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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열의 窓] 산토끼야 어디를 가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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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열의 窓] 산토끼야 어디를 가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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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2.02.06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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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열 국립한경대학교 연구교수

창밖을 보니 함박눈이 내린다. 설날에 내린 눈은 9년 만이라고 한다. 올 한해 좋은 일 많이 생기라는 서설(瑞雪)이라고 믿어 본다. 새하얀 눈을 보면서 명절 분위기가 물씬 더 풍기는 것 같았다. 이 눈과 함께 무엇보다 코로나가 씻겨 나갔으면 좋겠다.

눈을 가장 좋아하는 사람은 아이들이다. 눈밭을 뛰노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어린 시절 추억에 잠겨본다. 눈만 내리면 앞산으로 뛰어 올라갔다. 우리 동네 나지막한 산은 아이들의 놀이터였다. 겨울철 눈이 오고 쌓이면 철사로 올무를 엮어 들고는 뒷산으로 토끼를 잡으러 갔다. 요즘엔 상상도 못할 일이다.

토끼는 습성만 잘 이해하면 눈 덮힌 산에서 반나절만 쫓아도 두어 마리 쯤은 쉽게 잡을 수 있었다. 토끼는 무엇보다 지구력이 약하다. 사람을 보면 후다닥 도망가지만 힘이 부족해 조금만 벗어나면 더 달아나지 않고 가만히 쉬면서 주변을 살피고 기척이 느껴지면 또 달아나는 식이다. 또 한 가지는 아무리 급해도 자기가 평소 다니던 길로만 다닌다. 다른 길로는 절대 가지 않는 습성이 있다. 그러니까 토끼를 사냥할 때는 눈 위에 찍힌 발자국 또는 똥을 보면서 뒤쫓다 보면 산을 한 바퀴쯤 크게 돌아 다시 처음 출발했던 근처로 오게 된다. 그럼 그 길 중에 다른 샛길이 없는 곳에 올무를 설치하고 다시 한 바퀴 돌면 십중팔구는 올무에 걸려 발버둥 치고 있는 토끼를 발견할 수 있다.

산토끼는 대개 잿빛이다. 언젠가 집에서 키우던 토끼들을 산에 굴을 파서 풀어 준 적이 있는데 흰색과 검정, 바둑무늬 색깔을 가졌던 녀석들이 얼마 지나지 않아 회색으로 변하는 걸로 보아 본능적으로 수풀과 나무에 맞는 보호색으로 털갈이를 하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굴도 한 개 팠는데 어느 날 가보니 세 갈래의 굴을 파놓았다. 꾀 많은 토끼는 세 개의 구멍을 판다고 해서 생긴 교토삼굴(狡兎三窟)이라는 말이 생긴 것도 맞는 말이었다. 도주로를 여러 곳에 마련해 둔 것이다.

어쨌든 잡은 토끼 가죽은 잘 벗겨 말렸다가 귀마개 등을 만들어 쓰고 고기는 무채를 썰어 넣고 마늘과 파 등 기본양념만 하고 소금과 조선간장으로 간을 해서 지져 먹으면 담백하고 맛있는 토끼요리가 됐다.

요즘은 올무를 이용해 야생 동물을 함부로 포획하는 것은 불법이다. 하지만 동물이 사람의 생명이나 재산에 피해를 주는 ‘유해야생동물’에 해당되면 포획이 가능하다. 그렇지만 이 경우도 유해야생동물이 출현해 포획 외에는 피해를 억제할 수 없거나, 다른 방법을 실행하기 곤란할 때이며, 법에 따라 시장․군수․구청장의 포획 허가를 받아야한다. 유해동물이란 농작물 또는 과수에 피해를 주는 참새, 까치, 까마귀나 사람이나 가축에 위해를 주는 멧돼지나 맹수류를 말한다.

연휴 마지막 날엔 눈 덮인 겨울 산을 올라갔다. 혹시나 산토끼 흔적이 있을까 하여 눈여겨보았지만 역시 없었다. 산토끼와 꿩, 노루가 뛰어놀던 숲은 고라니와 멧돼지가 주인으로 바뀌었나보다. 나무꾼들이 다니던 길은 정글로 바뀌어 있었다. 잔설 아래서는 복수초, 노루귀가 꽃대를 밀어 올릴 기회만 엿보고 있다. 산에서 내려오는 길에 동네 한 바퀴를 돌았다. 설 명절을 지낸 동네는 손님들이 모두 떠나서인지 조용하고 적막했다. 아마도 코로나19 때문일 것이다. 과수원집 흰둥이도 웬일인지 짖지 않고 눈이 녹아내리는 처마 끝마다 탐스럽게 줄지어 매달린 고드름만이 한낮 햇살에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산토끼처럼 사라진 것들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대가 너무 빠르게 변한 탓이리라. ‘산토끼 토끼야 어디로 가느냐. 깡총깡총 뛰면서 어디를 가느냐' 라고 노래를 부르지만 아이들은 정작 산토끼를 본 적이 없을 것이다. 어디 사라진 것이 산토끼뿐이겠냐는 생각이 들면서 우리의 선조들이 사용하던 물건이며, 놀이며, 마음까지 너무 쉽게 잊혀지는 것 같아 씁쓸했다. 전세계를 열광시킨 드라마 오징어 게임은 지금은 사라진 뽑기, 줄다리기 같은 우리 어린 시절의 놀이를 재창조해 한류드라마의 새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옛것이라고 마냥 버릴 것이 아니라 오늘의 시각으로 재조명할 필요가 있다. 유행은 돌고 돈다.

[전국매일신문 칼럼] 문제열 국립한경대학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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