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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의 데스크席]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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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의 데스크席]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  
  • 최재혁 지방부국장
  • 승인 2023.04.27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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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 지방부국장

더불어민주당에 ‘대형 악재’가 터졌다. ‘돈봉투 의혹’이 그것이다. 이재명 대표의 사법리스크에 이은 전직 대표의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이다. 검찰의 야당과의 전쟁은 일상사가 됐다. 송영길 전 대표 시절, 전당 대회 돈봉투 사건은 당의 전직 사무부총장 휴대폰에 화석처럼 켜켜이 쌓여 있다. 정황이 구체적이어서 사실일 개연성이 높아 보인다. 이쯤 되면 ‘빼박’이라 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다. 야당 탄압이란 구호를 내걸기가 민망해진 이유다. 어쩔 수 없이 이재명 대표도 검찰 수사를 지켜보겠다고 고개를 숙였다.

이정근 전 더불어민주당 사무부총장의 휴대폰 통화 녹음파일의 단초로 시작된 ‘민주당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 수사’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이 전 부총장 휴대폰에서 추출된 녹음파일 3만여 개 중 5000여 개가 포렌식 돼 현직 의원 다수를 포함 40여 명이 수사선상에 오르면서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는 얘기도 나온다. 이정근씨 휴대폰 녹음파일이 ‘민주당 돈봉투 수사’의 불쏘시개가 되고 있다. 파일이 ‘돈봉투 전대 의혹’의 전모를 규명할 ‘스모킹건’이 될지 관심이 쏠린다. 스마트폰만 아니라 CCTV, 노트북, 테블릿, 자동차 블랙박스 등에 어김없이 증거가 남는다.

전당대회 돈봉투는 구태 중 구태다. 당사자들은 300만원에서 50만원 정도의 거마비나 회식비라 치부할지 모르겠지만, 여야 정당들은 지난 20여 년간 정치자금과 뇌물 사건으로 셀 수도 없는 수사를 받아왔다. 대선자금 수사부터 개인 비리까지 매년 검찰 청사를 오고 간 정치인이 얼마나 많았던가. 티끌만한 부정한 돈거래도 있어선 안 될 시대가 이젠 되었건만 정당의 후진성은 국민들을 절망케 한다.
 
이정근 씨의 휴대폰은 검찰에게 야당을 수사할 수 있는 보고가 됐다. 이 씨 본인의 사기 사건으로 시작된 수사는 이번이 세 번째이다. 첫째 사건은 노영민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이정근 씨를 CJ에 취업 청탁한 것이다. 이 사건은 아직 기소 여부가 결정되지 않았다. 두 번째는 돈 봉투 소리까지 녹음됐다는 노웅래 의원의 정치자금법 수사다. 두 사건은 휴대폰에 녹취 된 개별 비리 혐의들이다.
 
드디어 세 번째인 전당 대회 돈봉투 사건이 터졌다. 검찰은 이번엔 야당 다수 의원을 동시 표적으로 삼고 있다. 민주당 정체성이 시험대에 오른 것이다. 범죄가 있었다면 분명히 ‘주범’과 ‘종범’이 있을 것이고 그에 따라 처분도 갈릴 것이다. 이번 사안의 중대성은 이전 개별 사건들과 달리 민주당 내 조직적 비리 혐의에 있다는 것이다.

검찰 수사와 녹취록에 따르면 송 전 대표의 측근인 강래구 한국감사협회장이 이 전 부총장을 통해 불법 자금을 윤 의원에게 건넸고, 이 돈 가운데 6000만원은 300만원씩 봉투에 넣어 의원들에게, 3000만원은 50만원씩 대의원들에게 전달됐다. “윤 의원이 ‘의원들을 좀 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얘기하더라” “봉투 10개가 준비됐으니 윤 의원에게 전달해 달라” “윤. 전달했음” 등 녹취록과 문자에는 적나라한 대화가 담겼다. 의원 3명이 “형님, 기왕 하는 김에 우리도 주세요”라고 했다는 대목은 할 말을 잃게 한다.

국민들은 충격에 빠졌다. 1960∼70년대 정치권에 있었던 후진적 관행이 버젓이 남아 있다는 사실에 기가 막혀서다. 집권당 대표 선출과정의 금품거래는 정당 내부만의 문제가 아닌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중대 범죄다. 당권 매표는 민주주의를 돈을 받고 팔아넘긴 것과 다를 바 없다. 정치판이 뿌리째 썩어 있다는 공분이 커지고 있다.

