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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의 데스크席] 20일은 세계 꿀벌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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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의 데스크席] 20일은 세계 꿀벌의 날
  • 최재혁 지방부국장
  • 승인 2023.05.18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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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 지방부국장

2년째 계속된 꿀벌 실종과 폐사의 후폭풍이 사과 등 전국 과수농가로 번져 피해가 우려된다. 벌에 의한 꽃가루받이 수정이 필수적인데 수정에 필요한 꿀벌이 사라져 영농에 큰 차질이 빚어질 전망이기 때문이다.하지만 꿀벌 실종과 폐사는 전국적인 현상이어서 꿀벌 한 통 가격이 40만∼50만원으로 2년 만에 2배 이상 올랐다. 그런데도 구입하기조차 어려워 수입산 호박벌로 대체하거나 인공 수분을 할 경우 기형이나 상품성이 떨어진 딸기를 생산할 가능성이 커 과수농가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오랜 지인중에 지금도 양봉을 하는 이가 있다. 벌이 정직하듯 그도 정직한 벌치기다. 농도가 묽거나 설탕을 먹인 사양 꿀 같은 것을 팔았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고객들은 대부분 수십 년간 거래를 해온 단골들이다. 꿀이 생산되기 훨씬 전부터 연락을 해서 미리 예약을 하지 않으면 단 한 병도 구하기가 어렵다. 작년에는 꿀을 좀 사야겠다고 미리 연락을 했지만 잦은 봄비 탓에 밀원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아 꿀을 거의 뜨지 못했다며 팔 물건이 없다고 미안해했다.

그는 요즘 마음고생이 심한 모양이다. 정직과 무관하게 몇 년 전부터 까닭 없이 벌이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란다. 달포 전 안부를 물었더니 최근 많은 벌들이 폐사해 이제 양봉을 그만둬야할지 모르겠다는 걱정을 했다. 얼마 전 전화에서는 양봉을 접을 수가 없어 벌을 사다가 세력을 키우고 아카시아 꽃이 많이 핀 곳으로 이동해 추이를 지켜보고 있단다. 벌이 사라지는 이유를 물으니 곤충 전문가들의 견해를 이야기한다.

그는 “관련 학자들은 ‘과도한 이산화탄소 발생으로 인한 오존층 파괴와 이에 따른 자외선의 급격한 증가로 꿀벌의 군집이 붕괴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화석연료 사용에 따른 심각한 공해발생 및 급격한 지구 환경변화가 벌들의 집단 폐사의 주원인 중 하나일 것’이라 추정하고 있다”고 했다. 게다가 “해충 구제를 한다면서 무분별하게 살포히는 농약의 과다사용도 환경에 민감한 벌들에겐 재앙수준의 피해를 가지고 오지 않겠냐”는 입장이었다.

20일은 세계 꿀벌의 날이다. 이날은 2017년 12월 20일, 국제연합(UN)이 전 세계의 식량 생산과 생태계 보호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꿀벌의 가치를 알리기 위해 지정했다. 지구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꿀벌의 개체 수 감소가 지구 온난화에 의한 이상기후로 벌들이 성장과 월동에 문제가 생겼으며 개화시기 변화 적응도 못한다는 것이다.

꿀벌이 사라지면 인간도 사라질 것이라는 경고가 나온 지는 오래전이다. 세계적으로 저명한 과학자는 벌이 사라지고 나면 인류의 생명은 기껏 4년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는 절망적 예측도 내놓았다. 꿀벌이 활발하게 서식하는 곳은 건강한 생태계가 유지되는 곳으로 여겨진다. 벌이 사라지면 꿀을 못 먹게 되는 그런 작은 문제가 아니라 인류멸절의 중차대한 사변이다. 꿀벌이 사라지는 것은 단순히 곤충 한 종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지구 미래가 사라지는 것이다.

기온 상승과 극단적인 기상 현상으로 대변되는 기후 변화가 농사짓는 이들을 당혹하게 하는 꿀벌 실종 사태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마야 룬데는 “기후 변화는 지금 우리의 앞마당에서도 여실히 경험할 수 있는 일”이라고 경고한다. 그의 말처럼 기후 변화는 거창한 명제가 아니라 우리 밥상에 바로 영향을 미치는 일이다.

