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매일신문
지면보기
 표지이미지
지방시대
지면보기
 표지이미지
[강상헌의 하제별곡] 秋, 가을은 메뚜기다
상태바
[강상헌의 하제별곡] 秋, 가을은 메뚜기다
  • 전국매일신문
  • 승인 2022.08.30 1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강상헌 언어철학자·시민사회신문주간

과외 없이 혼자 공부 잘하기-기적의 코드 

... 금방울과 같이 호동그란(둥그런) 고양이의 눈에 / 밋친(미친) 봄의 불길이 흐르도다.

이장희 시인의 ‘봄은 고양이로다’(1924년)의 한 대목. 봄이 고양이면, 가을은 메뚜기다. 그 시절, 벼 익는 들에 메뚜기 휘휘 날았다. 잡아 구워 먹고, 닭 모이로도 줬다. 

급식에서 메뚜기 나왔다고 학교가 사과했단다. 지금도 메뚜기가 그렇게 사나 보다. 반갑고 그립다. 들판은 아이들의 황홀한 우주(였)다. 

가을, 한자로 秋(추)다. 추석(秋夕)은 그 가운데다. 파자(破字)하니 벼 화(禾)와 불 화(火)다. 벼(禾)를 불(火)에 구워 얻은 쌀을 먹는다는 풀이일까. 그럴싸하나,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말밑(어원 語源)은 순박한 가을을 보여준다. 3,500년 전 황하 유역의 갑골문(甲骨文)에 그려진 이미지(글자)는, 더도 덜도 아닌, 메뚜기다. 

메뚜기를 그리고 ‘가을’이라고 했다. 요즘말로 ‘메뚜기 그림을 가을의 글자로 공유(共有)한 것’일세. 가을 秋의 첫 모습이다. 

들판 뒤덮은 메뚜기 떼와 싸우느라 불을 놓았을까? 미국 작가 펄 벅에게 노벨상을 안긴 소설 ‘대지’(大地 1931년)에 나오는 옛 중국 대륙의 한 장면이다. 

가을은 메뚜기가 (불처럼) 왕성한 계절이라는 이미지로 읽기도 한다. 그 메뚜기가 불(火)과 합체한 사연이다. 언젠가의 문자(한자) 역사의 자락에는 메뚜기와 불이 함께 그려진 그림도 있다. 그 추론(推論)이 합리적임을 지지하는 증거인 것이다. 

상나라는 ‘은(殷)나라’라고도 하는 중국 고대사의 국가 하(夏) 상(商) 주(周)의 하나다. 중국 하남성(河南省 허난성)의 역사도시 안양(安陽)에는 문자박물관 부호(婦好)박물관 등 상나라 갑골문 등의 자취 또렷하다. 은(상) 족속이 갑골문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주나라에 패망한 상나라는 이(夷) 또는 동이족의 나라였다고도 한다. 중국은 동북공정으로 고대사의 이 대목을 극력 부정한다. ‘문자(한자)의 씨앗인 갑골문의 주인은 오직 중국’이라는 푯대를 세우고는 그 결론에 맞춰 고대사를 제 맘대로 짜는 것이다. 

허나, 당시엔 중국도 한국도 없었다. 국경도 검문소도 물론 없었다. 황톳빛 물 흐르던 그 강가에 모여 살던 여러 족속(族屬)이 함께 만든 상형문자가 오늘의 한자가 된 것이다.

시간 거슬러 우리 선조도 살았을 그 강가에 문자 만드는 ‘제작소’를 열었다면, 가을을 나타내는 기호를 어떻게 그릴까? 우리가 갑골문의 작가(화가)라면 가을을 어떻게 그릴까. 갑골문에 청구 가능한 ‘우리의 지분(持分 몫)’을 잊지 말 것. 한자는 겨레의 지적 자산이기도 하다.

문자의 그 출발 지점이 당시 사람들의 통찰력임을 우리는 이렇게 안다.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집단지성’의 산물이다. 생각을 부르는 것이 (진짜) 언어다. 

실용적 측면을 보면, 문자의 이런 이해는 문해력(文解力)의 결정적인 열쇠다. 우선 문해력의 文과 解와 力을 생각하자. ‘보고 싶은 것’만 보려하지 말고, ‘봐야 할 것’ 그 바탕을 보자. 

서구(西歐)의 리터러시(literacy)를 도구로 한국어 문해력을 깨우치겠다는 요즘 장삿속 사이비(似而非)들의 허구를 본다. 사이비는 ‘비슷하나 진짜가 아니다.’는 뜻이다. 부디 진짜를 보라.

가을은 오텀(autumn)이나 폴(fall)이기도 하지만 추석의 계절 秋임도 알자. 우리의 용(龍)이 저들의 드래곤(dragon)과 어떻게 다른지 꼼꼼히 톺아볼 일이다. 교육방송 등의 ‘리터러시 유행’은 ‘(진짜) 문해력’과는 거리가 멀다.

우리 지성이 깨어나야 할 대목이다. 급식에서 나온 메뚜기는, 이때를 알리는 징조인가. 

[전국매일신문 칼럼] 강상헌 언어철학자·시민사회신문주간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