 대하여 스스로 자신의 주장을 내려놓는 도덕적 요구가 함께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로타리클럽에서 함께했던 대부분의 동료 회원들은 다른 민간단체의 회장을 겸임하는 경우가 많았고 이로 인해 함께 많은 단체활동을 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이를 통해 하나의 사회시스템을 완성하고 적용하는 것이 어렵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로타리클럽에 대한 종교와 같은 신념을 가진 회원들조차 자신이 대표로 있는 단체의 운영에 이를 적용하기를 주저한다. 그리고 그러한 노력의 의지조차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그 나름의 방식에 적응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받아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형식에 관한 문제에 대해서는 보수적인 사람이다. 그러나 ‘어떻게 하느냐’의 문제에 관해서는 진보주의자임에는 틀림없다. 내 자신이 사고하는 모든 것에 대하여 이러한 사고를 견지하고 일관성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 또한 아집일 수 있음을 경계한다. 모든 사고는 갈대가 뿌리를 박고 흐느적거리는 것처럼 유연할 수 있어야하기 때문이다. 인생에 분명한 답은 없다. 사회정의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인간의 모든 선택은 모든 사람이 이로울 수 있는 방향으로 결정되어야 하고 이는 ‘보다 바르다’는 사실이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것에 있다. 그리고 이를 포기하지 않는 인간의 노력이 수반되어야 한다.

[전국매일신문] 양동익 제주취재본부장
waterwrap@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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