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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의 하제별곡] 與도 野도 사필귀정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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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의 하제별곡] 與도 野도 사필귀정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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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2.09.13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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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 언어철학자·시민사회신문주간

‘정의’는, 도대체 귀걸이냐 코걸이냐?

국민의힘은 8일 검찰이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공직선거법상 허위 사실 유포 혐의로 불구속기소 한 데 대해 ‘누구도 법 앞에 평등하며, 죄가 있으면 예외 없이 처벌을 받아야 한다.’며 ‘사필귀정’이라고 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이날 SNS에 “검찰의 억지기소에는 늘 그래왔듯 사필귀정을, 국민과 사법부를 믿으며, 국민의 충직한 일꾼으로서 민생에 주력하겠다.”고 적었다. “정부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묻기도 했다... (신문기사 발췌)

같은 사안(事案)을 두고 여당과 야당이 ‘사필귀정’이라는 같은 말로 날을 세웠다. 事必歸正(사필귀정)은 ‘(모든) 일(事)은 반드시(必) 바른(正) 곳으로 돌아간다(歸)’는 뜻이다. 사전적(辭典的) 해석이다. 

바른 곳, 바른 것, 바름 즉 정의(正義)는 무엇이고 누구의 것이냐?  

‘바르다’는 비뚤어지거나 굽은 데가 없다, 말이나 행동 따위가 사회적인 규범이나 사리에 어긋나지 아니하고 들어맞다 등의 뜻으로 풀이되는 말이다. 

한 가지 일(검찰의 기소)에 대해 한편은 당연하다며, 다른 한편은 (그 기소가) 억지라며 입을 모은 듯 ‘사필귀정’이라고 했다. 사필귀정의 뜻은 하나가 아니고 둘인가? 셋 이상인가? 모든 일의 궁극적(窮極的)인 귀착(歸着) 지점이라는 정의는 허랑한 아지랑이에 불과한가?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는 말(耳懸鈴鼻懸鈴 이현령비현령)이 우스개인줄만 알았더니 언중유골(言中有骨)일세. 말(言) 속에 뼈(骨)가 숨었구려. 둘 다 ‘내가 옳다.’고 시필귀정을 외치니 누가 옳지? 이 언어적 현상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모두가 ‘나의 기준’으로 세상을 본다. ‘내 눈’이 안경인 것이다. 그래서 보편적 진리를 세우거나, 그걸 남에게 보여주기는 어렵다. 둘 이상 뜻의 사필귀정, 이현령비현령, 언중유골 등이 실은 철학(哲學·필로소피)의 필연적인 드러남(發露 발로)이 아닐까? 

‘이데올로기의 종언(終焉)’(다니엘 벨, 1960년)이란 제목처럼, ‘철학’이란 말로 번역된 필로소피도 이제 인간에게 허랑한 아지랑이였음이 드러나는가? 그 필로소피들은 이제껏 세상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식민주의와 노예경제로 쌓은 서구(西歐) 자본주의 ‘허영의 시장’의 범죄적 우월감이 그런 이데올로기(理念 이념)를 지지하기 위한 도구는 아니었을까? 그 철학들이 오늘에 이르기까지, 크게 보아, 전쟁과 혐오 말고 만든 것이 무엇이었을까? 종교는 또 무엇인가?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소위 소외된 지역은 영영 미국과 유럽의 노예가 되고 그들 공장의 시장이 되는 것이 당연한가. 그따위 생각을 포장한 것이 소위 (서양의) 철학인가?

각 지역, 여러 겨레의 언어가 품고 있는 다양한 ‘원래 생각’을 경건한 마음으로 바라볼 일이다. 그 언어와 생각은 아직 창조적인 ‘자유의 힘’을 품고 있다. 이나마 코카콜라의 장삿속 획일성에 이내 익사할 지경이니, 인간이 섭리(攝理)의 축복을 기대할 시간은 그리 많진 않겠다.

‘그 허랑한 논리’를 지구촌 젊은이들은 새로운 기준의 통찰로 깨뜨려야 한다. 전쟁 기후위기 팬데믹 혐오 등 저 재앙(災殃)은 속죄(贖罪) 없이 풀 수 없다. 세상의 기성세대는 하도 영리하고 노회(老獪)한데다 요즘에는 지나치게 오래 산다. 이웃과 차세대 배려의 양심이 없다.  

말의 뜻을 생각하자. ‘어른들’이 사필귀정이냐? 아니면 청년들이 사필귀정이냐? 너희 청년들이 어른들 대신 속죄의 희생양 될래? 아니면 너희를 옥죄는 저 제도와 기준을 깨부술래?

[전국매일신문 칼럼] 강상헌 언어철학자·시민사회신문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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