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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열의 窓] 마음으로 나누는 설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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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열의 窓] 마음으로 나누는 설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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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02.09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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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열 국립한경대학교 연구교수

설을 앞두긴 했지만 설 기분이 안 난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정부가 명절기간 동안 이동과 모임을 자제해 달라고 권고하면서 지난해 추석에 이어 올해 설에도 고향 방문이 어렵게 됐다. 살면서 감염병 때문에 이런 날이 오리라고는 상상도 못해봤는데 많은 사람들이 특히 고향에서 자식 볼 날만 기다리는 부모님들의 낙심이 클 것이다.

아쉬운 마음이 커서일까. 더욱 옛날 생각이 난다. 어린 시절 설을 앞둔 고향의 풍경이다. 설날 일주 전 가장 붐비는 곳 중에 하나는 방앗간이다. 가래떡을 뽑기 위해 온 마을 사람들이 모여들기 때문이다. 멥쌀가루를 빻아 시루에 쪄 방앗간에서 가래떡을 뽑았다. 쪄진 멥쌀가루 덩어리를 기계에 넣고 방망이로 꾹꾹 눌러대면 가래떡이 줄줄 뽑아져 나왔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던 맛있는 가래떡은 지금 생각해도 군침이 돈다. 가래떡을 뽑는 날은 동네아이들도 모두 방앗간으로 몰려들었다. 기웃거리는 아이들에게 누구나 할 것 없이 길쭉한 가래떡을 떼어주던 인심덕에 가래떡을 입에 물고 다녔다. 잊을 수 없는 세모풍경의 추억의 맛이다.

섣달그믐.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며 잠을 설치는 날이다. 온 가족이 설음식 만들기와 집 안팎 청소에 눈코 뜰 세 없이 바빴다. 설빔을 마련하기 위해 어머니는 밤을 새워 옷감을 짜고 바느질과 다듬질을 해서 모든 준비를 끝낸다. 동네 이 집 저 집에서는 밤늦도록 다듬이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설날 아침 새 옷으로 갈아입고 차례를 지내기 위해서다. 어른에게는 바지·저고리·두루마기를 하고 어린아이에게는 색깔이 있는 화사한 색동옷을 준비했다. 설빔으로 모양을 내고 서로 자랑하기도 했다.

저녁에 복조리장수가 들어와 복조리와 성냥을 담 너머로 던지거나, 대문밖에 복조리를 놓아둔다. 그리고 “복조리사세요.”, “복조리 들어갑니다.”라고 소리를 외친다. 과거에 복조리 한 개 값이 시장가격으로 천 원 미만이었다. 보름을 넘긴 후 상인들이 복 조리 값을 받으러 오면 이천 원을 달라고 해도 그냥 주었다. 당시 돈이 없으면 쌀을 퍼서 주었다. 정월 초하룻날 조리를 사면 복이 하나 가득 담겨 들어온다고 했다.

설날이다. 아침 일찍 새 옷을 입고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에 다녀온다. 아침을 먹고 부모님, 첫째 큰집, 둘째 큰집, 이웃 어르신 댁에 들러 세배를 한다. 세배를 하고 나면 떡, 엿, 식혜, 과일 등과 세배 돈을 내주면서 덕담을 남기신다. 세뱃돈을 받는다는 부푼 기분에 더 손꼽아 설날을 기다려왔다. 설날 전이면 새 돈으로 바꾸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은행으로 몰려들었다.

설날에는 대표적인 전통음식인 떡국을 먹었다. 설날 떡국을 먹는 것은 나이를 한 살 더 먹는 다는 뜻도 있지만 건강하게 오래 살며 부자가 되게 해달라는 소원이 들어있다. ‘흰 가래떡’은 맑고 청결함을 내포하고 있으며 길게 뽑은 떡을 먹는 것은 무병장수의 의미를 부여했다. 가래떡을 둥글게 썰어 떡국을 끓이는 데에도 이유가 있다. 엽전처럼 둥근 떡을 많이 먹고 부자가 되라는 얘기다. 또 둥근 떡이 태양을 상징해 풍년을 빌었다는 설도 있다. 뭐가 됐든 복된 새해가 되길 바랐던 것이다.

점심 후에는 마을 앞 넓은 공터에서는 멍석을 깔아 놓고 윷놀이 대회(척사대회)가 열렸다. 윷놀이대회 때는 도시에 나가서 사는 사람들이 고향에 와서 기부금도 낸다. 기부자 명단을 새끼줄에 달아 공개한다. 이것을 모아 마을 기금도 만들었다. 상품으로는 새끼돼지 1마리, 쟁기, 양동이, 바가지, 빨래비누 등이 있었다. 마을 이장 도장이 찍힌 척사권 표를 만들어 판매하는데, 이 표를 구입해서 윷놀이를 했다.

설의 즐거움은 정월대보름까지 이어진다. 이 시기에는 빚 독촉도 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었을 정도로 옛날에는 훈훈한 큰 축제였다. 연날리기와 달집태우기를 하면서 설부터 시작된 정월 대보름까지의 축제가 마무리된다. 못 먹고 못 입어 힘든 사람도 많았지만, 사람이 있고 정이 있어 따뜻한 시절이었다. 거리는 멀리 떨어져있지만 이번 설에는 음식 대신 영상으로 전화로 추억을 나누면서 버텨야 할 것 같다. 다음 추석에는 고향에 꼭 갈 수 있기를 바라며.

[전국매일신문 전문가 칼럼] 문제열 국립한경대학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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