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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의 하제별곡] 재승덕(才勝德)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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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의 하제별곡] 재승덕(才勝德)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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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3.04.25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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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 언어철학자·시민사회신문주간

도대체 사람이란 무엇일까, 뿌리깊은나무의 질문 

눈앞의 이해관계만으로, 코앞의 이끗만으로 세상사는 건 사람의 의미가 아니다. 칼자루 쥐었으니 뭘 못하랴 하는 저 망나니 칼춤에 소걸음 선생의 1930년대 글이 떠올랐다. 

우보(牛步) 민태원(閔泰瑗)의 ‘청춘예찬’은 우리를 늘 설레게 한다. 잊고 계셨던가, 18세 ‘나’의 청년을. 주먹 다시 불끈 쥐면 되살아날 터. 날마다 청춘을 깨우자. 설레지 않는 가슴이 어찌 남을 설레게 하랴.

<...청춘의 피는 끓는다. 끓은 피에 뛰노는 심장, 거선(巨船)의 기관같이 힘 있다... 이상(理想)! ... 이것은 청춘이 누리는 바 특권이다. ... 그들은 앞이 긴지라 착목(着目)하는 곳이 원대하고, 피가 더운지라 실현에 대한 자신과 용기가 있다. ...>

아하, 바르고 고운 것 말고도 ‘좋은, 아름다운 삶’의 덕목(德目)이 있었더라. 더 먼 곳의 더 큰 것을 바라보아야 한다. 세상의 세월이, 세월의 세상이 놓치고 있었던 것이다.

여러 조항의 규정(規定)들을 삿된 의도로 짜 맞추는 기술, 그 잔재주가 정치라면 청춘은, 청년은 없다. 그게 인문학이라면, 인간세상은 이미 좀비동네다. 인간을 바라보라.  

전쟁과 평화 이슈들의 교직(交織)인 국제정치학을 바이든이나 시진핑이 ‘힘’으로 획일(劃一)하고 밟아버리니 세상 곳곳에서 좀비들 울부짖음 들리는 듯, 우리 사는 터전도 망나니 칼춤의 귀곡성(鬼哭聲)과 장송(葬送)의 곡조 이미 시작됐을까. 

(인류의) 청년이, 청춘이 망녕 노년들을 방관하니 생기는 일이다. 너냐 내냐, 책임 배분의 비율로 시절을 허송할 상황은 지났다.  

재승덕(才勝德)이란 문장이 있다. 재주가 덕성을 이긴다(勝)는 뜻. 영리하되 어질지 않은 (사람의) 마음이나 삶의 모습을 이르는 말이다. 우리 삶 속에서 흔히 재승덕박(才勝德薄)이나 재승박덕이라는 말로 변주(變奏)돼 쓰인다. 

薄(박)은 얇다 적다 가볍다 천하다 좁다 따위의 뜻이다. 재주는 비상하여 날뛰나 인간성은 아예 접은 ‘인간’의 모습은 슬프다. 그런데 이를테면 의과대학이나 서울법대는 그들 몫인가.

끓는 피의 청춘이, 청년들이 (상징적인) 저들의 하는 양을 보고서 부러우면 진다. 어질지 못하면 차라리 재주도 갖지 말러는 취지(趣旨)의 글을 다산 정약용 선생(1762~1836)은 남겼다. 才勝德은 그의 문장 중 한 대목이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1513), 인간이 지은 바 제 아바타인 세상의 여러 신(神)을 강점(强占)해버린 교회(권력)의 규칙이 인간을 버리고 있음을 일찍이 술회(述懷)한 고전이다. 청춘이라야 할 수 있고, 알 수 있는 원리다. 우물 안에 ‘나’를 가두지 말라는 뜻을 얻는다.

청춘은 앞이 긴지라 착목(着目)하는 곳이 원대하다 했던 牛步 선생의 말은 인류를 위한 통찰이다. 멀고도(遠) 큰(大) 미래를 바라보라 한 것이니 돈보다 물질보다 귀하다. 

우보는 기자였다. 우리 언론인들은 이런 선배를 스승 삼으니 의당 거선의 기관처럼 힘 있으리라. 그 힘은 재승덕(才勝德)이 아닌 덕승재(德勝才)일 것으로 믿는다. 이는 용기이기도 하다.  

챗GPT를 섬겨서 이룰 일은 무엇인가. ‘도대체 사람이란 무엇일까’란 제목의 책(1985)을 펴내기도 했던 뿌리깊은나무 한창기 선생도 마키아벨리와 다산, 우보와 한 자리에 모시고서 함께 ‘우리’를 물끄러미 바라보자. 이 명상, 큰 공부겠다. 

‘문명’이라는 저 우물 안에 살며 그들처럼 어질지 못하겠으면 차라리 재주 버리자. 오늘의 청년들에게 보내는 인류 역사의 앤솔로지(anthology)다. 

멀리 보자.

[전국매일신문 칼럼] 강상헌 언어철학자·시민사회신문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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