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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의 하제별곡] 언어상실과 뒤집어진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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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의 하제별곡] 언어상실과 뒤집어진 철학 
  • 전국매일신문
  • 승인 2023.02.2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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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 언어철학자·시민사회신문주간   

간담회 자처 금도 타령, 염두하다 숲으로 돌아갔다.

제목의 문장, 알쏭달쏭하다. ‘막보기’식 정치를 조진 신랄(辛辣)한 글 같기도 하고, 뭐지? 요즘 기자나 번역가 등의 소갈머리마저 빠진 듯한 말들의 모자이크다. 

말이 안 되는 글을 비문(非文)이라 한다. 비문이 아무런 시비(是非)도 없이 공공(公共)의 공간에서 횡행(橫行)한다면 이는 바른 세상이 아니다.

유명한 방송사 중 하나 ‘문화방송’의 간판 뉴스인 ‘MBC 뉴스데스크’에 2월 19일 ‘이런 언어’가 떴다. 조희원 기자 정도면 민완(敏腕)한 언론인이다. 

<일정에 없던 기자간담회를 자처한 주호영 국민의 힘 원내대표...>

‘주호영=기자간담회’가 됐다. 종종 듣보잡 또는 유튜브 등의 ‘리포터’들이 ‘어떤 셀럽(유명인)이 기자회견을 자처했다’고 해 실소(失笑) 고소(苦笑)를 부르기는 한다. 믿을만한 매체로 꼽는 MBC 뉴스에서 언어의 이런 상실(喪失)를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자처(自處·스스로 어떤 사람인 체 함)와 자청(自請·스스로 나서서 뭔가를 하겠다고 함)의 구분(區分·갈래지음)이 안 되는 사람은 언어를 활용하는 직업인으로 부적절하다. 기자(記者)는 읽고 말하고 듣고 생각하고 쓰는 사람이다. 그 바탕은 언어다. 

자신과 방송사, 시청자를 구분(俱焚·함께 불태움)해버리는 ‘비틀린 문장(文章)’의 주인공은 한국어를 다시 배워야 한다. 언론의 ‘목탁’ 자격은 엄정하다. 대중이 따라 배우고, 흉내 내는 대상이다. 공인(公人)인 기자의 책임을 가늠해 보는 것이다.

서양에서 만들어진 필로소피(philosophy·철학)가 ‘서로 다른 여러 인간(인종)의 마음의 슬기를 보편적인 체계에 (획일적으로) 담을 수 있느냐?’하는 의문, 특히 동양 지식인에게 중요하다. 서구의 우월감, 타(他) ‘인간’에 대한 비하(卑下)도 담겼을 그 철학, 사람을 바로 볼까? 

그 의문을 펼친 ‘언어철학’도 서양에서 시작됐다. 다양한 언어에 다양한 본질(철학)이 담겼다는 비교적 새로운 그 철학은 우리나라에도 물론 들어왔다. 서양 언어의 번역으로 철학자 등 우리 지성(계)는 이를 다룬다. 

그런데 한국어는 말의 어원(語源)을 제대로 간직하고 있지 않다. 특히 대부분 개념어의 속뜻 파악을 포기하다시피 한 언어로 언어철학이 가능할까? ‘속(뜻)없는 한국어’라...  

글로벌 디지털 문명의 진전으로 급기야 챗GPT의 출현까지 마주하게 된 인간들 참 당황스럽다. 이를 궁리하는 열쇠말로 이 ‘언어철학’은 더 중요한 뜻이 될 터다.

자처(自處)와 자청(自請)이 같다는 이 언론 종사 지식인의 언어상실(喪失)은 철학의 전도(顚倒)를 함축하고 있다. 한국어로 생각하는, 슬기의 고갱이가 뒤집어지는 것이다.

입만 열면 금도 타령 하는 정치인들과 이를 베껴 써서 시민들에게 전하는 언론인들 탓에 금도(襟度·남을 넉넉히 포용하는 넉넉한 마음)라는 아름다운 말은 급기야 ‘더러운 말’이 돼버렸다. 말의 속(뜻)을 ‘생각하지’ 않고 ‘염두하는’ 학자 언론인들도 흔히 나온다. 

이런 언어로 생각을 하고 학문을 한다. 수학 철학에 천체물리학도 하는 것이다. 그 계산 또는 가늠은 옳을까? 비틀어진 만큼 어그러진 언어철학과 우주과학은 어떤 모양일까. 

혹 우리 노력 모두가 ‘숲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닐까? 물거품 수포(水泡)는 비유적으로 ‘헛된 결과’라는 속뜻으로 읽힌다. ‘수포로 돌아갔다.’는 말을 어떤 언중(言衆)이 숲으로(go to the forest)로 들었던 것이 퍼졌다. 재미로 치부(置簿)해도 될까?    

[전국매일신문 칼럼] 강상헌 언어철학자·시민사회신문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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