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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의 하제별곡] 예상과 예측, 헷갈리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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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의 하제별곡] 예상과 예측, 헷갈리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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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4.03.12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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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 언어철학자·시민사회신문주간

누가 당선될지 ‘상상하다’와 ‘측정하다’의 차이를 보자.

선거 때만 되면 더 자주 듣고 보게 되는 예상이나 예측은 각각 ‘어떤 뜻’을 담는 말이다. ‘예’자로 시작하는 이 둘의 뜻을 헷갈리는 경우가 많다. 

실제 언론 공보(公報) 기업PR 등 여러 언어현장에서 늘 틀린다. 예상이나 예측이나 그게 그거 아님? 하고 생각한다면 ‘틀리기 쉬운 조건’을 잘 갖춘 셈이다. ‘나’는 제대로 쓰고 있을까?

한국어의 ‘예상’은 ‘미리 생각한다’는 뜻의 (한) 단어다. ‘예측’도 ‘미리 잰다(측정한다)’는 단어다. 이는 한국어에 속한 한자어(漢字語)다. 우리말의 구성요소인 것이다. 

한국어 어휘(語彙·vocabulary 보캐뷸러리) 중 많은 부분인 한자어의 한자들은 글자 하나하나가 다 독립된 한 낱말이다. 미리, 생각한다, 잰다 등 토박이 우리말과 한자의 다른 점이다. 

한자어는 오케이 파이팅(화이팅) 오픈 등 우리말과 다름없이 쓰이는 영어 출신 외래적(外來的) 단어와 쓰임새가 같다. 한국어에서의 문법적 자격(조건)도 외래 단어와 같다. 다만 우리말에 들어와 쓰이게 된 연원(淵源)이나 역사는 물론 (‘오픈’보다) 깊고 길다. 

공통 요소인 ‘예’와 거기 붙은 ‘상’ ‘측’의 각각의 뜻을 분별할 수 있다면, 예상과 예측의 뜻 구별은 쉽다. 바꿔 말하면, 이 세 개 글자의 각각의 뜻을 또렷이 알지 못한다면, 틀리게 쓰고 있을 가능성이나 개연성(蓋然性)이 큰 것이다. 

미리 생각한다(예상)와 미리 잰다(예측)는 말의 뜻은, 겹치는 부분도 있지만, 같지 않다. 대충 쓰다가 설화(舌禍)의 시비에 휩쓸릴 수도 있는 것이다. 언어의 논리는, 결코 만만하지 않다.

‘미리’의 뜻 豫(예)는 나 予(여)와 코끼리 象(상)의 합체다. 한자의 어원인 갑골문이 만들어지던 상(商)나라 때는 코끼리가 중국 대륙 안쪽 황하 유역에서도 살았을 것으로 본다. 

차츰 그 지역의 코끼리가 없어지면서 코끼리를 그린 象 글자는 豫나 像(상·모양)자의 부속품으로 주로 쓰이게 됐다. 사라진 코끼리를 그리워함이었을까? 象도 ‘(그림)그리다’는 뜻이 됐다. 상형(象形)문자의 象이 그 뜻이다. 세계 어디서나 코끼리는 상서(祥瑞)로운 동물이다. 

영특한 코끼리가 제 죽음을 (미리) 알고, (미리) 죽을 장소를 찾아간다고 하여 豫 글자가 ‘미리’의 뜻을 가지게 됐다고들 한다. 허나 이는 현대인들이 (좋은 뜻으로) 붙인 얘기로 보인다. 

豫라는 단어에 ‘생각한다’는 想(상)자가 붙은 豫想(예상)은 ‘미리 생각하는 것’이다. 한국어에서 예상은 한 단어지만, 한자의 원리로는 아전인수(我田引水) 같은 네(4) 글자 고사성어처럼 두 글자가 합쳐 자주 쓰이는 숙어(熟語·익은 말)로 친다. 

한자는 바탕그림에 제 뜻을 담은 것처럼 하나하나가 독립된 낱말이기 때문에 한국어와 이런 차이가 나는 것이다. 레고놀이처럼 붙이고 떼면서 여러 뜻을 이룰 수 있는 게 한자다.  

豫에 ‘잰다’는 뜻 測자가 붙은 豫測(예측)은 ‘미리 재다’ ‘앞서서 측정하다’는 뜻이다. 물 수(氵,水)와 법칙 측(則)이 합친 측(測)은 강(江)의 물 흐름의 높이 따위를 재는 기구에서 온 말이다. 강수량을 재는 측우기(測雨器)의 ‘측’일세. 

미리 머리로 생각하는 것(예상)과 미리 줄자나 저울로 재는(측정하는) 것(예측)의 동작의 차이를 염두(念頭·생각의 첫머리)에 (잘 올려) 두자. 앞으로 이렇게 이 말들을 사용한다면 평소의 혼동에서 벗어날 수 있겠다.

이럴 때 사례(事例)로 주어진 한자들을 훈(訓·뜻)과 음(音·소리) 따라 읽으며, 손수 종이에 써 보는 것은 어떨까? 강력하게 권하는 바다. 

한자는 바탕이 그림이어서, 눈으로 보기만 하고 지나칠 때와는 다른 풍취(風趣)와 통찰을 경험할 수 있으리니.

[전국매일신문 칼럼] 강상헌 언어철학자·시민사회신문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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