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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열의 窓] 춥지만 마음은 따뜻했던 그 시절 겨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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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열의 窓] 춥지만 마음은 따뜻했던 그 시절 겨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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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3.12.29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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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열 국제사이버대학교 특임교수

영하의 온도와 차가운 바람이 온몸을 휘감는 겨울이다. 나무들은 옷을 벗어 버리고 앙상한 가지만 남아 벌벌 떨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면 눈이 소복이 내리어 온 세상을 하얗게 덮는다. 눈이 쌓이면 고무래를 들고 마당과 동네 길을 치우면서 눈사람도 만들고, 눈싸움도 한다. 동네 강아지도 눈이 좋아 코에 눈을 묻히고 이리저리 뛰어다닌다. 지붕 위에 눈이 녹아 처마 밑에 고드름이 맺히면 따서 먹었다. 옛날에는 함박눈이 오면 서설(瑞雪:상서로운 눈)이라 행운이 찾아 든다고 좋아했다. 요즈음은 함박눈이 내려도 쌓인 눈을 보기가 어렵다. 내리기만 하면 염화칼슘으로 녹여버린다.

눈이 쏟아져 산에 소복이 쌓이면 동네 친구들이 떼를 지어 뒷산을 향해 산토끼 사냥에 나선다. 산토끼는 뒷다리가 길어 오르막에서는 빠르지만, 앞다리가 짧아 내리막에서는 딩구르고 혼비백산(魂飛魄散)을 이룬다. 이런 약점을 알고 우리들은 산 위에서 밑쪽으로 토끼몰이사냥을 했다. 사냥에 실패하는 일도 많았다. 어쩌다 한 마리가 잡히면 무채와 파, 마늘, 물 등을 듬뿍 넣고 탕을 끓였다. 

토끼몰이 간 십여 명이 한점이라도 함께 먹었다. 요즘 사람들의 식성으로는 맛 이전에 ‘이거 누구 코에 바르라고 요만큼 주냐’는 소리가 나올 것이다. 어렵던 시절이라 고깃국물도 귀했다. 국물만 마셔도 별미였다. 옛 생각에 연민(憐憫)의 정이 복받친다. 이제는 산토끼도 찾아볼 수 없다. ‘산토끼 토끼야 어디로 가느냐. 깡충깡충 뛰면서 어디를 가느냐’ 물어보던 동요가 ‘산토끼 토끼야 어디로 갔느냐. 깡충깡충 뛰면서 어디를 갔느냐’라고 바꿔 불러야 할 정도이다.

한겨울엔 정말 추웠다. 당시는 한강 물도 꽁꽁 얼어붙어 썰매장이 됐다. 동네 아이들이 모여 썰매를 탔다. 당시 썰매는 널빤지 밑에다 각목을 나란히 두 줄로 대고 못을 박아 고정한다. 각목에 굵은 철사로 날을 만들었다. 썰매 꼬챙이는 손에 잡기 좋은 크기의 소나무를 잘라 끝부분에 긴 못을 박아서 얼음을 딛고 밀어 썰매를 달리게 했다. 그나마 썰매가 없는 친구들은 얼음판에서 팽이치기로 시간을 보냈다. 이보다 더 좋은 겨울 놀이가 없었다. 

또 얼음이 얼면 수렁논으로 곡괭이와 삽, 양동이를 들고 미꾸라지를 잡으러 나갔다. 미꾸라지들은 겨울을 나기 위해 땅속으로 들어간다. 곡괭이로 수렁논 물고랑에 얼어붙은 얼음을 깨고 한 삽 한 삽 흙을 파 뒤집어 숨어 있는 미꾸라지를 찾아내 양동이에 담았다. 얼음조각이 신발 속으로 들어가 젖어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겨울 찬바람을 맞으며 두 시간 이상 잡아도 채 한 사발도 못 채운다. 

잡은 미꾸라지는 동네 친구들 대여섯 명이 덤벼들어 바람막이가 있는 곳에 무쇠솥을 걸고 잔솔가지에 장작을 짚어가며 털내기를 끓였다. 미꾸라지 양이 적어 넉넉하게 물을 잡고 고추장을 풀은 다음 처마 밑에 말려 놓은 시래기도 한 줄 넣고, 물이 팔팔 끓을 때 밀가루 반죽을 뚝뚝 떼어 넣었다. 한 사발도 못 되는 미꾸라지에 수제비를 잔뜩 넣으니 한 솥 가득 추어탕이 된다. 미꾸라지가 얼마나 뜨거웠는지 이리저리 헤치고 다녀 별다른 양념은 넣지 않았어도 국물에 맛이 잘 배어났다. 작은 양의 미꾸라지였지만, 동네 형, 아우들이 모여 후루룩후루룩하며 잔치했다. 

디저트로는 남아 있는 숯불에 감자와 고구마를 구워 먹었다. 이마저도 당시에는 귀한 겨울철 특별식이었다. 며칠 후 철수 엄마가 난리가 났다. 봄에 심을 씨감자를 방에 얼지 않게 가마니에 넣고 이불을 싸서 두었는데, 없어졌다는 것이다. 철수가 집에 있는 씨감자를 몰래 갖다가 친구들에게 구워 준 것이다. 

겨울에는 대개 밖에서 딱지치기, 구슬치기, 사방치기, 땅따먹기, 연날리기 등을 했다. 공장에서 만든 장난감이라고는 구슬만 있었다. 딱지는 종이를 접어 만들었고, 연도 손수 만들어 날렸다. 해 질 무렵 집 집마다 굴뚝에선 밥을 짓는 연기가 나기 시작한다. 연기를 보고 밖에 놀던 아이들은 집을 찾아 들어갔다. 

틈틈이 잊지 못할 달콤한 시간도 있었다. 사랑방 아랫목에 담요를 펴고 모여 앉아 놀면서 군고구마에 살얼음 떠 있는 동치미를 곁들여 먹었다. 특별한 날에는 어머니께서 두부를 만들어 김장김치에 싸주셨다. 김치냉장고도 없어 김치를 땅속에 묻어 두고 겨우내 먹었다. 그 맛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그 시절에는 적게는 6명 많게는 10명이 한집에 살았지만 어려운 생활에도 의좋게 지냈다. 늘 시끌시끌한 웃음꽃이 그치지 않았다. 요즘은 먹을 것이 넘쳐 오히려 다이어트를 해야겠다니 격세지감(隔世之感)을 느낀다. 

[전국매일신문] 문제열 국제사이버대학교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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