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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의 데스크席] 겨울의 추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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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의 데스크席] 겨울의 추억들
  • 최재혁 지방부국장
  • 승인 2023.12.21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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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 지방부국장

롱패딩을 입었지만 얼굴을 때리는 칼바람은 피할 수 없다. 우리의 겨울은 맑고 쨍한 대신 춥고 건조하다. 아플 만큼 추워서 괴로울 때도 있지만 정신을 번쩍 들게 하는 능력이 있다. 음식으로 비유하자면, 아마도 술 마신 다음날 정신을 돌아오게 하는 해장국 같은 맛이 아닐까 싶다. 한 해 중 이 겨울이 없다면 무척 서운할 것 같다. 기후변화로 계절별 강우량의 기존 문법이 깨지고 있긴 하지만, 한국 겨울은 한 해 중 가장 건조한 계절이다.

대기가 건조하기 때문에 하늘도 거울을 보듯 깨끗하다. 특히 밤사이에도 대기가 안정적이어서 별을 보기 좋다. 올해 겨울도 홀로 빛나는 1등급 별들을 볼 수 있었으면, 지난해 마지막 날 아파트 옥상에서 별을 보며 2022년과 혼자만의 이별식을 했다. 올해도 참 아등바등 애를 쓰며 살았구나, 내 욕심 때문에 주변 사람들에게 얼마나 피해를 줬나, 왜 이렇게 살아야 했나…. 매년 조금씩이라도 성숙해지면 좋을 텐데 그게 참 쉽지 않다.

나이가 들면서 새해맞이의 설렘도 점점 뒤늦게 찾아오는 걸 느낀다. 이때마다 소한(1월5일)과 대한(1월20일) 사이는 한 해 중 가장 추운 시기이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찾고는 한다. ‘대한이 소한 집에 가서 얼어 죽는다’는 말이 있듯이 한 해를 시작하는 1월 초·중순은 한 해 중 가장 추운 날들이 이어진다. 마치 새봄을 맞기 전 겨울잠을 자는 생명들처럼 웅크리며 충전하는 시간을 가져야 진짜 새해를 맞을 수 있다는 듯 말이다.

새해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에 앞서 지난해 만났던 이들과 함께한 날씨의 공기를 떠올리며 기억을 더듬고 있다. 날이 좋아서, 날이 흐려서, 날이 추워서, 날이 더워서, 문득 좋았던 순간들이 많았던 것 같다. 반갑고 고마웠던 순간들과 미안하고 부끄러웠던 순간들이 기억에 재저장될 시간이 필요하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때리는 지금의 시간과 추억들을 내 몸 어딘가에 있는 장기 기억장치로 이동·저장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내년에도 날씨 덕분에 더 크게 웃을 수 있고, 혹은 날씨 때문에 더 크게 울 일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호우주의보와 한파주의보가 발표된 날은 다른 특보가 발표된 날보다 날씨가 모든 것을 결정하지는 않지만 날씨로부터 온전히 자유로운 날은 생각보다 적을 것이다. 내년에도 ‘날씨 일기’를 쓰면서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지켜가야겠다고 생각 중이다. 미세하게 달라지는 계절 변화를 느끼는 데 집중하다 보니 어른이 되어버린 뒤 이어지는 ‘노잼’ 일상이 좀 더 다채로워졌다. 또 한 해가 지나야 다시 만날 수 있는 소한 추위도 금세 그리워질 듯하다.

쌀쌀해진 날씨에 겨울철 대표 간식 ‘붕어빵’ ,‘호떡’ 노점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하지만 붕어빵 가격이 2배가량 상승하면서 1000원 한 장으로도 서민들과 아이들에게 소소한 행복을 주던 옛 정취는 느끼기 어려울 전망이다. 최근 계속되고 있는 고물가 여파가 붕어빵·호떡 등 겨울철 서민 간식에도 미치고 있는 것. 재료비가 인상되면서 지난해까지 1000원에 3개 수준으로 판매하던 붕어빵 가격이 올해는 1000원에 2개~2000원에 3개 수준으로 오른 것이다. 1000원짜리 서민 간식이었던 붕어빵의 원가 부담이 높아지면서 겨울철이면 동네마다 흔했던 노점들도 줄고 있는 추세다. 매년 커지고 있는 원가 부담에 예전처럼 박리다매 형식으로 붕어빵을 판매하면 이윤을 남기기 어려진 탓이다.

사실 우리 추억 대부분은 거리에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추억은 ‘맛있다’. 필자의 딸은 어린 시절, 학교가 끝난 뒤 친구와 걸으며 먹었던 컵 떡볶이. 방방(트램펄린) 타러 가며 손에 들고 가던 피카츄 돈가스. 조금 컸다고 빨간 소스 발라서 먹던 라면땅. 학원 가는 길에 사 먹던 염통 꼬치. 그리고 추운 겨울, 마음까지 녹여주던 붕어빵과 풀빵 그리고 호떡. 그렇게 나는 거리에서 컸고 먹은 음식만큼 추억도 자랐다.

