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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의 하제별곡] 어떤 ‘공수’ 얘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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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의 하제별곡] 어떤 ‘공수’ 얘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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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2.05.02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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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 언어철학자·시민사회신문주간

‘우 순경 사건 발생 직후 다수의 사망자를 수습하기 위해 관을 공수하는 모습. 중앙포토’라는 사진설명이 붙어있다. 저 보도(4월 30일, 중앙일보)에 따르면, 사망자의 주검(시신)을 담기 위한 관(棺)들이 공수됐다는 것이다.

필자는 저 현장의 기자였다. 그 억울한 주검들이 마산의 어느 병원에 모셔지는 상황까지도 생생히 기억한다. 신문은 저 관들이 비행기로 보내졌다고 했다. 헬리콥터를 말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공수(空輸 항공수송)가 아니고 육로(陸路)수송이었다. 오보(誤報)다.

40년 전의 일을 최근에 취재한 저 신문의 기자는 저 관들이 공수됐을 것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아마 그래서 ‘공수’란 단어를 썼을까. 혹시나 하는 그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나는 안다. 서울서 내려간 우리 취재차는 마산의 병원으로 트럭과 앰뷸런스를 따라 갔다. 

1982년 4월 26일 밤 우범곤 순경이 벌인 경남 의령군 궁류면의 초대형 참사, 제목만 봐도 또 가슴 아프다. 

쓴 기사 본사로 (소리 질러) 부르기 위해 우체국 시외전화기 먼저 차지하려고 타사 기자들과 겨루다 주먹질도 했다. 마감시간 맞춰 필름 보내려고 버스터미널로 목숨 걸고 차 몰던 나이 많은 차량과 동료의 얼굴은 비장했다. 참사 현장은 취재 전쟁터이기도 했다. 

애먼 사람 62명이 죽고 33명이 다친 거대한 슬픔을 위무(慰撫)하는 위령탑을 이제야 세운다는 기사를 보고 있는 것이다. 황당하나, 그나마 다행이다. 헌데 저 중요한 기사에 오보라니.

조중동이라고 내로라하는 중앙일간지 중 하나 아닌가, 설마 그 신문의 기자가 단어의 뜻을 몰라서 ‘...사망자를 수습하기 위해 관을 공수하는 모습’이란 기사를 썼을까? 

혹 空輸 아닌 公輸의 뜻으로 ‘공수’를 썼을까? 억지지만, 공권력(公權力)에 의한 죽음의 주검을 옮기는(輸) 것이라고? 아니면 무당이 관 속의 혼령을 위로하는 신의 소리를 들려준다는 뜻이었을까? 망령일세. ‘공수’의 경우만이 아님은 철 좀 든 지식인들 모두가 안다.

한글이 소리글자여서 이런 상황은 피할 수 없는 것 아니냐 하는 나름의 변명도 있다. 불가피할까? 상당수 지식인들마저 넘어서지 못하는 이런 편견에는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이 있다.

한글은 우리가 쓰는 문자다. 세종대왕의 역작 훈민정음의 지금 이름이다. 우리의 한국어는 한글로 표기한다. 한글은 소리글자이지만 한국어는 당연히 한글의 소리(요소)와 표기된 글자들의 각각의 뜻으로 의사(意思)를 나누는 역할을 수행한다. 어느 언어도 다 그렇다.

한글로 적힌 오픈이나 사이다 같은 영어 계통, 훈민정음 공수 같은 한자어 계통, 무지개 생각 한글 같은 토종어 등의 여러 요소들이 합쳐져서 한국어를 이루는 것이다. 그뿐인가 일본어나 몽골어, 라틴어, 프랑스어 산스크리트 등도 함께 빽빽한 한국어의 숲을 이루고 있다.

말과 글을 도구로 세상의 생각을 바루는 일이 언론이다. 그 일은 ‘글 쓰는 자’ 기자가 한다. 이 중요한 일을 위해서는 우선 말과 글이 갖춰져야 한다. 언어는 생각의 그릇이다. 

언론인 아우들의 이런 상황을 볼 때마다 ‘생각’이 죽어 넘어지는 것 아닌가 저어한다. 언어의 숨이 부대끼듯, 생각이 비틀리면 우리 세상을 더 아름답게 할 동력은 무엇일꼬. 

생각 없이 만들어지는 언론의 산물(産物)은 지금 우리 세상을 어떻게 바꾸고 있을까. 

[전국매일신문 칼럼] 강상헌 언어철학자·시민사회신문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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