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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의 데스크席] 물질 만능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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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의 데스크席] 물질 만능주의
  • 최재혁 지방부국장
  • 승인 2023.04.06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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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 지방부국장

요즘처럼 어려운 시절도 없다는 말이 세간에 유행어가 되었지만 돌아보면 언제는 살만했던가.전쟁 이후 배고파 죽겠다고 했다가 지천에 먹을 게 넘쳐 배불러 죽겠다고 하는가하면 어떤 이는 돈 때문에 힘들어 죽겠다고 하고 어떤 이는 떼돈 벌어 좋아죽겠다고 한다. 돈이면 안 되는 게 없는 물질만능주의는 돈이 인류의 편리를 위해 생기고 난 후부터 지금까지 한결 같이 중요한 수단이 되어 왔지만 언제 부턴가 사람 나고 돈 났다는 말이 무색해지기 시작했다.

1988년 우리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던 이른 바 ‘유전무죄. 무전유죄’ 사건이 오늘날 다시금 재연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우려가 크다. 지강헌은 그 당시 서울에서 인질극을 벌이며 “돈 없고 권력 없이는 못 사는 게 이 사회다. 대한민국의 비리를 밝히겠다. 돈이 있으면 판검사도 살 수 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우리 법이 이렇다”고 일갈했다.

종국엔 그의 자살로 끝나게 됐지만, 그가 부패한 사법부와 황금만능주의에 대해 절규했던 말들은 이후 세간에 널리 회자되곤 했다. 특히 범죄 행위에 대한 처벌은 사회 정의와 관련되어 있는데, 돈이 있는 이에게 처벌을 면해주거나 줄여주는 것은 대놓고 사회적 부조리와 비상식을 추구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용어는 부패한 사법부와 황금만능주의를 제대로 꼬집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有錢無罪 無錢有罪)는 부패한 사법부와 황금만능주의를 말한다. 똑같은 죄를 짓고도 돈 있는 사람은 죄가 없고, 돈 없는 사람은 죄가 있다는 말이다. 한마디로 동일 범죄에도 사회적 계급에 따라 다른 처벌을 받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본적인 돈이 없으면 살 수 없다. 돈 때문에 벼랑 끝에 내몰려 본 사람들은 “돈은 곧 인격”이라 말한다. 돈이 곧 사회적 지위라 ‘남들보다’ 많아야 한다. ‘견금여석(見金如石)’ 즉,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 말도 있지만 합법적인 돈은 좋아해야 하고 사악한 것이 아니다.

살아가는 데는 적당한 돈은 필요하고, 많은 이가 윗사람 노릇을 하며, 적은 이는 별 대접을 받지 못하자 유혹에 빠지기도 한다. 돈이 없어서 서러움을 겪기도 한다. 돈은 순기능과 역기능이 있어 부정한 욕심을 내면 패가망신을 할 수 있다.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는 돈 때문에 비리를 저지르지 말아야 한다.

초등학교 때부터 좋은 대학을 향하는 부모들의 성화에 자식들은 죽어라 학원에 과외까지 해가며 공부하지만 정작 서울대나 연고 대 가더라도 취업이 되지 않거나 살아가는데 도움 되지 않는다면 누가 그 어려운 공부를 할까. 결국 두 가지 모두가 자신의 이익과 맞물려 있으며 종래에는 돈으로 귀결된다. 정치권에 대한 출마나 학업에 대한 노력이 본질적인 가치를 추구하지 못하고 출세나 이득이 목적이 된다면 너무 슬픈 현실이 아닐까.

중요한건 요즘처럼 힘든 시기에 푼돈으로 버틸게 아니라 지혜롭게 해쳐나갈 현명함이 필요한 시기다. 삶에 대한 가치를 추구하는 정신적 교육에 기반을 두었다면 지금처럼 자신의 민생고에 몰두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다소 달라졌을 것이다.

지금보다 더 어려웠을 때도 슬기롭게 난국을 헤쳐 나갔을 선조들의 지혜는 어디로 갔을까. 지식만 추구하다 실종된 지혜는 케케묵은 구시대적 유물이 되어간다. 그러나 법과 제도 및 복지에 의존한 사회안전망 구축은 물 빠진 독에 물 넣는 격이다. 그보다 더 중요하고 본질적인 것은 사회의식과 윤리규범의 재정립이라 할 수 있다.

공자가 말하길, 행복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사회 조화와 예의범절이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고 했다(논어). 예의범절은 사회를 안전하게 지탱하게 해주는 정신가치와 사회규범이 자율적으로 작동하는 사회시스템을 말한다. 그렇다면 폭력이 일상화된 위험한 사회, 즉, 잘못 된 근대를 성찰하고 새로운 근대로 나아갈 수 있는 사회 안전장치는 어디서 찾을 것인가?

