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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의 데스크席] ‘가정의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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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의 데스크席] ‘가정의 달’
  • 최재혁 지방부국장
  • 승인 2023.05.11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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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 지방부국장

5월은 1년 12개월 중 다섯 번째 달로 아름다운 시기다.봄의 마지막 달로 거리 곳곳에서 푸르름을 느낄 수 있고, 각종 꽃이 화려한 자태를 뽐내며 자연의 아름다움을 드러낸다. ‘꽃의 여왕’ 화려한 장미를 보고 있노라면 5월이 계절의 여왕임을 절로 실감할 수 있다. 5월을 예찬한 글도 많다. ‘영원한 5월의 소년’ 수필가 피천득은 ‘오월’이라는 시를 남겼다.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한 살/ 청신한 얼굴이다(이하 중략)”, 이해인 수녀도 ‘5월의 시’를 통해 “풀잎은 풀잎대로/ 바람은 바람대로/ 축복의 서정시를 쓰는 오월(이하 중략)”이라고 했다.

수필가 이양하는 ‘신록 예찬’에서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보고 먼 산을 바라보라. 어린애의 웃음같이 깨끗하고 명랑한 오월의 하늘(이하 중략)”이라고 전했다. 5월은 각종 기념일도 많다. 노동계에서는 ‘노동절’이라고 부르는 근로자의 날(1일)을 비롯해 어린이날(5일), 어버이날(8일), 유권자의 날(10일), 동학농민혁명 기념일(11일), 국제 간호사의 날(12일), 스승의 날(15일), 5·18민주화운동 기념일(18일), 발명의 날(19일), 부부의 날(21일), 바다의 날(31일) 등이 있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부부의 날이 있는 5월은 가정의 달이라고도 한다.

5월은 어린이날을 포함한 황금연휴가 지나고 나니 한 달의 3분의 1 가까이가 훌쩍 지나버렸다.좋은 시절이 너무도 쉽사리 지나는구나 하는 아쉬움과 함께 왜 5월을 굳이 계절의 여왕이라고 이름 붙였을까 궁금해졌다. 5월을 '계절의 여왕'이라고 부른 사람은 친일파 문인으로 분류되는 여류시인 노천명(1913-1957)으로 1943년에 발간된 ‘노천명 시집’에 수록된 ‘푸른 5월 가운데’라는 시에서 “…라일락 숲에/내 젊은 꿈이 나비같이 앉은 정오/계절의 여왕 오월의 푸른 여신 앞에/내가 웬일로 무색하고 외롭구나…”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계절의 여왕 5월의 푸른 여신’이라고 읊었는데 시인의 말대로 5월이 되면 하루가 다르게 녹음이 짙어져 연녹색으로 무성한 주위의 나뭇잎들을 바라보노라면 손으로 한 움큼 쥐어 꾹 짜면 금방이라도 녹색 물이 뚝-뚝 떨어져 내릴 것만 같은 느낌마저 들곤 한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가을이 우수와 사색의 계절이라고 흔히들 말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왕성한 생명력으로 삶의 환희와 절정을 구가하는 자연을 보면서 오히려 인생무상 고독 세월의 덧없음을 더욱 절실하게 느끼게 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요즘 같은 시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왜냐하면 지난 가을 모든 나뭇잎을 떨구고 겨우내 앙상했던 가지에서 봄이 되면 새싹이 움터 올라 이맘때쯤이면 이처럼 싱그러움과 청춘의 상징 푸르름을 맘껏 뽐내는 신록을 보면서 한번 가면 다시 올 수 없는, 다시 오지 못하는 우리네 젊음과 비교되면서 인생무상과 덧없음을 더 진하게 느끼게 해 주기 때문이다. 5일 이 땅의 모든 어린이가 씩씩하고 슬기롭게 자라도록 돕기 위해 제정된 어린이날에 이어 곧바로 어버이날을 둔 것은 어버이라고 해서 태어날 때부터 나이 드신 노인이 아니었으며 한때는 “오늘은 어린이날 우리들 세상…”하며 목청껏 노래 부르며 즐거워하던 어린이였음을 상기시키기 위한 것은 아닐까 하는 다소 엉뚱한 생각도 스치는 것이다.

