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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열의 窓] 소의 일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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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열의 窓] 소의 일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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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02.24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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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열 국립한경대학교 연구교수

요즘 사람들에게 소라는 존재를 다시 한 번 일깨워 준 일이 있다면 영화 워낭소리의 흥행을 꼽을 수 있다. 친구처럼 소와 지내는 한 할아버지의 사연은 오랫동안 소를 잊고 있었던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줬다. 할아버지에게 있어 소는 노동력과 고기를 제공하는 단순한 가축이 아니라 삶의 모든 순간을 함께한 가족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 조상들은 소를 일컬어 식구와 가족을 뜻하는 생구(生口)라고 했다. 사람대접을 할 만큼 소를 존중했다는 뜻이다.

날이 따뜻해지면서 들판을 쟁기로 갈아엎었던 소가 생각이 났다. 농사가 시작될 시기가 다가오는 것이다. 해서 오늘은 소와 관련된 얘기를 해보고자 한다. 이른바 소의 일생이다.

먼저 송아지. 송아지는 어린 소가 출생해 젖을 뗄 때까지를 두고 부르는 이름이다. 송아지는 생후 3개월 안팎까지는 어미젖만 먹으며 자라며 100일이 되어야 젖을 뗀다. 젖을 뗀 송아지의 목에 고삐를 걸어 맨다. 이런 모양의 송아지를 두고 ‘목매기’라고 한다. 3개월쯤 자란 목매기는 뿔이 나온다. 이때 코청을 뚫어 나무 고리를 채운다. 이를 ‘코뚜레’라고 한다. 그리고 이것에 고삐를 묶는다. 코뚜레에 고삐를 채우고 나서부터 2년 후에는 앞니가 빠진다. 소의 앞니가 빠지는 모양을 두고 ‘보가 졌다’라고 한다. 이때부터 일소 만들기에 들어간다.

1단계로 목 힘 키우기다. 소의 목에 멍에를 씌우고 끌개를 매단다. 이를 ‘끙게’라고 한다. ‘끙게’는 나무토막으로 만든 것이다. 소가 끌고 다니면서 흙덩이를 부수고 땅바닥을 고른다. 그 위에 돌멩이 등 무거운 짐을 올려놓기도 한다. 한 사람은 고삐를 잡아끌고, 한 사람은 뒤에서 소를 몰며 하루에 4시간 정도 2~3일간 반복 훈련을 쌓는다. 소의 목 힘을 강하게 키워놓으려는 속셈이다.

2단계는 청력(聽力) 키우기이다. 소의 뿔에 두 개의 고삐를 채운다. 말뚝을 세워놓고 거기에 하나의 소고삐를 걸어 맨다. 나머지 고삐는 한 사람이 잡는다. 소가 좌우로 빙빙 돌게 하여 청력을 키운다. 좌로 돌려세우고자 할 때는 ‘어려!’, 잠시 세우고자 할 때는 ‘워!’라고 했다. 의사소통과정이다.

3단계는 쟁기 끌힘 키우기다. 우선 쉬운 밭에서 쟁기질을 한다. 처음에는 한사람이 고삐를 끌어 주다가 멈추고 혼자 쟁기를 끌 수 있게 키운다. 이때는 소의 이탈행위를 막기 위해 동네사람들이 함께 도와주며 지켜본다. 이러한 훈련을 거쳐 완벽한 일소가 탄생하게 된다.

소가 15세를 넘어서면 노년기에 접어든다. 해마다 쑥쑥 낳던 새끼도 거른다. 살도 서서히 빠진다. 논밭갈이도 힘겹게 해낸다. 소는 20세 안팎으로 일생을 마감한다. 일소는 15세까지 일을 부릴 수 있고, 암소는 평생 동안 10마리 내외의 송아지를 생산할 수 있다. 워낭소리의 주인공인 소의 나이가 마흔이라고 했으니 얼마나 오래 살았는지 알 수 있다.

소는 4월부터 10월까지 낮에는 논두렁과 밭두렁, 또는 산이나 들에서 소에게 풀을 먹였고 밤에는 외양간에 들였다. 논두렁과 밭두렁에서 풀을 먹일 때는 꼭 한사람이 고삐를 잡고 있었다. 해질 무렵 돌아올 때는 소의 먹이인 꼴 한 짐을 마련하여 별도로 가지고 오곤 했다. 11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는 거의 외양간에서 소를 매어 길렀다. 볏짚, 콩깍지 등을 작두로 썰고 여기에 겨를 섞어 소먹이를 만들었다. 아침과 저녁에 솥에 물을 붓고 끓는 물에 준비한 소먹이를 넣고 1시간쯤 달였다. 대부분 농가에서는 다섯 말 들이 쇠죽솥을 사랑방 부뚜막에 앉혔다. 이런 일을 ‘쇠죽 쑨다.’고 했으며, 이것을 ‘여물’이라고 불렀다. 점심에는 아침에 끓여 둔 쇠죽을 데쳐 다시 소에게 먹이거나 힘내라고 콩까지 주었다.

지금은 소가 하던 일을 트랙터가 완전히 대체했기 때문에 앞에서 말한 것처럼 소가 농사를 짓는 광경을 보기 힘들어졌다. 그렇게 하나씩 하나씩 사라져 가지만 소가 보여줬던 우직한 모습은 아직도 내 맘에 남아있다. 올해가 소의 해다. 코로나19로 많은 사람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그 끝을 향해 우리 모두 소처럼 우직하게 한 발 한 발 내딛었으면 한다.

[전국매일신문 전문가 칼럼] 문제열 국립한경대학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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