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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의 하제별곡] 한자(漢字)는 뉘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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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의 하제별곡] 한자(漢字)는 뉘 것인가?
  • 전국매일신문
  • 승인 2023.01.31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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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 언어철학자·시민사회신문주간

해를 품은 달-속뜻 제대로 푸는 이가 주인이다.

정월(正月) 초하루는 추석과 함께 한 해의 큰 명절이다. 우리의 이 날은 설이다. 중국은 춘절(春節) 또는 춘제(春祭)다. 대부분 중국인들은 ‘설’이 그 날의 한국 이름인지 모른다. 그런데 같은 날이다. 음력(陰曆)이다. (양력으로) 1월 22일이었다.

영국박물관이 한국의 설(날)을 기리는 행사를 하면서 제목에 ‘Seollal’이란 말을 넣고 ‘한국 음력 새해(Korean Lunar New Year)’라고 설명했다고 한다. 한국 전통무용과 음악을 펴 보이는 자리였다.

중국 네티즌들이 댓글로 불평을 무지 많이 했나보다. 박물관은 곧 그 설명을 (‘한국의 음력 새해’ 대신) ‘중국의 새해(Chinese New Year)’로 바꿨다. 

좋은 박물관이다. 허나 동양에 대한 이런 무지(無知), 많이 부끄럽지 않을까? 중국 네티즌에 대해서는, ‘같잖다’는 느낌 말고는, 따로 거론하지 않는다. 원래 네티즌의 성향이기도 할 터.

보통 달력(양력)의 1월 1일은 ‘한 해의 시작’이라는 뜻으로 동아시아 사람들도 세밑과 함께 연말연시의 의미를 부여한다. 그러나 전통 명절은 아니다. 

아이들도 까치도 설레는, 조상과 부모를 만나기 위해 모두들 만난(萬難) 무릅쓰고 ‘민족 대이동’을 연출하는 그런 날은 아닌 것이다. 설이라야, 춘절이라야 그 좋은 날이다. 

음력 정월 초하루가 그날이다. 달이 가득 차는 (정월)대보름까지 그 설렘은 보름 동안 계속된다. 설이나 춘절이나 달 즉 음력이 바탕이란 것을 그 박물관은 (제대로) 몰랐구나.

동아시아 공동의 문자인 한자(漢字)에서 밝음의 뜻인 명(明)자를 보면 날 일(日)자와 달 月자가 합체돼 있다. 한자는 그림이다. 그림을 푸는 것이 그 뜻을 짐작하는 방법이다. 밝음 즉 明은 해(日)와 달(月)이 만난 것으로 ‘밝다’는 뜻을 이뤘다. 대개 이렇게 읽는(푼)다.

또 하나의 풀이는 자못 시적(詩的)이다. 日이나 月이나 明이나 모두 3천5백년쯤 전의 갑골문(甲骨文)에 적혀 전하는 그림 같은 글자다. 그 밝다는 뜻의 明자 갑골문 그림 앞부분이 日 즉 태양(의 그림)이 아니고, 창문의 모양인 것이 오늘 우리가 주목할 대목이다.

창문으로 흘러드는 교교한 달빛의 ‘깊고 큰 에너지’를 상상하자. 음기(陰氣)가 양기(陽氣)와 함께 천지를 휘감는 도교(道敎)적 조화와 동력(動力)을 말하는 것이다. 

큰 시인 김지하(1942~2022)가 남겨준 ‘흰 그늘’의 개념도 함께 명상할 것. 달빛 스며드는 창에서 쏟아진 ‘밝음’의 깨달음을 황하(黃河) 강변 문명의 새벽을 살던 이들은 ‘깊은 밝음’으로 가슴에 새겼나보다. 흰 그늘과 깊은 밝음, 둘 사이에는 어떤 교집합(交集合)이 있을까.

동양을 모르는 서양의 우월감 또한 같잖다. 서구 학문과 유행의 문물만으로 무장한 ‘전공바보’들이 되뇌는 ‘동굴’ 또는 ‘우물’ 속 좁은 시각(視角)에 너무 익숙해진 걸까.

이런 이들은, 동양 사람이라도, 코로나 이후 세상을 이끌 재목은 아닐 터다. 영국박물관의 무지와 함께 국제사회의 지성이 걱정해야 할 풍토(風土)라 본다.

달이 해를 품었다고? 판타지 사극(史劇) 제목에 나오는 ‘이미지’다. 재미있다. 여러 생각 부르는, 실은 큰 뜻이다. 경건한 본디를 잃으면, 사람은 이미 진 것이다.  

갑골문 만든 옛 사람들이 ‘중국 국적’이었나? 시진핑 주석 같은 지금 중국의 주류(主流)는 동이(東夷)겨레 살던 그 곳에 훨씬 나중에 옮아온 것으로, 역사는 말한다. 공부(study)를 ‘역사공정(工程)’과 헷갈리면 세상 바로 못 본다. 중국 젊은이들의 옹졸한 공부 바탕을 걱정한다.

[전국매일신문 칼럼] 강상헌 언어철학자·시민사회신문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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