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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열의 窓] 일 년 농사의 마무리, 가을걷이를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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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열의 窓] 일 년 농사의 마무리, 가을걷이를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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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3.10.08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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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사이버대학교 특임교수 문제열

가을은 한해의 농사를 걷어드리는 수확의 계절이다. 가을걷이란 한해 농사의 마무리로 알차게 여문 곡식들을 거두어들이는 일로 추수(秋收) 또는 서수(西收)라고 한다. 가을걷이는 곡식을 거두는 일, 이를 말리는 일 그리고 이후에 알곡을 떨어내는 타작까지 일련의 과정을 뜻한다. 추분(秋分)부터 시작해 본격적인 추위가 시작되기 전까지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모든 일을 마쳐야한다. 때를 놓치면 동해(凍害)와 참새·쥐 등의 피해를 입어 많은 낟알을 버릴 수 있다. 때문에 가을걷이에는 노동력이 집중되기 마련이다.

많은 가을걷이 중 논농사의 벼 베기는 일 년 중 가장 중요한 작업으로 손꼽힌다. ‘밥’이 식탁의 기본이었기에 벼 수확은 곡식가운데 당연 주인공이다. 이삭이 패고 나서 40일 정도가 지나 벼가 알이 차고 이삭이 누런빛을 띠고 고개를 숙이게 되면 벼 베기 작업이 시작된다. 이때는 메뚜기도 많을 때라 잡아 볶아 먹었다. 농기계가 나오기 전에는 서리가 내린 다음에 낫으로 벼 베기를 시작했다. 벼를 베면 물이 없는 논에서는 바닥에서 말렸고, 습답에서는 바로 단으로 묶어서 논바닥이나 논둑에 세워서 보통 10일 이상 말렸다. 볏단이 마르면 타작할 마당으로 옮겼다. 지게로 져 나르거나 소달구지와 경운기를 사용했다. 옮긴 볏단은 마당바닥에 짚이나 거적을 깔고 동그랗게 쌓아 올리고, 낟가리의 꼭대기에는 이엉이나 거적을 덮어 빗물이 스며들지 못하게 하고 타작 날을 잡았다.

타작은 1960년대 초만 하더라도 사람이 발로 밟아 돌리는 족답탈곡기가 대부분이었고 이어 발동기가 돌리는 동력탈곡기, 1970년대 경운기가 돌리는 자동탈곡기 순서로 발전했다. 보통 서리가 내리는 상강(霜降) 무렵이면 타작이 끝나지만 일손이 부족하면 눈이 올 때까지 계속됐다. 횃불을 밝혀가며 이른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타작을 했다. 모든 일은 이웃과 함께 하는 품앗이로 진행됐다.  

가을걷이를 하는 농작물은 벼 이외도 콩·조·메밀·팥·기장 등 곡물과 사과·배·감·대추·석류 등 과일, 목화·참깨·고구마·고추 등 발작물이 있다. 정학유의 <농가월령가>에도 ‘맹추(孟秋:초가을)에는 김매기·피 고르기·벌초하기·김장채소파종하기, 중추(仲秋:한가을)에는 모과와 고추·곡식수확하기·밀과 모리심기, 계추(季秋늦가을)에는 추수하기’라는 구절이 있다. 가을걷이를 해야 할 곡식과 일들이 곳곳에 널려 있음을 알리는 말이다. 

24절기 중 가을이 시작되는 입추(立秋)부터, 처서(處暑), 백로(白露), 추분(秋分), 한로(寒露), 추분(秋分), 서리가 내리기 시작하는 상강(霜降)까지 농촌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농가에서는 입추가 되면 겨울철 먹을 김장을 위해 무와 배추를 파종한다. 처서에는 햇볕이 누그러져 더 자라지 않는 풀을 뽑아 준다. 백로에는 농작물에 이슬이 맺히는 시기로 수확마무리 관리를 해준다. 추분에는 사과·배·밤 등 과일을 수확하기 시작하며 건초를 장만하고, 고추를 말리는 등 가을걷이를 시작한다. 한로에는 벼베기, 타작 등 가을걷이가 한창이다. 상강에는 가을걷이가 거의 끝나는 무렵으로 보리파종을 한다. 가을은 월동을 준비하는 중요한 계절이기도 하다. 가을에 거둬들인 것을 갈무리하는 일로 김장을 하고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한 땔나무 마련도 이때 했다. 

우리 속담에 ‘가을에는 부지깽이도 덤빈다’는 말이 있다. 이는 가을철에는 어찌나 바쁜지 아무 쓸모없던 것까지 일하러 나선다는 뜻이다. 또 ‘가을 들판에는 대부인 마님이 나막신짝 들고 나선다’는 속담도 있다. 신분 높은 사람도 일손을 거들어야 할 만큼, 농촌의 가을이 바쁜 계절임을 강조하는 말들이다. 오죽하면 ‘가을에는 죽은 송장도 꿈지럭 거린다’고 했을까. 

요즘은 벼 수확시기도 옛날에 비해 40일 정도 빨라졌다. 벼 베기가 빨라진 이유는 기계화에 따라 모내기가 앞당겨졌고, 바로 논에서 콤바인으로 벼를 베고 동시에 탈곡해 포대에 담기 때문이다. 벼 베기나 볏단을 옮겨 마당에서 탈곡하는 광경은 이제 볼 수 없다. 옛날 옛적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백 명 이상이 매달려 하던 일을 콤바인 1대가 불과 서너 시간 만에 끝낸다. 놀랍고도 고마운 일이다. 올해 가을걷이가 끝나면 옛 동무들과 추수에 대한 기억을 안주삼아 술 한잔 해야겠다. 모일 날들이 점점 줄어드는 것 같아 아쉽기만 하다. 

[전국매일신문] 문제열 국제사이버대학교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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