민주당을 캄캄하게 만드는 것은 돈봉투 의혹 사건의 속성이다. 어떤 선거에서나 지지세를 모으려는 목적의 현금 살포는 독이 든 ‘독’과다. 입 다물고 있으면 아무 일이 없이 묻힐 것이라고 믿는 것은 오산이다. 부정한 금품이 공여되거나 수수하면 어떤 계기로써 불거진다는 게 경험칙이다. 이해관계가 틀어지거나 갈등이 야기되면 인지 수사망에 걸려드는 식이다. 위법한 돈의 역습이라 할 것이며 민주당 돈봉투 의혹도 다를 바 없는 경우다. 녹취 파일까지 존재하는 상황이면 설상가상이다. 방어권 다룸의 여지가 별로 없는 탓에 법적 처분을 기다리는 처지가 되기 십상이다.

돈봉투 의혹이 당대표 선출을 위한 전대 선거를 앞두고 기획·실행된 것이라면 더더욱 퇴로를 찾기 힘들게 된다. 적잖은 액수의 돈이 다수에게 뿌려진 범죄 혐의의 상당성이 위중한 것은 물론이고 그에 더해 ‘표심 오염’에 대한 합리적인 의심을 배제할 수 없는 지경이면 전대 결과의 정당성이 흔들리는 것으로 보는 게 맞다. 그런 법리의 영역과 함께 정치의 영역에서 보더라도 용인될 수 없는 문제일뿐 아니라 정당제와 대의제 근간을 훼손시킨다는 점에서 달리 변명의 여지가 있을 수 없다.

민주당에는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에 이은 ‘초대형 악재’다. 이 대표 관련 검찰 수사와는 결이 다르다. 대장동·성남FC 사건은 증거가 아직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의원들이 직접 ‘검은 돈’을 받아 전달하는 행태가 적나라하게 공개됐다. 녹취록은 ‘빼도 박도 못할’ 증거다. 관련자들이 입을 열기 시작하면 당 전체가 부패 프레임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까.

이런데도 당 지도부의 대응은 미온적이었다. 검찰의 의원실 압수수색 이후 5일 동안 “정치탄압” “국면 전환용 기획수사”라고 반발하며 지켜만 봤다. 오죽하면 조응천 민주당 의원이 “짜깁기, 조작, 이런 식으로 하면 더 코너로 몰릴 것”이라고 했겠나. 국민은 바보가 아니다. 생생한 녹취록이 잇따르자 야당 탄압용 수사라는 반발 여론은 쏙 들어갔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을 겨냥해 ‘더불어돈봉투당’, ‘쩐당대회’라며 원색적 공세를 퍼붓고 있다. 민주당은 “검찰이 녹취파일을 흘렸다”며 국면전환용 기획수사라고 맞서고는 있지만 아무리 봐도 군색해 보인다. 광범위하게 축적해 놓은 이정근 전 부총장의 ‘팩트’들이 만만치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은 이 전 사무부총장의 휴대전화에서 확보한 3만개에 달하는 녹취파일에서 시작됐다고 전해진다. 통화 내용엔 봉투를 언급하거나 돈 전달 필요성을 언급한 내용 등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이재명 대표는 최근 국회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 앞서 “이번 일로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린 점에 대해 당대표로서 깊이 사과드린다”며 고개를 숙였다. 구태요, 악습이다. 

민주당 전대, ‘당권 매표 의혹’은 정치자금법을 위반, 징역 4년 6개월을 선고받은 이씨의 통화 녹음파일이 수사 일등 공신이 됐다. 돈 몇 푼에 넘어가 툭하면 터지는 정치권 검은돈 거래는 정치개혁 당위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300만·50만 원이 “한 달 밥값·기름값도 안 되는 돈”이란 사고와 ‘매표용 돈봉투 살포’는 시궁창서만 볼 수 있는 민주주의를 돈을 받고 팔아넘긴 경악한 일과 다름없다.

압도적인 의석을 확보한 제1당에서, 그것도 2년 전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다. 국민은 이런 후진적인 정치 행태는 사라진 줄 알았다. 그동안 공공연하게 벌어진 일은 아닌지 의심하게 된다. 무엇보다 엄정한 수사를 통해 명백히 진상을 밝히는 게 우선이다. 민주당도 덮어놓고 제 식구 감쌀 게 아니라 자체 조사를 통해 실체를 밝혀야 국민 신뢰를 얻을 수 있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 했지만 현대는 말·행동·범죄는 휴대폰이 녹음·촬영, 증거로 기록된다. 공인은 방에 혼자 있을 때도 남이 유리 상자 안의 나를 보고 있다는 것처럼 생각, 몸가짐을 스스로 지키는 신독(愼獨)이 생활화돼야 한다. 세상에 ‘공짜 점심’이 없듯이 ‘영원한 비밀’도 없다. 예부터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고 했다. 입에서 나온 말이나 손 끝을 떠난 문자는 어디서든 덫이 될 수 있다. 그러니 남에게 감출 ‘비밀’ 자체를 만들지 않는 게 좋다.

[전국매일신문] 최재혁 지방부국장
jhchoi@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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