당장 올해 과일 농사를 짓는 강원 농가들이 꿀벌을 구하지 못해 울상을 짓는다고 한다. 최근 몇 년 사이 양봉농가마다 꿀벌 폐사 사태를 겪는데 특히나 지난해 가을부터 올해 2월까지 지역 양봉농가에서 키우는 꿀벌 중 70%가 폐사하거나 사라졌다. 한국양봉협회는 전국 꿀벌의 절반 이상이 사라진 걸로 본다.

통상 4월이면 과일 농장에서는 바쁘게 꽃가루를 나르는 꿀벌 소리가 시끄러워야 하는데 올해는 벌 구경하기가 어렵다. 벌 구하기가 별 따기만큼 어렵다는 이야기가 나올 지경이다. 그 때문에 직접 붓을 들고 인공수분에 나서기도 한다.앨런 와이즈먼의 환경과학 논픽션 ‘인간 없는 세상’을 보면 ‘지구에서 다른 생명의 생존에 가장 위협적인 생명’이라는 오명을 쓴 인간이 사라진 세계에서는 뭇 생명이 풍요를 구가한다.

와이즈먼이 인간의 발길이 끊어진 뒤 생물 다양성이 극적으로 풍부해진 곳으로 사례를 든 우리나라의 비무장지대, 원전 사고가 난 우크라이나 체르노빌의 출입금지구역, 사람의 발길이 극히 드물게 닿는 폴란드의 원시 침엽수림 지대에서 자연은 조용히 인간의 흔적을 지워간다. 그러나 ‘꿀벌 없는 세상’은 인간 없는 세상과는 정반대의 세상이 될 것이다. 생명 다양성이 줄어드는 데다 더군다나 꿀벌의 수분에 많은 부분을 의지하는 인간에게는 더욱 단조롭고 빈곤한 세상이 될 것이다.

2년 연속 실종과 폐사 현상이 이어지면서 양봉농가 피해뿐만 아니라 과수 농가도 후폭풍에 시달리고 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수정을 위해 꿀벌을 필요로 하는 과수농가들에 대한 뚜렷한 대책은 마련되지 않고 있다. 꿀벌 실종은 1차적으로 꿀농사를 짓는 양봉농가에 타격을 주며, 나아가 채소나 과수 농가에도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꿀벌이 사라진 탓에 지난해 꿀벌에 의존해 꽃가루받이를 하는 시설채소 재배 농가가 잇따라 피해를 본 사례가 이를 증명한다.

전문가들은 올해도 꿀벌 실종 여파가 과수·채소 농가까지 직격 할 것이라며 경고하고 있는 상황이다.꿀벌 실종 시대를 살아가면서 꿀벌 멸종 시대를 맞지 않으려면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크게는 기후변화를 늦추기 위한 방안을 실천하는 일에서부터 작게는 살충제 사용을 줄이는 일까지. 쉽지 않은 일이지만 희망을 내려놓기는 이르다. 꿀벌은 드물게 사회적 생활을 하는 동물로 구성원의 지식과 지능을 효과적으로 결집해 훌륭한 집단 선택을 끌어낸다.신생대 제3기의 올리고세 지층에서 화석으로 발견돼 최소 3000만 년 동안 명맥을 이어온 꿀벌이 우리 세대에 종말을 맞는다는 건 상상조차 하기 싫은 일이다.

국제환경보호단체인 그린피스(Greenpeace)에 의하면 식량 재배에서 꿀벌의 기여 가치는 세계적으로 373조원이나 된다고 주장하고, 우리나라도 꿀벌의 경제적 가치가 6조원대에 이른다고 한다. 무궁무진한 가치를 지닌 꿀벌이 사라져가지만 평상시 대수롭지 않게 여기듯,우리 인간의 단편적 어리석음은 주변의 소중한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의 말은 함께 살아야 할 꿀벌이 사라지는 환경을 계속 방치한다면 농업의 위기, 미래 생태계의 위기 더 나아가 인류 자신에게도 큰 위기를 가져다 줄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정부는 반복되는 전국적인 꿀벌 실종 원인을 명확히 밝혀내고 대처 방안을 시급하게 마련해야 한다. ‘지구에서 벌들이 사라진다면 인류가 생존할 수 있는 기간은 4년뿐이다’는 노벨문학상 작가 모리스 마테를링크의 말을 곱씹어 볼 때이다.

[전국매일신문] 최재혁 지방부국장
jhchoi@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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