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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의 하제별곡] 반려견, 반려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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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의 하제별곡] 반려견, 반려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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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3.03.14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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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 언어철학자·시민사회신문주간

개가 사람을 키운다고? 세상에, 넋이 빠졌나?

겸손의 품격과 함께 적절한 지식과 기술로 개 길들이는 TV 프로그램을 진행하던 강형욱 씨를 떠올렸다. 운동 겸 나선 산책길이었다.  

데리고 걸을 때 사람(주인) 보다 개가 앞서 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 훈련사가 ‘원칙’을 설명했던 대목을 생각한 것이다. 개가 앞서면 지(개)가 사람을 데리고(끌고) 간다고 착각한다, 그럼 주인의 영(令)이 안 선다, 당연히 개가 말을 듣지 않게 된다는 줄거리로 기억한다. 

이 원칙, 시중에서는 망가진 지 오래인 듯, 산책길에서 개 때문에 여러 번 긴장하고 놀라기도 했다. ‘개 주인 때문’이 정확한 표현인가. 

서울 중랑천 산책로에 중랑구청이 마련한 ‘반려인 쉼터’를 보았다. 개와 개 키우는 이들의 ‘해방구’같은 곳인가. 그런데 ‘반려인’ 단어가 어색했다. 왜 그렇지? 상류로 더 걸으니 구청 경계를 넘었는지 여러 표지에 ‘반려견’이라 적혀 있었다.

반려견 반려묘(猫 고양이) 반려동물은 비교적 익숙하다. 반려견은 ‘사람이 키우는 개’다. 고양이 등도 그런 뜻이겠다. 반려인은, 그 어법(語法)대로면 ‘개가 키우는 사람’이다. 

강 훈련사의 ‘원칙’이 망가진 것을 (은연중에) 반영하는 망가진 언어현상일까? 중랑구청은 어떤 뜻으로 (국어사전에도 없는) 저런 단어를 ‘개발’했을까?

한자말이니 얼핏 그럴싸하게 들린다. 또 공공기관의 ‘말씀’인 공공언어(公共言語)가 아니고 고샅길의 ‘철수와 영희’들이 쓰는 사적(私的) 어휘라면 좀 어색한들 누가 탓하랴? 

반려의 한자 伴侶는 두 단어 모두 사람 人(인 亻)이 들어 ‘짝’이란 뜻이다. 반(半)은 절반(折半 half), 여(呂 려)는 율려(律呂)에서처럼 (우리) 음악의 가락 이름이다. 

영어의 다른 반쪽(other half)이나 더 나은 반쪽(better half)은 배우자(配偶者) 즉 부부의 상대편(짝)이다. ‘인생의 반려가 되다.’는 표현은 ‘부부가 되다’ ‘결혼하다’는 뜻의 가장 일반적인 말이었다. 향기로운 말일세. 

반려는 이런 톤으로 음미하자면 부부나 부부 정도의 가까운 사이다. 함께 (부처님의) 도를 닦는 도반(道伴)도 이에 견줄 수 있겠다.   

이런 설명, 문자생활이 덜 익숙한 이들에겐 생뚱맞을까? 개나 고양이 등이 또한 의지가지없는 외로운 이들의 짝이 되다보니 어쩌다 반려동물은 우리 (사회)생활 속의 큰 이미지가 됐다. 

인신(引伸)이라는 문자학의 개념이 있다. 원래의 말을 끌고(引) 당겨서(伸) 새 뜻을 만드는 것이다. 세월 속에서 이런 모양으로 새 말이 만들어지는 현상을 뜻하기도 한다. 

이런 현상에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세상 바뀌었다고, 개가 사람을 키운다고 해석되기 십상인 족보 없는 생뚱 ‘언어’를 공공기관이 퍼뜨리면 되겠는가. 

개도 좋지만 사람을 보자. 사람의 존엄을 개의 존엄이 넘보는 것이 사회적 합의를 얻도록 할 수는 없다. 사람이 ‘만물의 영장(靈長)’인 의미겠다.

개보다 못한 ‘사람’도 있긴 하다. 어린 소녀들을 공식적으로 납치해 강간하고 성노예로 삼은 전쟁광 왜(倭)제국주의자들과 이를 빤한 정치적 거짓말로 ‘그런 적 없다’ 손사레 치는 저 정치가들, 거기 고개 끄덕이는 친일파들을 보며 (그들의) ‘사람의 존엄’을 상상하고 싶지는 않다.

1909년 풋풋한 대한의 29세 청년 장수(將帥) 안중근이 총살한 이등박문은, 그 후세들 심보까지 보아하니 역시 ‘사람의 존엄’이 아니었구나. 하수상한 요즘, 개들은 생각 없을까?

개는 사람이 키운다. 말로나마, 개가 사람을 키우게 하지 않아야겠다. 그리고 한국어 공부, 세금으로 일하는 구청 직원도 해야 한다. 바른 언어가 제정신의 바탕이니. 

[전국매일신문 칼럼] 강상헌 언어철학자·시민사회신문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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