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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읽는 詩 57] ‘플라시보’ 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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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읽는 詩 57] ‘플라시보’ 효과
  • 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 승인 2022.06.01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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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복효근 시인(1962년생) : 전북 남원 출신으로 1991년 ‘시와시학’을 통해 등단. 이 시인의 시에는 언제나 정겨움이 넘친다는 평을 받고 있다.
 
<함께 읽기> 제법 오래전에 아는 이랑 술자리를 함께 하게 되었다. 그날따라 그의 아내도 함께했는데, 저보다 그가 먼저 취했다. 평소 점잖던 사람이 취해 함부로 말을 하니까 그의 아내는 안절부절못했고, 듣던 저도 솔직히 민망했다. 그가 한 말 가운데는 요즘 기자들은 패기가 없고, 진취적이지 못하고 기자가 아닌 월급쟁이로 전락했다는 등 수긍할 수있는 말을 했다. 허나 술잔이 더해지자 결국 사이비란 말까지 튀어나왔다. 다음 날 아침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자기는 필름이 끊겨 어제 주고받은 얘기가 하나도 기억이 안 난다면서 아내가 꼭 제게 사과하라고 해서 전화했다는... 저도 술이취해 무슨 말을 들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면서도 솔직히 그때까진 그가 괘씸했다. 하지만 오후가 되면서 어느 정도 술이 깨다 보니 그가 한 말이 다른 기자들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 바로 저 자신을 가리키고 있음을 느끼게 되었다.

아마 시인과 저뿐 아니라 이런 경험이 한두 번은 다 있었을 게다. 나를 겨냥하여 한 말이 아니건만 내 가슴이 찔려 부끄러웠던 적이. "딸아이 피부약을 내 감기약인 줄 알고 먹고서 / 감기가 나은 적도 있다 / 대신 매 맞고 뉘우친 마음의 자리 푸른 매 자국이 싱싱하다"

'위약 효과(플라시보 효과)'라는 말을 들어 보셨을 게다. 배탈이 났는데, 영양제를 주면서 이 약이 배탈에 참 잘 듣는데 하면서 건네면 환자가 그 말을 믿고 먹으면 몸이 나아지는 효과를 얻는다는 말이다. 대신 맞은 인생의 매가, 조금 불쾌할 순 있지만 공연히 자신을 돌아보며 가다듬는 게기도 된다. 이런 매라면 얼마든지 맞아야 겠다.

조선시대 ‘매품팔이’는 생계를 위해 남을 대신해 매를 맞았건만 요즘 매품팔이는 돈 대신 깨달음을 얻는다. 이런 매는 맞을수록 내 자신을 바꾸게 하기에 매 맞는 일도 때론 싱싱하다.

[전국매일신문] 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sgw3131@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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