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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장의 향기로운 詩] 귀엣말은 쉬 곪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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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장의 향기로운 詩] 귀엣말은 쉬 곪는다
  • 전국매일신문
  • 승인 2021.11.1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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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이오장(현대시인협회 부이사장)
[이미지투데이 제공]
[이미지투데이 제공]

귀엣말은 쉬 곪는다
       - 증재록作

누구인가 내 말을 하는 지 귓속이 근지럽다
사이를 넓혀 거리를 띄운 지 오랜 나날
누군가의 입술에 젖는다는 건 반갑기도 하지만
귓속은 젖으면 젖을수록 먹먹하다
 
귀를 후빈다
면봉을 이리저리 돌리는 만큼
음울한 빗소리가
귓속으로 속속들이 들어차면서 소란하다
 
귀지를 파낸다
귀이개가 구석구석 쑤셔대는 만큼
후끈 달아 흐르는 물줄기
윙윙 울어대는 말의 고름이 질척하다

 

[이미지투데이 제공]
[이미지투데이 제공]

[시인 이오장 시평]

사람이 사는데 가장 중요한 기관이 입이다. 
보지 않아도 듣지 않아도 움직이지 않아도 생존할 수 있지만 먹지 않으면 죽는다. 
누워서라도 먹어야 다른 기관에 영양을 공급해서 생을 유지한다. 

그래서 맨 위에 눈을, 그 아래 코를, 양옆에 귀를 달고 가장 아래에 입을 달아 중심을 잡았다. 

이건 기본적이다. 
여기에 언어가 하나가 더 있다. 말은 의사소통 기관이다. 
내 생각을 상대방에게 전하여 동의를 얻던가 아니면 반대 의사를 밝힌다. 

여기서 말은 두 가지로 나뉜다. 
자연스러운 말과 욕이다. 

욕도 분명히 의사소통의 하나로 자기 생각을 전하는 수단이다. 하지만 듣는 사람은 심히 괴롭다. 
그래서 앞에다 대놓고 욕하는 것은 피하고 듣지 못하는 곳에서 욕을 한다. 

한데 듣지 못할 것 같은데도 듣는다. 
그건 상대방의 생각을 읽기 때문이다. 

증재록 시인은 이러한 언어의 실태를 정확히 파악했다. 
사람은 알지 못하면 관심이 없으나 아는 사람의 행동에는 민감하다. 

실수했거나 누구의 흠을 실토했다면 뒤가 켕겨서 은근한 불안이 생긴다. 
그래서 멀리 있어도 혹 내 말을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귀가 간지러워진다. 

‘누군가의 입술에 젖는다는 건 반갑기도 하지만’ ‘귓속은 젖을수록 먹먹하다’ 면봉을 이리저리 돌리며 귀를 후벼도 후빌수록 더 간지럽다.
‘귀이개가 구석구석 쑤셔대는 만큼 말의 고름이 질척하다’라는 표현은 절정이다. 

상대방은 욕하지 않았는데도 자신의 행동에 대한 불안감에 귀가 간지러운 것이라고 하지만, 시인이 지대한 관심으로 시를 쓴 의도는 말조심이다. 

말은 내 의사를 전달하기도 하지만 상대방 의사를 무시하기도 한다. 어떤 말을 해도 조심하고 조심해야 한다는 만고불변의 충고다.

[전국매일신문 詩] 시인 이오장(현대시인협회 부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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