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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의 데스크席] 뒷물이 앞물을 밀어내며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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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의 데스크席] 뒷물이 앞물을 밀어내며 흐른다
  • 최재혁 지방부국장
  • 승인 2024.01.18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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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 지방부국장

고려말 조선 건국을 둘러싼 권력다툼을 다룬 ‘육룡이 나르샤’, 이 드라마에서는 독특하게도 태종을 주인공으로 부각시켰다. 이성계와 정도전을 중심으로한 신진세력이 조선을 세운 것이 아니라 막후에 태종 이방원이 있음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뒤늦게 권력 쟁탈전에 나서 형제를 죽이는 살육전을 마다하지 않은 잔인한 품성을 부각하는 것이 일반이었던 그동안의 사극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훗날 조선 3대 왕인 태종 이방원이 극중 핵심인물이다. 이방원은 극중 권력을 잡기 위해 정적을 무참하게 제거하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이방원이 수하를 시켜 정적 정몽주를 개성 선죽교에서 살해한 게 대표적이다. 이방원은 조선의 왕이 되기 위해 왕자의 난도 벌여 형제 간 피를 흘린다. 조선 개국공신인 정도전도 이방원에 의해 비참한 말로를 맞이한다. 이방원은 부친인 이성계와도 멀어진다. 그야말로 이방원은 권력을 위해 부모 형제와도 대립하는 인물로 비쳐진다.

삼봉 정도전은 태조 이성계를 도와 조선을 건국한 개국공신이었고 건국의 이론적 바탕을 구축하여 조선왕조 500년의 국가 경영체계를 확립한 정치 사상가였다. 57세에 생을 마감한 친명파였던 정도전은 친원파와 정치적 대립관계로 친원파에 의해 전라도 나주 땅에서 3년간 유배생활을 비롯해 무려 10년 동안 유랑세월을 보냈다. 태조실록에는 “정도전은 벼슬이 오를 때마다 고려 말의 대표적인 권문세족이었던 우현보와 그의 세 아들로부터 경멸을 당해 당시의 원한이 뼈에 사쳐 분하고 원통한 마음을 품고 있었다”고 기록돼있다. 실록은 정도전이 실권을 잡은 후 우현보와 아들 3형제, 그리고 맏손자를 귀양 보낸 후 3형제에게는 곤장형을 가해 죽게 만들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정도전은 유배와 유랑생활을 하면서 자신이 겪은 서러움과 원한을 정치적으로 복수했다. 정도전은 이성계를 왕으로 옹립한 후 조선왕조의 최고 실권자이자 전략기획가로서 신생조선의 토대를 만들었다. 그러나 사병혁파와 요동정벌을 둘러싸고 이방원과의 갈등 와중에서 자신이 겪은 한풀이식 개혁 정치를 추진하다가 이방원을 포용하지 못하고 제1차 왕자의 난 때 목숨을 잃었다. 조선 개국공신은 55명이다. 이들 중 정변에 휘말려 비극적 최후를 맞은 이도 12명이나 된다. 대표적으로 태조 이성계의 ‘장자방’으로 불린 정도전이 있다. 그는 한양 천도 과정에서 경복궁과 도성 위치를 정하고 각 성문과 한성부의 5부 52방 이름을 지었다. 통치 규범을 제시한 ‘조선경국전’도 만들었다. 이처럼 조선의 이념적 바탕을 마련하고 체제를 정비해 500년 왕조의 기틀을 다진 실세였다. 하지만 권력투쟁에서 밀려 훗날 태종이 된 이방원에게 제거됐다.

중국 한나라 창업자인 고조 유방은 왕권에 위협이 될 만한 개국공신을 차례로 숙청했다. 맹장 한신은 ‘서한삼걸’(西漢三杰)‘에 꼽힌 일등공신이다. 제후국 초왕(楚王)에 임명됐지만 세력이 커지자 주살당했다. ‘토끼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를 삶아 먹는다’는 토사구팽(兎死狗烹)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정치사의 곡절마다 등장한 불문율이다. 현대판 정권 창출의 핵심 인물도 개국공신에 비견한다. 윤석열 대통령 만들기 주역을 약칭 ‘윤핵관(윤 대통령 핵심 관계자)’이라 부른다. 경남 출신 윤한홍을 비롯해 장제원·권성동·이철규 국회의원 등이 핵심 4인방으로 거론된다. 윤한홍은 정권 초기 핵심 국정과제인 청와대 이전 업무를 총괄하며 대통령의 두터운 신임을 과시했다. 한데 4월 총선을 앞두고 당내 일각에서 이들 친윤 인사에게 칼을 겨누고 있다. 개혁 명분을 앞세운 퇴진 요구다.

