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매일신문
지면보기
 표지이미지
지방시대
지면보기
 표지이미지
[양동익의 시선] 부동산에 대한 인간의 집착
상태바
[양동익의 시선] 부동산에 대한 인간의 집착
  • 양동익 제주취재본부장
  • 승인 2022.09.14 1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양동익 제주취재본부장

오늘날 사람들은 부동산에 무척 예민하다. 나는 땅에 대한 각각의 가치가 사람들에 의해 달리 평가되어지는 이유를 진지하게 생각해 보았다. 별다를 것 없는 똑같은 땅임에도 그 차이를 두는 것은 인간의 활동과 연관되어 있다. 경제규모가 커지고 그 형태가 다양해짐에 따라 땅이 갖는 쓰임새와 가치도 다양하게 변화하였다. 우리나라는 과거 오랜 역사 속에 농경사회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농지를 중심으로 땅의 가치가 형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후 상업의 발달은 시장기능을 수행하는 상가를 중심으로 땅의 효용성이 확대되어 온 것이다. 이렇듯 우리나라의 산업기반은 농업이 중심이 되어 상업이 보조적인 수단이 되는 경제구조를 오랫동안 유지했다. 우리가 산업사회로 진입하기 전까지 사람들에게 가치 있던 땅은 농지가 전부가 되었고 특권집단의 전유물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산업구조의 급속한 변화는 땅에 대한 가치변화도 함께하였다. 상대적인 농지의 가치는 떨어지고 다양한 용도의 토지가 개발되어 거래되었다. 단기간에 이루어진 급속한 경제 발전은 부동산 가격의 급속한 상승을 경험하게 하였던 것이다. 착실히 저축하여 계획적으로 운영되는 가계소득에 비하여 부동산 투자가 갖는 부의 축적은 인간의 욕심을 부추기기에 충분했다.

1980년대 ‘복부인’으로 대변되던 부동산열풍은 대단했다. 서울 강남으로 시작된 개발열풍과 부동산 가격상승은 일부 대도시와 제주도를 중심으로 일어난 광풍이었다. 이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부분적인 효과를 거두기도 하였으나 우리나라의 경제규모의 확대와 일부 지방의 무분별한 개발, 국토균형발전을 위한 SOC의 확대는 강원도의 남북경협사업, 부산해운대, 새만금개발, 경기북부 등 부동산경기의 과열이 간헐적으로 이루어져 왔으나 최근의 부동산 열풍은 전국을 상대로 이루어지고 있는 일반적인 현상이 되었다. 이는 우리나라의 경제발전과 미래발전에 대한 밝은 전망에 의한 자연스런 결과이다.

땅의 가치가 상승하는 주된 이유는 한정된 자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이유 때문에 인간의 욕심은 땅에 대한 소유욕으로 분출된다. 자본주의는 더욱 더 이러한 경제 가치를 부추기는 요소가 되었고 전통적인 불균형을 낳았다. 특정집단이 땅에 대해 독점을 이루는 사회구조가 공산주의를 낳는 원인이 된 것이다. 국가소유 토지개념은 결국 저생산 구조를 낳았고 공산주의는 경제적 관점에서 철저하게 실패하게 된 근본적인 이유가 되었다.

인류의 경제적 발전은 인간의 욕망으로 동력을 삼고 있다. 이러한 욕망의 결과가 토지에 대한 인간의 욕망으로 나타나고 이를 통해 지표가 될 수 있다. 인류는 일 만 년 전에 농업혁명을 이루었다고 말한다. 흔히 말하는 4대문명의 출현과 함께한다. 필요한 집단노동력은 도시를 이루었고 16세기 전·후반의 상업혁명과 18세기 산업혁명이 이루어지기 전까지 인류의 평균 경제 성장률은 1.5%의 꾸준한 성장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토지의 소유권은 특정 권력집단의 전유물이었다. 시민계급의 성장은 종교혁명과 더불어 토지의 다양한 가치를 창출하였고 산업혁명과 더불어 자본주의가 발달하며 개인의 사유권이 보장되어 자유민주주의를 발전시켰다.

