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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의 데스크席] 정부의 미숙한 노동정책에 ‘우왕좌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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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의 데스크席] 정부의 미숙한 노동정책에 ‘우왕좌왕’
  • 최재혁 지방부국장
  • 승인 2023.03.30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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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 지방부국장

주 52시간제 개편이 여론에 휘둘리며 우왕좌왕하는 모양새다. 정부가 최근 입법예고한 개편안을 놓고 대통령과 대통령실, 관계부처의 입장이 서로 다르게 발표되면서 국민들은 그동안 큰 혼란을 겪었다. 노동계와 야당, 일부 언론에 의해 ‘최대 주 69시간’으로 개편안에 대한 ‘개악 프레임’이 씌워지자 윤석열 대통령은 최근 “주 60시간 근로는 무리”라고 지적하면서 근로시간제도의 전면 재개편을 지시했다.

정부안을 한참 밀어붙이던 노동부는 ‘멘붕’에 빠졌다. 입법예고까지 마친 정부안을 수정해야 할 상황에 놓였기 때문이다. 대통령실 지시 전까지 노동부는 ‘과로 우려’를 지적하는 언론기사는 물론 사설·칼럼에도 일일이 해명·반박자료를 냈다. 그러나 지금은 쏟아지는 ‘주 69시간’ 관련 기사에 침묵을 지키고 있다.

정책을 놓고 대통령실과 여당, 주무부처 간 혼선이 노출되기도 했다. ‘주 69시간’이라는 구체적인 수치가 나온 건 지난해 12월인데, 대통령실과 여당은 이제서야 “주 69시간은 과도하다”고 메시지를 내놓았다. 지난해 8월 교육부의 ‘만5세 초등학교 입학’ 정책이 여론 반발에 급히 취소되면서 ‘졸속 행정’논란을 부른 점과 겹치는 대목이다.

노동시장 개혁의 핵심은 유연화와 자율성 확대다. 경직된 노동시장을 탄력적으로 바꾸고 시장원리에 맞게 자율성을 확대함으로써 생산현장에 활기를 불어넣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취지가 잘못 전달되고 상황이 꼬인 것은 새로운 정책에 대한 홍보가 잘못되고 노동계와 야당의 선동 프레임에 걸려든 탓도 있다. ‘일이 몰릴 때 몰아서 하고 일이 적을 때 푹 쉬자’는 정책 홍보가 오히려 장시간 노동을 부추기는 악법으로 둔갑한 것이다.

이번 개편안을 주도한 미래노동시장연구회 좌장 권순원 숙명여대 교수도 “주69시간이란 숫자에 갇혀 논의가 완전히 왜곡됐다”고 말했다. 이론적으로 특정 주에 최대 69시간 근무가 가능하긴 하지만 현장에서는 그런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다. 권 교수는 연 단위로 따지면 평균 주 48.5시간만 일하게 돼 현재의 주 52시간 보다 근로시간 총량이 오히려 줄어든다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대기업과 공기업 사무직 중심으로 구성된 MZ세대 노조가 윤정부 개혁의 가늠자 역할을 한데 대해선 실망감을 금치 못한다. 헌법개정보다도 더 어렵다는 노동개혁을 성공시키려면 온갖 어려움을 헤쳐나가야 할 것이다. 그런데 부자 노동자들의 집합체인 새로고침노동자협의회의 의견 표명에 갑자기 개혁의 의지가 꺾인 것 같아 아쉬움이 앞선다.

현재 근로시간제도는 경직성이 너무 강해 기업들은 일감이 밀려들어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고 근로자들 역시 일을 하고 싶어도 할수 없는 근로자들이 급증하고 있다. 근로시간이 줄어들어 “투잡을 뛴다”는 근로자가 지난해 54만6000명으로 사상 최대에 달했을 정도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노동개혁, 연금개혁에 반대하는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전국을 돌며 개혁에 대해 설명하고 설득하는 작업을 벌일수 있었던 것은 개혁의 필요성을 절감했기때문이다. 지금까지 윤정부 출범이후 가장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근로시간 개편 첫단추도 끼우기 전에 우왕좌왕하는 현실을 보면서 노동개혁이 제대로 성공할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작아 보이는 문제도 방치하면 큰 문제가 된다. 이런 문제가 쌓이면 저출산 위기를 심화시키는 부작용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지난해 우리나라 인구가 12만여명 감소했다고 한다. 신생아 수가 2012년 48만명에서 지난해 25만명으로 반토막 나고 합계출산율이 0.78로 OECD 최저수준이다.

여러가지 원인 가운데 일과 가정의 양립이 어렵다는 점도 꼽힌다. 부모들이 육아할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맞벌이의 경우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거나 둘 중 한 명이 직장을 그만두고 육아를 담당해야 한다. 돈도 돈이지만 노동시간도 출산을 더욱 어렵게 할 것이다.

어떤 논리를 펴도 한쪽에 많을 힘을 싣기에는 부담이 되는 상황이다. 그래도 지금 구체적인 실행 방안이 하나하나 만들어지고 있는 납품단가연동제를 모범으로 삼을 수 있어 다행이다. 시간을 두고 또 시간이 지나가면서 보다 사용자와 근로자간에 보다 더 균형 잡히고 또 유연하게 상황에 맞춰 개선될 수 있도록 제도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바람이다.

주 최대 69시간 근무시간 개편 여파로 지금 나라가 혼란스럽고 뒤숭숭하다. 이런 가운데 2021년 우리나라 노동자의 노동시간은 연간 1915시간이었다. OECD 국가 중에서 5번째로 긴 노동시간이다. 우리나라가 ‘OECD 장시간 노동국가’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 누구를, 무엇을 위한 개편인지 의문스럽다. 뭐가 중한데? 라는 영화 곡성에 나오는 대사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는 근로시간제도 선진화를 위한 고용 관련 정책이 시너지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근로자의 권리의식·사용자의 준법의식·정부의 감독행정이 맞물려야 한다. 이는 시대적인 요구사항이기도 하다.

[전국매일신문] 최재혁 지방부국장
jhchoi@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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