오늘날의 위험한 사회가 역사적 산물인 만큼, 그 극복방안도 역사 속에서 길을 찾아야 한다. 그것은 곧 사회구성원의 역사 기억과 문화 DNA에 잠재되어 있는 정신가치와 규범체계를 되살리는 것이다. 이미 사회구성원의 기억과 의식 속에 내재되어 있어 현대적인 실천개념으로 되살려 현재화하기가 용이하기 때문이다.

지난 20세기 근대화를 거치면서 일상화된 폭력은 곧 생명을 경시하는 사회를 만든 만큼, 생명 존중을 통해 새로운 근대 성찰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는 이미 19세기에 찾은 지혜이자 실천의식이었다. 20세기가 물려즌 고정관념과 관성을 해체해야만 한다. 그리고 해체된 공간에 생명을 존중하는 사상 위에 사회안전망을 지속가능하게 구축해야만 한다.

돈의 위력을 풍자한 ‘돈이면 귀신도 사귀고, 부린다’는 ‘전가사귀(錢可使鬼)·전가통신(錢可通神)’ 속담도 있다. ‘돈이면 신과 통할 수 있다’는 ‘유전능사귀추마(有錢能使鬼推磨)’와 ‘나는 새도 떨어뜨릴 수 있다’ 한다. 염라대왕도 돈 앞에 한쪽 눈을 감아 문서에서 뺀다’ 한다. 저승 명부서 이름을 빼, 이승의 수명을 더 늘릴 수 있다는 뜻이니, 염라대왕도 매수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서양 속담에 ‘there is no free lunch'란 말이 있다. 공짜 점심이란 없다는 말이다. 세상의 거의 모든 행위에는 비용(cost)이 따른다. 말하자면 공짜가 아니다. 뇌물을 받아먹고 나서 발각될까봐 두려워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도 공짜에 대한 비용을 치루는 셈이다. 뇌물로 인해서 받게 되는 형사처벌은 뇌물 수수행위의 비용인 셈이다.

따라서 세상 어디에도 공짜는 없는 것이다. 국민들은 업자에게 뇌물을 받아 먹은 국회의원이나 정부 관료들이 쇠고랑을 차는 모습을 종종 봤을 것이다. 뇌물을 받을 땐 공짜라며 좋아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거기에는 냉엄한 경제학의 기본원리가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경제학의 기본원리중의 하나는 편익(benefits)과 비용(cost)에 관한 것인데 비용보다 편익이 클 때 우리는 어떤 경제행위를 하는 것이다.

공짜 뇌물은 뇌물을 받는 자에게 편익을 제공하기도 하지만 적지 않는 비용을 부담시킨다. 뇌물 수수행위에서 발생하는 심리적 불안과 공포감에 대한 형사처벌은 매우 큰 비용이다. 그러므로 공짜라고 넙쭉 받아 챙기는 뇌물은 그 뒷면에서 매우 높은 비용이 포함돼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공짜란 세상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따라서 누구든 공짜를 너무 좋아하다가는 불행한 인생을 살게 된다. 우리 사회는 상당히 부패해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부패 사례를 보면 대부분 정치인과 연결돼 있다. 정치인의 투명성 확립이 요구되는 부분이다. 그러나 뇌물의 비용(cost)은 매우 비싸다. 즉 뇌물을 받는 사람은 무거운 형사처벌을 받아야 한다. 그렇게 하면 뇌물의 비용 때문에 부정부패는 쉽게 얼굴을 들지 못한다. 오늘 좋은 일을 하면 내일이 아니더라도 후일 언젠가는 선행에 대한 보상을 받을 수 있다.

자기를 희생하면서 남에게 좋은 일을 하는 것은 오늘 현재로 볼 때는 비용일지 모르지만 후일에 받게 되는 정신적. 물질적 보상은 편익(benefit)인 것이 분명하다. 우리의 인생에는 비용(cost)과 편익(benefit)의 기본원리가 항상 작용하고 있다. 좋은 일을 하고 마음 편안하게 올바른 길을 걸을 수 있을 때 인간의 수명을 길어진다.

문제는 우리 사회가 정직하고 올바른 길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오히려 바보 취급을 받는다는 점이다. 한탕주의에 빠진 사람들이 많으니까 뇌물을 받더라도 억(億) 소리가 나는 거액의 뇌물만 받는다. 한 정치인 아들의 3년간 퇴직금을 50억을 받았다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뇌물수수 행위에 비용이 따르는 것은 경제학의 기본원리다. 그 비용은 수명 단축에 가산점을 받는다.

과거 신분제가 당연시되던 시절에는 몰라도 만인 평등을 헌법에 보장하는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있어서는 안 될 일이기 때문이다. 물질만능주의로 인해 신과 같은 돈은 곧 권력이고 지위라 효과·위력·위세는 실로 막강해 영혼마저 병들게 하는 일부 현대인들의 모습인 듯싶다. 요즘 드러난 고위층들의 뇌물 실체는 철저히 가려내야 법치가 바로 선다.

[전국매일신문] 최재혁 지방부국장
jhchoi@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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