산업혁명 이후 인류는 평균 6.5% 이상의 고속성장을 이끌었다. 그러나 흥미로운 사실은 인류의 경제성장은 60% 이상이 땅 속에 스며들어 있다는 사실이다. 인류가 금본위제를 만들어 표면적으로 경제를 통제하였음에도 인류가 성장시킨 부가가치의 대부분이 땅 속에 잠들고 있다. 독일은 1차 세계대전의 패전으로 1만 % 이상의 인플레이션이 일어나는 처참한 경제상황을 재건하였다. 이때 독일 바이마르공화국의 재정책임자로 하얄마르 샤흐트가 있었다. 그리고 히틀러가 집권한지 불과 5년 만에 전쟁을 일으킬 수 있는 나라를 만든 것은 샤흐트의 토지기반의 경제정책이었다. 당시 영국의 저명한 경제학자인 존 메이너드 케인즈 역시 샤흐트의 경제정책을 받아들여 금본위제를 버리고 토지본위제로 세계경제가 전환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그들의 주장은 토지가 갖는 가치기반의 정제정책은 토지에 대한 역사성을 기반으로 한 것이다. 현대 사회의 비트코인의 출현 역시 이러한 화폐경제의 발전과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다. 역사는 은본위제가 오랫동안 부분적으로 자리를 하였고 결국 미국 중심 달러경제가 금본위제 기반에서 출범하였던 것처럼 비트코인의 가치를 특정국가가 아닌 다수의 인류가 그 가치를 인정하는 현상은 예견된 것이다. 그리고 토지본위제를 기반으로 하는 전자화폐의 출현과 더불어 세계시장의 기축통화로 자리 잡는 날이 곧 다가오리라 예상될 수 있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부동산에 관심이 많았다. 아마도 그것은 어머니 영향이었을 것이다. 어머니는 외할아버지의 상재를 이었는지 부동산에 대한 감각이 좋으셨다. 외할아버지는 40대의 나이로 일찍 돌아가셔서 얼굴을 뵌 적이 없었지만 일제 때부터 일본 본토와 상당한 규모의 무역을 하셨고 당시 제주에서는 최고의 재력가였다. 외가는 ‘부자가 망해도 삼대가 먹고 산다’는 속담이 생각나게 하는 경우다. 8남매의 셋째 딸이셨던 어머니는 항상 큰 외삼촌에 대해 은근히 불만을 표현하기도 하였지만 장자상속제가 당시에는 절대적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외가에서 목소리를 높일 수는 없었다. 외삼촌들은 큰 형님에게 복종하는 분위기였고 당시 어머니가 외삼촌에게 받은 것은 결혼을 하고서 받은 100평 남짓의 쓸모없는 돌산이 전부였다고 한다. 그 곳에 내가 성장한 3층 단독주택을 지어 살았다. 1970년 당시 인근에서는 꽤나 큰 주택으로 소문이 나 있기도 했다. 평범한 공무원이셨던 아버지가 나름의 재산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의 부동산에 대한 식견이 성공한 이유이기도 했다.

80년대 이후 제주도는 우리나라의 부동산 시장에 중심에 있었다. 지금은 제주도 전역이 부동산 광풍이 몰아치고 난 다음의 고요함 속에 있다. 살아오면서 주변에서 부를 축적한 대부분의 성공한 사람들에게 부동산은 중요한 재산증식의 수단이 되었다. 해방이후 우리나라가 급속한 경제발전을 이루는 과정에서 모든 국민에게 이러한 사실은 자연스럽게 학습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은 앞으로도 변함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인간의 욕망은 정당하게 표출될 수 있는 사회구조를 만드는 것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과 함께해야 한다. 자유경쟁을 통한 개인의 부의 축적과 공정한 부의 분배는 양립된다는 현실을 직시해야지만 결국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아야 한다는 현실적인 요구는 포기될 수 없는 것이다.

부동산을 소유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은 충분히 정당하다. 이를 강압적으로 통제하고 국유화했던 공산주의의 모든 시도는 실패했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인간의 기본적인 욕망을 동력으로 작동한다. 이러한 이유로 방임된 자본주의시장의 한계는 자본과 정치권력의 힘이 불평등을 만든다는 것이고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모든 경기가 치러진다는 불합리에 있다. 그러고 대부분의 사람들을 부추기며 다수의 욕심을 이용하려는 함정에 쉽게 빠지게 한다. 그런 이유에서 공정한 규칙을 만든다는 것은 중요한 문제이다. 그럼에도 이러한 공정한 규칙이 가능한 것인가라는 의구심을 누구나 가지게 한다.

