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읽는 詩 14] “일을 급히 서두르면 망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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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읽는 詩 14] “일을 급히 서두르면 망친다”
  • 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 승인 2020.06.24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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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규(1962년생) : 경북 문경 출신으로 1989년 [실천문학]을 통해 등단.

<함께 읽기> 사람들은 참 웃긴다. 동물들 세계의 글을 쓰면서 마음대로 쓰고 있으니. 이솝도 그랬고, 다른 우화 작가도 그랬다.

토끼와 거북이만 해도 그렇다. 둘은 친하지도 만날 수도 없는 사이로 경쟁할 의사가 전혀 없었는데도 말이다.

산에 사는 토끼와 바다에 사는 거북이가 뭣 때문에 경쟁하겠는가? 경쟁은 서로의 것을 탐낼 때 벌어지는 현상인데 토끼와 거북이의 먹이는 다르니까.

“비닐하우스 출신의 딸기를 먹으며 / 생각한다 왜 백미터를 늦게 달리기는 없을까”

참 발상이 신선하다. 비닐하우스에서 나오는 과일은 모두 속성재배 식물이다. 다들 원래 나오는 철보다 빨리 나온다는 말이다.

제철에 나오는 딸기, 수박, 토마토, 오이... 조금 늦게 먹어도 괜찮은데, 말로는 제철 음식이 가장 몸에 좋다고들 하고선 기다릴 줄을 모른다.

“만약 느티나무가 출전한다면 / 출발선에 슬슬 뿌리를 내리고 서 있다가 / 한 오백년 뒤 저의 푸른 그림자로 / 아예 골인 지점을 지워버릴 것이다”

어느 시골 마을이든 입구에 서 있는 당산나무로 가장 흔한 게 바로 느티나무다. 그리고 대부분 나이는 이삼백 년이 훌쩍 넘는다. 느긋하게 마을의 흥망성쇠를 지켜보며 자란 느티나무는 애당초 경쟁이니, 속성이니 하는 말은 아무 관계가 없다. 이 시도 느림의 미학을 주제로 한 시다.

“마침내 비닐하우스 속에 / 온 지구를 구겨 넣고 계시는” 속도를 신앙처럼 받드는 사회. 우리는 일정한 골인 지점을 정해놓고 거기를 향해 무한경쟁을 한다.

오죽하면 인간끼리의 경쟁이 지겨워(?) 경쟁할 이유가 하등 없는 거북이와 토끼까지 가상의 공간에서 등위를 가리게끔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스스로 속성재배 되는지도 모르시는 / 인간은 그리하여 살아도 백년을 넘지 못한다”

아무리 빨리 목표점에 도달해 큰 성취를 얻어도 살 수 있는 기간은 그 느린 느티나무에 훨씬 못 미치는 100년.

‘오래 살아남으려면 가능한 늦게 움직여야 한다’는 사실을. 좀 더 즐겁게, 좀 더 삶의 여유와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속도가 분명 있을 텐데...

문득 ‘Slow and steady wins race’라는 서양 속담이 떠오른다. ‘느리고 꾸준하면 경주에서 이긴다’인데 속뜻은 ‘일을 급히 서두르면 망친다’ 뜻이다.

그럼 에도 오직 속도밖에 모르는 인간들이 오늘도 경주하듯 지하철을, 버스를, 아니 자가용을 타고 도로를 질주하고 있다.

 

[전국매일신문] 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sgw3131@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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