어버이날이 되면 주변에서 흔히 듣는 이야기가 지난 시절에 대한 반성의 이야기다. ‘부모님 살아 계실 때 조금 더 살갑게 대해드리고 보살펴 드릴 것을…, 그러지 못했던 것이 큰 한이 된다’느니 ‘조금만 더 사셨더라면 떳떳하게 성공한 모습을 보여 드렸을 텐데 자식으로서 힘들고 어렵게 살아가는 모습만 보여드린 것이 안타깝다고 애달프다느니’ 하는 하소연들을 자주 접하곤 한다.

한 번 흘러간 시간은 되돌릴 수 없고 다시 돌아오지도 않기에 더욱 회한이 남을 수밖에 없을 것으로 생각하니 애잔한 마음 금할 수 없다. 올해 어버이날에도 젊은 30~40대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효도 선물에 대한 선호도를 조사해 본 결과 현금이나 백화점 상품권 등 ‘용돈’을 준비했다는 응답이 60%가 넘었다고 하는데 이를 어버이의 입장에서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단지 어버이날이라고 하루 찾아와 용돈을 드리고 외식을 한다고 소란을 피우느니보다 평소에 더 많이 소통하고 교감하며 부모 자식 간의 유대와 정을 확인하는 것이 훨씬 바라는 일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그까짓 카네이션 한 송이 달아드리는 게 뭐 대수냐’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한편으론 여전히 어두운 그늘에서 고통 받는 어린이·노인들이 많다는 점은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다. 최근에만 해도 초등학교 어린이가 음주운전 차량과 대형화물에 치여 숨지는 일이 연이어 발생했다.그것도 어린이보호구역에서 발생한 사고여서 너무나 분통이 터지는 일이다. 어린 자녀를 잃은 부모의 심정을 생각하면 사고자에 대한 엄벌이 당연하고 어린이보호구역 내 교통안전 법규 강화가 더욱 필요한 시점이다. 어린이가 있는 곳은 어디나 다 어린이보호구역이라는 말에 공감이 간다. 그 정도로 안전을 강화하고 보호해야 할 어린이들이다.

부모에게 분리 되는 아이들이 매년 5천 명씩이나 나오고 있는 현실이다. 이 중 90% 이상이 아이의 의사와 상관없이 살아 있는 부모와 분리되는데 결국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우리나라에서는 자녀를 버려도 크게 처벌받지 않아 이를 조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부모에게 버려졌다는 것은 아이의 생명을 위협하는 것은 물론 성장 과정에서 정서적으로도 엄청난 트라우마로 자리 잡게 된다. 해외에서는 아동의 유기나 방임을 중범죄로 간주하고 징역형 등의 처벌이 이루어지는데 비해 우리나라에서는 너무나 관대한 실정이다. 관련 법안을 제정하여 자녀 유기 범죄에 대한 처벌이 강력하게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노인학대도 심각한 상황이다. 노인학대의 1순위가 자녀란 사실은 너무나 끔직한 통계다. 자식에게 폭행을 당하고도 출동한 경찰에게 이를 부인하는 것이 부모의 심정이다. 자식의 인생에 오점이 남을 것을 두려워 감추는 사이 폭행이 계속 반복되는 것이다. 급속한 고령화 사회 속에 노인인구가 급증하고 있지만 행복한 노년을 보내기 위한 지원과 혜택은 여전히 부족한 상황이다.

5월 가정의 달에도 여전히 우리 사회 곳곳에서 인륜과 천륜을 저버린 사건들이 사라지지 않는 것은 너무나 서글픈 현실이다. 해마다 돌아오는 가정의 달, 우리는 연중행사처럼 무감각하게 같은 걱정을 되풀이 하고 있다. 건강한 가정 없이는 건강한 사회를 이룰 수 없다. 가정의 달이 아이에게 맛있는 음식이나 장난감을 선물하고, 부모에게 알량한 용돈과 카네이션을 가슴에 달아주는 1회용 이벤트가 아니라 건강한 가정을 되살리는 자성의 계기가 돼야 한다.

[전국매일신문] 최재혁 지방부국장
jhchoi@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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