청춘도 거리를 벗어나지 못했다. 대학 시절, 돈을 아끼기 위해 길거리 포차에서 술을 마시곤 했다. 단골 떡볶이집은 특별했다. 떡볶이 위에 깻잎을 뿌려줬다. 깻잎만으로 소주 석잔은 마실 수 있었다. 그게 그렇게 고소할 수가 없었다. 조금 더 사치를 부리면 튀김을 시키곤 했다. 1000원에 3개인 튀김을 고를 땐 그 어느 때보다 신중했다. 김말이, 오징어튀김, 새우튀김, 만두튀김, 잡채말이 다 맛있었다. 개중 큰 걸 고르려 집게를 바쁘게 움직이곤 했다.

그렇게 고른 튀김을 떡볶이에 버무려 먹으면 비싼 안주 부럽지 않았다. 거기에 어묵 국물까지 떠먹으면 금상첨화였다. 떡볶이·튀김·어묵 국물이 내 기준 ‘분식 삼합’이었다. 여전히 거리를 거리를 거닌다. 추워지니 붕어빵 점포가 하나둘 보인다. 거리에 추억이 쏟아져 나온다. 시린 코끝만큼 마음이 뭉클해진다. 반가움을 안고 점포에 들어선다. 아이러니하게도 가격은 반갑지 않다. 1000원에 2개. 붕어빵이 아니라 ‘金붕어빵’이다. 멈칫하다 붕어빵 4개를 사 온다. ‘1000원에 5개던 시절이 있었는데’라고 회상하며 붕어의 머리를 문다. 붕어는 죄가 없다. 죄는 고물가에게 있다. 수입 팥, 밀가루, 식용유, 설탕 등 재룟값이 다 올랐다. 1000원에 1개짜리 붕어빵도 있다 하니 말 다 했다. 그리운 시절, 가격마저 추억이 됐다. 비싼 세상 길거리 음식마저 사치가 됐다.

호떡은 대표적인 겨울철 길거리 음식이다.플라스틱 대야에 담긴 밀가루 반죽이 출렁인다. 당겼다, 놓았다를 반복하며 치대던 반죽을 가위로 싹둑싹둑 잘라낸다. 찰진 반죽 가운데 흑설탕, 호박씨, 볶은 땅콩, 캐슈너트, 호두를 부숴 넣고 계핏가루도 함께 넣는다. 기름이 달궈진 팬에 한 덩어리씩 넣고 지지다가 나무 손잡이가 달린 누르개로 넓적하게 눌러 바삭하게 익기를 기다린다. 만드는 과정부터 오감이 즐거운 호떡의 계절이 왔다.

이름에 ‘떡’이 들어가지만 이름에서 짐작하듯 전통 떡은 아니다. 임오군란을 계기로 조선에 진출한 청나라 군인들과 함께 들어왔다는 유래가 가장 유력하다. 호떡의 뿌리는 중앙아시아로, 서역에 사는 호인들이 먹는 떡이어서 호(胡)떡으로 불렸다고 한다. 아랍과 중앙아시아에서 먹는 ‘난’이라는 빵이 호떡의 원조인 셈이다. 이들의 조상이 먹었던 밀가루 빵이 실크로드를 통해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 전해졌다. 속담 중에 ‘호떡집에 불났다’가 있다. 어수선하고 시끄럽다, 혹은 사람이 많아 가게에 장사가 잘된다는 뜻으로 활용된다. 일제강점기 때 중국인들이 몰려와 호떡 장사를 하는데, 불티나게 잘 팔렸다고 해서 생긴 말이다. 요즘도 속담처럼 호떡집에 불이 난다.

문제는 문 닫는 호떡집이 많아져 남은 호떡집에 불이 난다는 것이다. 물가 상승으로 원재료 가격이 오른 탓이다. 호떡 가격이 매년 오르더니 이제는 그마저도 사 먹기 어려워 시판 ‘호떡믹스’로 해 먹는 경우가 많아졌다. 때론 음식으로 계절을 맞이하고 회상한다. 겨울을 대표하는 길거리 주전부리 붕어빵과 호떡 역시 그러하다. 한 개당 천원을 훌쩍 넘긴 가격이 됐지만 학창 시절의 추억이 포함된 값이라 여기니 비싸게 느껴지지 않는다. 오가다 마주하기 어렵다면 찾아 나서면 된다. 추운 겨울에도 발길을 붙잡던, 길거리 노점에서 호호 불어 먹던 호떡의 따뜻함이 그립다. 왜 호떡은 길에서 먹어야 제일 맛있을까. 걷다가 우연히 마주친 친구처럼 언제 봐도 반가운 추억의 맛까지 깃들어있기 때문인가 보다. 오늘 따뜻한 만둣국이 생각나는 것은 필자뿐만은 아닐 것이다. 

[전국매일신문] 최재혁 지방부국장
jhchoi@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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