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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장의 향기로운 詩] 뜸들일 때의 밥 냄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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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장의 향기로운 詩] 뜸들일 때의 밥 냄새처럼
  • 전국매일신문
  • 승인 2023.08.10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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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이오장
[이미지투데이 제공]
[이미지투데이 제공]

뜸들일 때의 밥 냄새처럼
                         - 김선진作

잠을 잃은 밤
강물이 되어 흐른다
아주 긴 강이 밤을 가로질러 누워 있다
바람도 없는 강기슭에 서서
자꾸만 머릿속이 쓸려 감을 알고 있다
나를 건드려 주는 바람 한 점 없어도
밤은 충분히 내게 혼자임을 알려 준다
꼬리를 물고 흘러가는 이런 밤이면
새벽에 이르는 길도 아주 먼 곳에 있다
아무도 건너지 않는 강나루 이편에서
저편 강나루의 어둠을 쏘아 본다
밥물이 끓는 후 뜸 들일 때의 밥 냄새처럼
편안한 아침이 기다려진다
밤의 강물이 세찬 강바람에 함몰되어
강이었다는 흔적조차 지웠으면 좋겠다
 
오늘 밤도
강물이 되려고 꿈틀대며 몸부림친다

[이미지투데이 제공]
[이미지투데이 제공]

[시인 이오장 시평]
80년을 산다면 그 절반은 밤이다. 
현대에 이르러 밤은 줄어들어 10년을 더 활동한다 해도 밤은 언제나 절반이다. 
삶은 낮과 밤의 사이에서 어느 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중간을 택하는 일이다. 
한쪽만을 택한다면 대칭이 맞지 않아 허물어지고 만다. 

그런 삶의 기간 중 막바지에 이르면 그때부터는 되돌아보는 시간이다. 
앞날의 끝이 보이고 그 너머의 시간을 느끼는 나이가 되면 뒤를 돌아봐야 앞을 잊는다. 

앞은 두렵고 뒤는 포근하여 서있거나 앉아 있거나 같은 일을 반복적으로 떠올린다. 
낮을 보내고 밤을 맞으면 세월의 흐름은 정신뿐만이 아니라 몸으로 느끼게 되어 잠은 멀어진다. 

김선진 시인은 이제 뒤를 돌아볼 때를 맞이했다. 
어쩔 수 없는 흐름에 동반하여 승차권 없이 탑승하였다. 

그리고 밤을 맞는다. 
한데 잠은 이룰 수 없어 뒤척거리고 머릿속에 지난 일이 떠오른다. 

밤에만 흐르는 강이다. 
어둠을 흘러가 밝은 곳에 안착하지 못하고 끝이 어딘지 모르게 흐르기만 하는 밤의 강물, 살짝 건드려 주기만 해도 번뜩 깨어나 흐름을 멈출 수 있는데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강은 자꾸만 혼자라는 것만 일깨워준다. 

이 같은 고통은 겪어보지 않아서 낯설기만 한데 빨리 흐르지도 않는다. 

지나간 세월은 항상 그리움이고 미래의 시간은 두려움이지만 그것이 끊임없이 연결되어 떠오른다면 그리움이 더 진하게 남게 된다. 

그리고 가장 즐겁고 행복했던 시간이 앞을 가린다. 

그게 밥을 지으며 뜸 들일 때의 냄새다. 
밥이 다 될 무렵에는 배고픔이 찾아올 때고 먹을 것을 기대하는 마음은 행복할 수밖에 없다. 

그 행복한 아침이 빨리 왔으면 얼마나 좋을까. 
지루한 밤을 보내고 강의 흐름을 멈추는 아침은 새로운 희망이다. 

그러나 다시 두렵다. 낮이 가면 다시 밤이 오지 않은가. 
삶의 실타래를 풀어낼만하니 어느새 황혼을 맞이한 시인, 아침을 기다리는 모습이 아름답다. 

[전국매일신문 詩] 시인 이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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