세대교체를 바라는 이들이 즐겨 인용하는 문구가 ‘장강후랑추전랑(長江後浪推前浪. 장강(양츠강)은 뒷물이 앞물을 밀어내며 흐른다)’이다. 정도전도 주류세력을 권문세가에서 신흥 사대부로 대체하기 위한 명분을 이 글귀에서 찾았다. 한데 그도 결국 뒷물에 떠밀렸다. 강을 건넜으면 뗏목은 그 역할을 다한 것이다. 쓰임이 다한 뒤엔 버려질 운명이 권력의 속성이다. 정치의 한 굽이를 보며 세상사 이치를 다시금 통감한다. 사람은 감정의 동물이다. 성인군자가 아닌 이상 자신이나 가족, 자신이 속해있는 정당이나 단체 등에 서러움을 주고 경멸한데 대해 앙갚음을 하려는 마음을 갖게 된다. 정권이나 자치단체의 장, 기관의 장이 바뀌면 전임자가 추진하던 정책이나 사업, 조직, 인사의 크고 작은 변화가 있게 마련이다. 

국민들은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 새롭게 변화되는 것을 기대하지만, 도를 넘어 전임자가 결정한 기존의 모든 것을 감정적으로 한풀이 하듯이 뒤집어엎는 변화는 바라지 않는다. 그것은 정당이나 자치단체, 또는 기관, 개인기업체도 마찬가지다. 평범한 진리지만 정치적인 보복은 또 다른 정치적인 보복을 낳는 것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서 이조시대에 사색당쟁 때문에 국가와 국민이 얼마나 많은 피해를 입었는지 잘 알고 있다.여당과 야당은 정책으로 건전한 대결을 하고 집권을 해서 자신들이 국민에게 공약한 정책을 실천하면 된다. 정권이 바뀌면 전 정부에서 추진한 것은 무효로 하고 당한만큼 돌려주고 손보겠다고 벼르는 것은, 국민들은 안중에도 없고 자신들의 한을 풀어보겠다는 속내를 드러낸 셈이다. 

백해무익한 정치적인 보복은 모두에게 불행을 초래할 뿐이다. 역사는 되풀이된다. 과거의 역사에서 우리는 오늘을 사는 지혜를 배워야한다. 이성계와 함께 역성혁명을 일으켜 이씨조선을 세운 조선최고의 사상범 삼봉 정도전도, 자기를 핍박한 우현보와 아들 3형제에게 보복함으로써 결국 정쟁의 희생물이 되었다. 죽산 조봉암도 1950년대 자유당 정권시절 정쟁으로 목숨을 잃은 대표적인 정치인이다. 정치를 하다보면 분하고 원통한 마음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화해와 용서 그리고 상대방을 껴안음으로써 풀어야하는데, 막상 선거가 끝나면 정책, 사업, 인사를 감정을 갖고 보복적으로 하는 것을 우리는 많이 보아왔다. 정권은 원한을 품고 복수나 한풀이로, 그 무엇을 뒤집어엎기 위해 잡으려고 해서도 안 되고, 또 그렇게 해서 잡을 수도 없다. 오만과 독선보다는 좀 더 자세를 낮추고 겸손한 마음으로 국민을 섬기는 정치를 할 때 존경 받게 된다는 것을 잊지말아야한다.

600년 전 정도전이 백성의 삶이 기본이라고 깨쳤던 위민의식(爲民意識)의 정치적 이상. 봉건 시대가 이미 사라지고 민주주의 시대에 들어선 현재, 정치인이 깨치지 못해서야 될 일인가 말이다.“ 정치인이라는 것들은 주도권을 빼앗길까 무서워 서로 의심하고 견제하고 질투하고 이기려는 그런 족속일지 모른다. 국민을 위한다는 놈이 그 자리에서 할 일을 찾으면 될 것을, 왜 그리 초조하고 불안했겠느냐?” 요즘 우리 정치권의 이야기가 아니다. 600년 전의 이야기다. 월화드라마 ‘육룡이 나르샤’ 정도전(김명민 분)이 고려 정치 세태를 질책한 말이다. 사대부를 정치인으로, 백성을 국민으로 바꿨을 뿐인데, 2024년에도 들어맞는다는 게 답답한 일이다.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 

[전국매일신문] 최재혁 지방부국장
jhchoi@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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