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읽는 詩 3] 위정자들의 양심을 빠는 세탁기는 국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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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읽는 詩 3] 위정자들의 양심을 빠는 세탁기는 국민
  • 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 승인 2020.02.09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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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해철 시인(1956년생)

전남 나주 출신으로 198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의대를 나와 현재 서울에서 성형외과 의사, 시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함께 읽기> 며칠 전 취하도록 함께 마신 친구가 잘 돌아가지 않는 혀로 “야 다음 칼럼은 ‘큰 세탁기’ 제목의 칼럼을 써라”, “아니, 왜?”, “큰 세탁기에 여·야 할 것 없이 정치하는 X 다 집어넣고 하이타이 팍팍 풀어 휘이익 돌렸으면 좋겠다는 칼럼을...”

술 취한 친구는 지금 정치인들 너무 때가 많이 끼었다는 거였다.

그 때를 빨지 않고서는 제대로 나라가 돌아가지 않는다고 하면서 세탁기에 넣어 돌렸으면 좋겠다는 칼럼을 쓰라는 뜻이었다.

시의 내용은 다음 두 시행에 눈을 빼앗겨 잠시 머무르게 될 것 같다.

‘양심은 팬티와 같은 것’/ ‘의무는 런닝셔츠와 같은 것’

이 시에서 ‘세탁기’는 어떤 의미를 지닐까 세탁이 ‘더렵혀진 걸 빤다’는 뜻이니 나의 더렵혀진 부분을 빤다고 하면 자아 성찰과 연결된다 하겠다.

한 세상 잘 놀았다고 하고선 ‘게으르게 살았다’고 하고 ‘죄가 크다’고 했으니까. 잘 놀았으면 그걸로 끝이지 군더더기를 달았음은 그만큼 부끄럽게 살았다는 말이기도 하다.

‘양심은 팬티와 같은 것 / 가끔 벗어서 세탁기에 빤다 / 말려서 다시 입는다’

이 시행을 보면 양심은 때 묻은 팬티와 같다. 팬티는 날마다 벗어내니 즉 양심에 어긋난 짓을 숱하게 했다는 말이다.

그런 뒤 빨고는 다시 입고. 잘못된 행위를 반복하는 세상사를 빗대는 말이라 하겠다.

‘한 세상 슬픔을 잊고 웃다 간다’ 슬픔을 잊고 웃으며 살다 가는 인생이라면 좋을 텐데 필자는 즐겁지 않다. 뒤에 ‘독하게 살았다’는 말과 ‘한을 주었다’는 말이 이어지니까.

‘의무는 런닝셔츠와 같은 것’ 런닝셔츠 역시 날마다 갈아입어야 할 만큼 쉬 더러워진다.

‘의무’라는 시어에서 보듯이 잘못된 행위가 반복되고 있다. 그럼 뉘우침도 습관적으로 반복될 테고. ‘땟물과 함께 / 눈자위 붉은 그리움이 / 배수구를 통해 흘러나간다’ 더러워진 양심(땟물)이 배수구로 흘러간다. 땟물처럼 빠져나가는 그리움, 아마 그것은 진실하게 살기 위하여 발버둥 치는 모습이 아닐까. 우리는 신이 아닌 인간이기에 잘못을 저지르고 또 뉘우친다. 다만 그게 습관적으로 반복되어선 안 되겠다. 작금 정치인이 새겨야 할 대목이다.

 

[전국매일신문] 호남취재본부/ 서길원기자
sgw3131@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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