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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의 하제별곡] ‘염두한다’는 한길사의 한국어(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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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의 하제별곡] ‘염두한다’는 한길사의 한국어(上)
  • 전국매일신문
  • 승인 2023.02.14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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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 언어철학자·시민사회신문주간

엉터리 ‘코딩교본’도, 따라 배운 독자들 공부도 걱정일세.

창작된 책도, 번역된 책도 그렇다. 필요한 책이면 다른 이들의 본(本)이다. 따라 하는 기준인 것이다. 지식 소통과 전승의 중요한 과정이다. 

번역서적의 문제 중 하나다. 꼼꼼한 독자들이면 고개 끄덕일 대목이겠다. 왜 (원문은) 쉬운 얘기 같은데 번역문은 이렇게 (표현이) 어렵지? ‘어렵다’는 말이 뜻하는 바가 무엇일까?

학문도, 그것을 알아듣고 표현하는 언어도 부족한 이가 짓거나 번역한 글(책)은 어렵다. 쓴 이도 무슨 소린지 잘 모르고 단어의 뜻만 쫒는 축자적(逐字的) 또는 사전적 의미만 나열한 것일 터이니 당연하다. 베낀 경우는 더하겠다.

좋아하는 유명한 출판사, 한길사의 어떤 책을 참고 읽다 마침내 덮고는 버렸다. 필요해서 구입한 책이었다. 전에 영어로 된 책의 필요한 부분을 읽었다. 미국 인류학자가 쓴 책의 번역본 ‘음식문화의 수수께끼’란 책이었다. 

우리 음식의 문화사적 의미를 궁리하던 터였다. 여러 문화의 음식 전통을 주로 유물론적, 물질주의적 시각으로 본 책이었다. 다시 보니, (다른 문명에 대한) 우월감에 젖어 사는 서양인들에게나 참고가 될까, 필자의 관심사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소득(?)은 그 부작용에 있었다. ‘왜 이 책이 이렇게 어렵지?’하는 의문에 꽂혔다.

신문쟁이는 더 잘 아는 ‘문제’다. 취재가 덜 된 기사, 핵심이 파악 안 된 글은 당연히 어렵다. 틀린 내용이 들어있을 개연성(蓋然性)이나 가능성도 크다. 

뉘앙스(어감)까지도 살리고 또 제대로 옮겨야,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나 ‘채식주의자’처럼 국내 뿐 아니라 외국 독자와 문학상 심사위원의 마음도 움직일 수 있을 것이다.  

‘번역은 반역(反逆)’이란 말은 우리만의 얘기는 아니다. 그래서 한강의 맨부커 상(賞) 수상 때는 외국의 번역자가 작가와 함께 주목을 받기도 했다. 

필자가 읽다 만 그 책, 제시된 주제나 대상도 제목처럼 흥미로웠다. 평판도 그랬고, 전에 읽었던 기억도 그리 다르지 않았다. 다만, 읽는 이의 문해력 탓이었을까? 유감이지만, 서너 쪽 읽는데도 T. S. 엘리엇의 ‘황무지’를 톺아 읽던 왕년의 막막함이 떠올랐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나긋나긋함을 기대한 건 아니었지만, 좀 심했다. 아마 언어가 덜 익은, 번역의 탓이었겠다. 끝내 ‘헤어질 결심’은 이 대목에서였다.

<비서유럽인들이 벌레음식을 즐기는 것을 살펴볼 때는 산업화 이전 농민들의 식사에서 동물성 단백질과 지방이 극히 부족했다는 사실을 염두해야 한다...> (8. 벌레 편)

코딩(coding) 배우느라 법석이다. 보통 말과 글을 컴퓨터가 이해하고 처리하는 ‘언어’로 바꾸는 것이다. 내 지식과 생각을 모두가 알아듣는 한국어로 바꾸는 글쓰기도 이와 흡사하다. 

‘염두한다’는 잘못된 ‘기호’(어구 語句)로 인코더(encoder 번역자)가 코딩한 그 ‘언어’를 사람들이 디코딩(독서)하면, ‘아! 염두하다는 말은 이렇게 쓰는 것이구나’하고 기억할 것이다.

‘염두’는 생각(念)의 (첫)머리(頭)다. 대개 ‘염두에 두다.’처럼 쓴다. 생각 서랍의 첫 번째 칸에 두어 잊지 않겠다거나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뜻이다. ‘생각하다’가 아니다. [下편에 이어짐]

[전국매일신문 칼럼] 강상헌 언어철학자·시민사회신문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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