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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의 하제별곡] 싸가지 없는 ‘어른의 나이’는, 이 뭣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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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의 하제별곡] 싸가지 없는 ‘어른의 나이’는, 이 뭣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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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08.31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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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 문명비평가·우리글진흥원 고문

어른 한 분이 또 세상을 뜨셨다. ‘글 쓰는 이들의 빨간 펜’으로 불린 이수열 선생, 아동문학가였던 고(故) 이오덕 선생과 함께 우리말글 연구와 교육에 매진했다. 정중히 명복을 빈다.

그보다 앞선 이로 고 정재도 선생이 있다. 일제 때 ‘조선말 큰 사전’ 편찬에 참여한 사실이 영화 ‘말모이’로 알려지면서 당시 사정과 그 후 우리말글에 쏟은 노력이 화제가 됐다.

책 ‘울고 싶도록 서글픈, 한국어학의 현실’로 문화계 전반에 충격을 준 재야(在野) 어학자 고 최한룡 선생도 기억해야 한다. 한국어 속의 한자어의 의의를 바로 보지 못하는 데서 생기는 난맥상을 고발했다. 이 어른들의 열정과 선비정신은 우리 문화사의 큰 깃발이다. 

이런 공덕을 우리 사회는 한글전용과 혼동하는 경향이 있다. ‘한자 쓰지 말자.’는 것을 우리말글의 중요한 주제로 삼는 일부 인사들의 사고방식도 비슷하다. 영어에서 라틴어를 빼자는 것과도 같다. 이런 몇 사례에서 한국어에 대한 우리 시야(視野)가 좁았음을 더 실감한다.

정재도 선생께 “춘추가 어떻게 되십니까?” 물었다가 “나이가 몇 살이냐고 물어 주오.”라는 말씀 듣고 부끄러웠다. 안 써도 될 다른 문화의 단어 또는 개념인 춘추를 우리가 왜 써야 하느냐 하는 ‘꾸중’이었다. 함께 ‘춘추의 뜻을 알아야 하는 이유’라는 가르침도 주셨다.

‘우리말글 속 한자어의 역할’을 연구한 최한룡 선생은 “한자가 쥔 한국어의 속뜻을 알아야 우리말글이 번듯해진다.”고 했다. 좋은, 열린, 큰 한국어를 위한 첫 계단이라는 것이었다. 영어 같은 외국어 바탕의 외래어를 쓰는 데도 이런 자세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수열 선생의 저서에는 (한국어에서 쓰이는) 한자어의 구조(構造)와 활용에 관한 대목이 잘 정리돼 있다. 우리말글을 바르게 쓰기 위해서는 영어 출신 외래어처럼 한자 출신 한자어를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토박이 우리말 교본과도 같은 이오덕 선생의 아름다운 글에서는, 아이러니컬하게도 외래어나 한자어 등 한국어의 외래적 요소가 정확하고 적절하게 활용되고 있다.

언어란 그런 것이다. 다른 문화에 열려야 한다. 어우러져야 뜻이 깊어지고 표현력도 커진다. 그런 언어는 그 언어를 함께 쓰는 언중(言衆)의 마음을 크고 착하게, 서로 친하게 할 터이다.

‘춘추’는 우리나라 (국어)당국인 국립국어원의 사전에 ‘나이의 높임말’로 나와 있다. 연세(年歲)도 그렇다. 어른에게 나이를 묻기 위해서는 ‘높임말’인 춘추나 연세를 써야 하는 것이다. 아니면 싸가지 없는 사람이 된다.

춘추는 봄(春)과 가을(秋) 합쳐 시간에 관한 비유적인 뜻을 빚는다. ‘역사’의 뜻이 되기도 한다. 허나 ‘나이의 존댓말’이 될 근거는 없다. 연세도 그렇다. 소위, 사대주의 언어다.

‘나이를 뜻하는 한자말’이라고 고쳐야 한다. 국어원장이 안 하면 대통령께 시켜야 한다. 우리말은 낮춤말이고 한자말이 존경의 언어라니, 나라의 싸가지와 관련된 일 아닌가. 싸가지 대신 ‘국가 기강(紀綱)’이라고 해야 알아들을까?

한가위 명절, 어른들께 문안(問安)을 여쭐 때면 여전히 고민스러울 듯하다. 그러나 우리는 신념을 가지고 춘추나 연세 말고 ‘나이’를 여쭤야 한다. 그래야 (생각도) 바뀐다.

문안이나 춘추, 연세의 뜻도 제대로 알아야 한다. 자칫하면 틀린다. 우리말글의 영어 오남용(誤濫用)이 언어에 대한 무지에서 나온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걱정을 경청할 필요가 있다. 울고 싶도록 서글픈 현실, 이수열 선생의 별세(別世)를 보며 떠오른 생각이다.   

[전국매일신문 칼럼] 강상헌 문명비평가·우리글진흥원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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