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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의 하제별곡] 궂긴 소식과 부고알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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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의 하제별곡] 궂긴 소식과 부고알림
  • 전국매일신문
  • 승인 2023.09.12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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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 언어철학자·시민사회신문주간

아무리 점을 쳐 봤자, 인간은 죽기 마련이다.

요즘 ‘부고알림’이나 ‘부음알림’이란 메시지가 휴대전화에 늘 뜬다. 부고(訃告)나 부음(訃音)이 디지털 신호로 날아오는 것이다. ‘부고’나 ‘부음’보다 ‘**알림’을 더 자주 보는 것 같다.

사람의 죽음을 알리는 기별, 영어로 오비추어리(obituary)다. 생로병사의 종착(終着)이니 동서양 할 것 없이 (언론매체에도) 중요하다. 

서양의 어떤 신문은 오비추어리로 매우 유명하다. 공과(功過) 즉 죽은 이의 공로와 과실(過失)을 사실대로 적고 매섭게 평가하는 것이다. 결혼식 주례사처럼, 어떤 이의 죽음에 임해 좋은 말만 써야 하는 사회는 미래를 엄정하게 마련하기 어렵겠다. 기억하자, (내) 죽음을.  

‘궂긴 소식’이라는, 더 적절해 보이지만 덜 익숙한 말을 한겨레신문은 ‘부고’ ‘부음’이란 제목 대신 쓴다. 좋아 보인다. 

우리말 ‘궂기다’는 말은 ‘죽다’의 다른 (완곡한) 표현이다. ‘윗사람이 죽은 것’을 가리킨다고 어떤 사전은 풀었지만, 영혼의 세계로 옮아 간 주체(主體)가 위아래가 따로 있을까 보냐. 

‘죽음’의 무거움 때문에 이 말은 여러 이미지의 말로 변주(變奏)된다. 부고 부음 말고도 부보(訃報) 휘보(諱報) 부문(訃聞) 통부(通訃) 등 ‘좀 있어 보이는’ 말들이 예전에 쓰였다.

諱는 ‘두렵게 꺼내는 말’이란 의미, 임금의 이름처럼 함부로 불러서는 안 되는 말이었다. 通訃는 죽음을 통지한다는 말이다.

訃는 말씀 언(言)과 점칠 복(卜)의 합체다. 문자학의 이론상 言은 뜻 또는 몸체(形), 복(卜)은 발음(소리)의 역할로 만나 한 단어를 이룬 형성(形聲)문자다. 

卜의 중국어 발음은 대충 [부] 또는 [보]다. 거북 배딱지를 가열할 때 실금이 생기며 나는 ‘부욱’하는 소리로 여긴다. 卜자는 그 그림의 도안이다. 세월(시간)의 디자인, 갑골문의 속살이다. 발음요소지만 뜻을 이루는 데도 기여한다. 

갑골문 남은 유물 대부분은 점을 치고, 배딱지에 생긴 가열의 흔적(痕迹)을 점괘(占卦)로 인식하고 적은(그린) 것이다. 

그렇게 하여 부(訃)는 ‘죽음을 알리는 말’이 됐다. 訃告 訃音 訃報 등의 告 音 報는, 역전앞이나 처갓집의 ‘앞’과 ‘집’같은, 없어도 되는 말이 습관적으로 붙은 것이다. 말하자면 췌사(贅辭), 군더더기 말인 것이다.

요즘에는 한자문화에 덜 익숙한 세대가 사회 요소요소에서 주역으로 활동하니 이런 군더더기 말은 더 자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부고알림 부음알림도 그런 상황의 반영이겠다. 부(訃)만으로도 충분한 말이 부고(訃告)가 되더니 부고알림으로 변한 것이다. 

변화이고 바뀜이다, 즉 역(易)이다. 당연한 흐름이다. 주역(周易)도, 그걸 조선 후기 일부(一夫)라는 호(號)를 쓴 김항(金恒·1826~1898)이 우리의 마음으로 새롭게 펼친 정역(正易)도 그런 변화의 뜻을 가리킨다. 변화를 읽는 마음이 지혜다. 변화를 마다함은 하늘에 반하는 것이다. 

부(訃)에는 이르다(至 지)는 뜻도 있다. 인간은 죽는다. 죽음에 이르는 (아름다운) 길이 사람의 존재인가. 생로병사 생애 모든 길의 궁극임에랴. 점괘를 말하는 것이 결국 訃音일까? 

부음도 부음알림도 소통(疏通)에는 별 지장이 없겠다. 그러나, ‘부음알림’의 글자마다에 안긴 속뜻을 아는 사람은 ‘문장을 생산해도 된다’는 면장(免狀) 또는 열쇠를 쥔 것으로 본다.

알고 쓰는 것과 모르고 쓰는 것의 차이다. 가령, 언론인은 어느 수준의 언어를 가져야 할까?

[전국매일신문 칼럼] 강상헌 언어철학자·시민사회신문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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