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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읽는 詩 71] 잊혀져선 안될 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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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읽는 詩 71] 잊혀져선 안될 말들
  • 서길원 大記者
  • 승인 2023.08.09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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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길원 大記者

김영승(1958년생)
인천 출신으로 1986년 ‘세계의 문학’을 통해 등단, ‘반성’ 연작시로 유명하며, 현재 여러 문화원에서 '시창작교실'을 엶.

<함께 읽기> 순천만이 한눈에 내려다볼 위치에 정자를 만들어놓으니 그 핑계로 찾아오는 사람들이 제법 많다. 오전이나 오후에 잠깐 왔다 가는 이들이 대부분이지만, 가끔 늦은 밤까지, 다음날 새벽녘까지 놀다 가는 분들도 계신다. 그분들이 순천만 밤 하늘을 올려다보며 이구동성으로 감탄사를 연발한다. "세상에, 별이 어쩜 저리 많아..." 그때 한 친구가 이런 말을 한다. "별이 저리도 많건만 그동안 우린 별 볼 일 없이 살았는지..."친구의 개그식 발언에 웃음이 터졌다가 한 마디씩 거드는데, “아무리 사는데 바빴어도 그렇지, 그동안 별에 너무 무심했네. 이러다간 별이란 말조차 잃어버리는 게 아닐까." 하는 말에 잠시 고요가 흐른다. "우리는 이젠 / 그동안 우리가 했던 말들을 / 쓰지 않을지 모른다" 그렇다. 말은 쓰지 않으면 잊혀져 사라진다.

시인은 사라질 감성어를 '사랑한다, 외롭다, 그립다, 별', 이 넷으로 한정시켰지만 어디 이 넷뿐이겠는가. 별의 예는 앞에서 보았으니 '사랑한다'를 한번 보자. 시험을 잘 못 치고 돌아온 자식에게 가장 먼저 한 말이 무엇이었는가, "아이구 또 망쳤니? 니공부 안 하고 놀 때 알아봤다!", "엄마 친구 딸 XX는 이번 공무원 시험 잘 쳤는가 보던데..." 시험 못 쳐서 가장 가슴 상한 사람은 엄마도 아빠도 아니다. 그럴 때 마땅히 던져야 하는 말, "엄마 아빠는 너를 사랑한다." 하며 꼭 안아줘야 하는데. 가만 보면 우린 '사랑한다'는 말을 잊고 산다. 기특할 때, 자랑스러울 때 사랑한다는 말은 틀어놓은 수도꼭지처럼 터져 나오건만, 힘들고 지쳤을 때 더 필요한 사랑한다는 그 말 사용이 왜 그리 조심스러운가. 그럴 때 사랑한다는 말을 쓰지 않는다면 이 또한 잊혀지는 단어가 될 것이다. '외롭다는 말은 잊혀질 단어가 아닌데...' 할지도 모른다.

예술에서 현대인의 고독을 다룬 작품이 쏟아져 나오고, 고독사가 뉴스에 종종 뜨기도 하니까. 헌데 '외롭다'고 말을 많이 하지만 정작 외로울 틈이 없다. SNS의 괴물이 외로운 이를 더욱 외롭게 만들건만 외로움을 느낄 틈을 주지 않고 우리를 몰아치고 있으니. '그립다'도 마찬가지다. 어렵고 힘들고 아픈 시기를 함께 넘긴 이들에게 포근히 다가오며 안기는 낱말이다. 배고플 때 부모님이 우릴 굶기지 않기 위해 어떻게 하셨는지를 떠올리면 그리움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그에 비하면 배고픔을 모르고 자란 요즘 아이들은 어떤가. 그립다는 단어도 한 세대만 지나면 잊혀지지 않을지... 잊혀져선 안 될 단어를 생각하며 남은 8월을 보내면 어떨지.

[전국매일신문] 서길원 大記者
sgw3131@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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