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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의 하제별곡] 축제(祝祭)의 본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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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의 하제별곡] 축제(祝祭)의 본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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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3.04.04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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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 언어철학자·시민사회신문주간

고인돌축제의 ‘고인돌’과 ‘축제’, 안 어울려요?

바야흐로 축제의 계절이다. 보상심리라는 말을 패러디한 것으로 보이는 요즘 유행어 ‘보복관광’이란 말이 실감날 정도로 상춘(賞春)의 인파가 거대한 해일 같다. 

용산역 대합실의 젊은 남녀 대화가 싱그러웠다. 그 중 이 대목이 주의를 끌었다.

“고인돌축제? 고인돌과 축제란 말이 잘 안 어울려. 촌스럽지 않아? 축제는 축제스럽게 써야 맛이 살지? 고인돌에 축제가 다 뭐야?”

‘축제스럽다.’는 말뜻 짐작이 어려웠다. 혹 핼러윈이나 크리스마스 같은 주제(언어)와 함께 써야 그 여성의 뜻에 맞을까? 카니발(謝肉祭 사육제) 피트(fete) 피에스타(fiesta) 피스트(feast) 페스티벌 주빌리(jubilee) 등 멋진 파티(잔치) 이미지에 웬 고인돌이야, 이런 뜻이었을까?

축제란 말을 설레고 좋은 일, 상서(祥瑞)로운 느낌이나 즐겁고 화려한 ‘노는 것’과 직결되는 뜻으로 여기고 있는 듯하다. 허나, 그 말의 뜻을 톺아보면 의외의 사실과 맞닥뜨리게 된다.

축제는 제사(祭祀)다. 신(神)에게 정성과 함께 공물(供物)을 바치는 것이다. 서양 축제? 순교(殉敎)한 기독교 성자(聖者)와 같은, 공공(公共)의 영광과 이익을 위해 자기를 희생한 이를 기리는 모임이 주류(主流)다. 인류학적인 공통의 개념이겠다. 

축제(祝祭)의 祝은 신에게 기원하는(비는) 것, 祭는 제사다. 두 글자 다 신성(神性)이 바탕이다. 신성의 표지는 보일 시(示) 글자다. 示가 제사를 위한 제단(祭壇)의 그림으로 보인다면, 상형문자 갑골문의 원리를 이해하는 것이다. 神에도 祝에도 祭에도 다 示가 들어 있다.

축제가 단지 ‘미친 듯이 놀아보자.’의 뜻이 아닌 것이다. 인간이 처음 저를 각성(覺醒)하며 빚어 올린 제 아바타를 향해 진지한 다짐과 정성을 보내는 것, 하늘 향한 그 비나리가 진화한 ‘문화’가 지금 여러 이름의 축제이리라. 장독대 정한수 향한 어머니의 새벽 기도를 떠올리자. 

祝은 제단 앞에서 기원의 말(축문)을 읽는 큰 사람(兄 형님) 그림이다. 제(祭)는 손(又 우)에 고기(⺼,肉 육)를 들어 제상(示)에 올리고 있다. 그림에 사물(事物·현상과 물건)의 본디가 있다. ‘축제’는 일본이 서양(문물)을 받아들여 만든 말, 1904년 우리나라에서 쓴 (첫)기록이 보인다. 

‘고인돌축제’란 말이 어긋나게 들리는 것은 글자의 (속)뜻이 젊은이들의 마음에 제대로 들어있지 않아서 생긴 현상일 것이다. 그들은 또 위에 예로 든 축제의 원래 서양말에도 그런 (인간의) 제사의 뜻이 바탕에 버티고 있는 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인간 문명의 새벽부터 그랬으리라. 좋은 것(음식 등)을 놓고 세상의 존엄한 대상을 향해 두 손 모아 비나리하는, 간절하게 비는 것은 본성일 터다. 

그리고는 제사에 바쳤던 술과 밥 등 좋은 음식을 저를 향해 차리고, 축복의 상서로운 기운을 나누는 것이다. 춤도 추고 노래도 부르는 덕담(德談)의 잔치로 인간은 자신감을 갖는다.

고인돌이 ‘생명 없는 돌’일까? 그런 생각도 이런 인식 불렀겠다. 피라미드처럼 인력(人力)이 많이 드는 거대한 고대의 건축물은 생(生)과 사(死)에 대한 인류의 첫 인식과 함께 권력이 생성(生成)됐음을 바라보게 한다. 문명의 표현, 동전의 양면 같다.

고대 거석(巨石)문명의 큰 상징물이었던 아름다운 고인돌이 세계에서 우리나라에 가장 많다는 사실은 무엇을 뜻할까? 화순 고창 강화도 등의 고인돌들은 권력자의 무덤이면서 인간이 제 아바타인 (조상)신을 향해 보낸 열망(熱望)의 기치(旗幟)였으리.     

그 기원(祈願)을 오늘에 살려 새롭게 보자는 제사와 잔치가 고인돌축제다. 간절하게, 산뜻하게, 축제의 깃발은 휘날린다. 고인돌과 축제, 얼마나 잘 어울리는 언어 쌍(雙)인가.   

[전국매일신문 칼럼] 강상헌 언어철학자·시민사회신문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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