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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의 데스크席] 선택의 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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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의 데스크席] 선택의 기로
  • 최재혁 지방부국장
  • 승인 2024.04.04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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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 지방부국장

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왔. 나를 대신해 나랏일 맡길 대표를 뽑는 가장 중요한 정치행사다. 이 당연한 얘기를 할 만큼 선거가 본질에서 완전히 이탈했다. 선거일이 임박했어도 응당 다퉈야 할 국가의제는 아예 운위조차 되지 않았다. 오직 심판론을 앞세운 적대감과 복수심으로 선거판이 난장이 돼 있다. 대상이 정권이건 야당이건 심판론은 가당찮은 얘기다. 독재, 독선, 탈법, 불통, 무능, 불공정 등 심판의 이유가 여야에 공히 해당하는 것일진대 누가 누구를 심판 운운하는가. 자기성찰 없는 양당의 내로남불식 심판론은 하도 같잖아 더 거론할 것도 없다. 심판론을 뒤집으면 그게 다시 독재론이다. 심판이 정치목표가 되면 어떤 내부비판이나 절충의견도 다 이적행위가 되고 당 지도부는 결사옹위 대상이 된다.

심판론은 끝없는 악순환이다. 국민의힘 대표 선출 과정이나 민주당의 이재명 표결 행태, 공천과정 등이 다 이런 정치문화의 반영이다. 상대적으로 합리적인 정치인들은 해당행위자로 몰려 제거됐고, 충성스러운 전투력이 튀는 이들은 거의 살아남았다. 전문성 강화, 소수배려 취지의 비례대표도 일부를 제외하고는 이런 목적의 인선으로 채워졌다. 총선후보들은 그래서 정치인 아닌, 대우 괜찮은 여의도 직장에 취직하려는 구직자들로 보인다. 선명성, 충성심을 사는 이 입사시험에서 막스 베버의 정치적 소명의식 따위는 쓸데없는 오버스펙이다. 정치는 결국 직장 내 자리다툼, 힘 다툼이 되고 정작 주권자는 밖으로 소외된다. 거칠게 싸잡아 말했지만 부인키 어려운 우리 정치의 실상이다.

‘누구 이겨라’만 외쳐대다 정치판은 싸움꾼들이 유세 떠는 격투장이 됐다. 조국당 돌풍도 그런 것이다. 국가사법권까지 능멸하며 대놓고 정치를 한풀이 싸움터로 만들겠다는데 거기에 20~30% 지지를 보내는 국민은 뭔가. 이승만 박정희 YS DJ 같은 거대 지도자가 이슈를 던지고 국민이 객체로 동원되던 시대는 오래전에 지났다. 그런데도 고만고만한 정치인들의 싸움판에 휘둘리는 건 시대착오적이거니와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유권자가 주체성을 자각해야 한다는 말이다. 대표를 제대로 선택해 정치를 바꾸고 국가와 삶의 질을 발전시키는 건 오롯이 주권자 국민의 역할이자 책임이다.

오늘 아침을 떠올려 보자. 눈을 뜬 후 일어날까, 5분 더 누워있을까를 고민했다. 나아가 전공, 직업, 배우자까지 선택의 조각을 이어 붙이면 삶이 된다. 나라의 명운 또한 순간의 선택으로 결정된다. 정치적 박해를 받던 영국의 청교도인들이 신대륙을 선택해 이주했고, 이는 미국이 자유를 중요시하는 배경이 됐다. 한반도가 남북으로 갈라진 것 역시 한국전쟁을 일으킨 누군가의 선택의 결과다.오는 10일은 제22대 국회의원 선거가 있는 날이다.

선거는 한자로 가릴 선(選), 들 거(擧)를 쓰는데, 여러 사람 가운데 국민을 위해 필요한 사람을 가려내 뽑아 든다는 의미이다. 선거는 대의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이 정책 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구체적이고 핵심적인 수단이다. 정당과 후보자의 선택은 끝이 났다. 이제 유권자 선택의 시간이다.로버트 프로스트는 “생각만으로는 찬성이나 반대를 표시할 수 없다. 투표해야 가능하다”고 투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내 삶과 우리의 내일을 바꿀 수 있는 후보를 꼼꼼하게 비교해 보고 투표장에서 기표로 선택하자. 선택하지 않으면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논어’에 나오는 과유불급(過猶不及)은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는 뜻으로, 중용(中庸)의 중요성 강조한 공자의 가르침이다.

격동의 근대를 지나 현대에 이르기까지 세계사를 뒤돌아보면 자본과 욕망 그리고 정치와 권력으로 뒤엉킨 ‘과잉의 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잉’이란 예정되거나 필요한 수량보다 초과된 상태를 말한다. 과잉은 과도하고 과열되게 만들어 예측불허의 불안함과 불편함을 초래한다. 우리 근현대사는 식민과 해방, 좌우진영의 대립, 독재와 민주화운동, 보수와 진보의 갈등 등 격동의 시대였다. 다른 나라에서는 수백년동안 벌어질 일들을 너무나 짧은 시간에 겪었다. 그 치열한 진통의 과정을 겪으며 정치 과잉의 시대에 이르렀다. 정치 무관심 현상보다는 낫다고 하지만 최근의 너무나 과격하고 극단으로 치닫는 정치과잉 현상은 정치에 중립적인 입장을 가진 사람들에게 스트레스를 유발할 수 있다. 내 삶에 도움이 되는 정치를 바라지는 못하더라도, 내 삶을 더 힘들게 할 정치는 피해야 한다. 

[전국매일신문] 최재혁 지방부국장
jhchoi@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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