자본주의사회에서 공정한 규칙은 포기될 수 없는 하나의 가치가 되어야 한다. 부동산 투기에 대한 인간의 욕망은 모든 사람을 거대한 도박판으로 내모는 결과를 만든다. 그리고 그 승자의 수는 이미 한정되어 있다. 부동산 투기는 미래의 가치 상승만을 목적으로 취득하는 행위가 부도덕한 행위로 인식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투기와 투자는 결과적으로는 같을 수 있다. 그러나 부동산 관련 법규의 적용과 토지에 대한 사유재산의 보장은 규칙의 공정성을 분명히 하고 있다. 농지를 이용하여 농산물을 생산하거나 주거를 목적으로 집을 짓거나 경제활동을 위해 토지를 구입하는 행위 등이다. 또한 이러한 행위는 인간의 노동과 결합하여 부가가치를 만드는 생산적 활동으로 선순환 되어야 한다.

자유민주주의에서 공정한 규칙은 시민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 공정한 규칙 제정과 시민의 자발적 참여가 법의 효율성을 완성한다는 사실은 부동산 정책의 핵심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심지어 부동산 개발이익을 목적으로 하는 부동산개발회사라 할지라도 토지의 공공 차원의 부가가치 창출이 목적이 되어야 한다. 토지의 공공 차원의 부가가치 창출이라 함은 선순환 국민경제의 구조 안에 긍정적인 작용을 하느냐의 문제이다. 이것이 곧 투기와 투자의 기준이 되는 것이다. 농지나 임야를 불법으로 전용하여 부동산 투기를 목적으로 하는 기획부동산의 개발행위나 공급이 한정된 주택을 시세차액만을 목적으로 다세대를 구입하는 행위는 같은 범위에 속한다. 한편 같은 임대업이라 하더라도 사무실이나 상가를 임대하는 행위는 국민경제의 차원에서 바라보면 선순환 경제의 범위 안에 들어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국민주택이나 대부분이 선호하는 서민주택에 대한 주택임대업을 허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토지공개념의 개념적 도입은 이미 시행되고 있으며 더불어 일정 수준의 주택은 재산증식의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국민적 인식이 실천되어야만 한다.

주택에 대한 공개념의 도입은 전 국민 주택소유를 목적으로 해야 하지만 이는 결코 이룰 수 없는 목표다. 시장 조절이 공장에서 소모품을 찍어내는 잉여생산물에 의해 이루어지지만 주택을 공장처럼 찍어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인간의 욕망은 더 좋고 넓은 집을 요구하기 마련이기에 시장기능에 맡기는 것은 정책적인 방임이 된다. 주택시장은 시장경제에 온전히 맡겨둘 수는 없다. 주택시장에 대한 공공의 개입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서민주택의 적정가격 형성과 완만한 가격상승의 조건을 만드는 것은 국가정책만으로는 이룰 수 없는 것이다. 국민 모두에게 안전한 주거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은 복지사회를 위한 기본이 되어야 한다. 이러한 목적을 실현하는 자본주의 국가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으며 그렇다고 해서 이를 포기하지도 않는다. 이러한 문제가 정치적 구호로만 끝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자유경제의 개념적 함정에 빠져있기 때문이다. 주택에 대한 공개념의 도입은 국민의 자발적인 참여와 의식의 전환을 이루지 못하면 실천될 수 없는 것이다.

또한 토지공개념의 실현은 기업의 목적과 개인의 생산 활동을 목적으로만 소유될 수 있어야 한다. 한정된 토지자원의 독점적 소유는 가처분소득의 불균형을 이루게 되고 비생산적인 활동에 자본이 묶이는 결과를 가져 오게 되어 국가경제의 흐름을 막는 역효과를 가중시킨다. 경제는 흐름이다. 가뭄에 강물이 메말라 버리는 것이나 집중호우에 강물이 넘쳐나는 경우와 비교될 수 있다. 강물은 경제가치의 흐름이고 물길을 만드는 자연발생적인 지형은 부동산 경기라고 말할 수 있다. 사실상 인위적인 부동산 정책은 양날의 검과 같다.

국가의 경제 발전은 자연스럽게 부동산 가치 상승을 동반한다. 이러한 부동산 가치의 상승에 의한 불로소득은 공평하게 모든 사람에게 나누어질 수 있어야 한다. 공산주의의 토지정책은 실패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대안을 찾아야 하는 것이 앞으로의 정책적 과제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정책적 대안은 국민적 동의와 합의 없는 정책의 일방적 오만에 의해서는 결코 그 답을 얻을 수 없다. 이러한 사실을 지난 여러 번의 정권을 통해 우리는 반복하여 확인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부동산 문제의 근본적 해결 방안은 개개인의 절제된 소유욕구와 토지의 실효적인 이용의 확대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로 인한 부동산 가치상승에 따른 잉여이익을 공유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연구되어야 한다.

[전국매일신문] 양동익 제주취재본부장
waterwrap@jeonmae.co.kr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