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택 시인(1948년 출생)
전북 임실군 출신으로 순창농림고 졸업, 1982년 ‘창작과 비평사’을 통해 등단. 섬진강 연작시를 써 ‘섬진강 시인’이란 별명이 붙음
<함께 읽기> 그랬다지요. 다들 사는 게 그랬다지요. 신혼이 끝나면 주부들은 한숨을 늘어놓는다. 내가 꿈꾸던 결혼생활은 이게 아닌데 행복과 사랑만 가득할 줄 알았는데...
그랬다지요. 이게 아닌데 정말 이게 아닌데 하면서 그랬다. 처음 직장에 들어갔을 때의 포부가 채 삼 년도 안 돼 무시로 중얼거리듯이 터져 나오는 ‘이게 아닌데!’, ‘이게 정말 아닌데!’ 하는 소리에 날아가 버렸을 때... 창의와 혁신은 구호에만 그쳤을 때...
그랬다지요.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하고 열두 번도 더 중얼거렸다... 대학 입학하고 나면 진리를 추구하고, 자유를 만끽하고, 낭만을 즐기기만 하면 될 줄 알았는데 웬걸... 또다른 지옥이 기다리고 있을 줄이야...어쩌다보니 이게 아닌데 잠깐 눈 한번 깜짝였을 뿐인데, 그렇게 봄이 오고 진달래 개나리가 피고... 어쩌다보니 이게 아닌데 잠시 한눈 팔았을 뿐인데, 꽃잎이 떨어질 줄은 미처 몰랐다. 아직 한참 남았는 줄 알았는데...
봄이다. 행복한 사람에게도, 불행한 사람에게도, 가난한 사람에게도 부유한 사람에게도 봄은 다가 온다. 하지만 봄은 또 휑하니 가버리고 만다. 아무리 붙잡아도, 조금만 더 있다 가라고 애원해도 냉정하게 손을 뿌리치고 떠나간다. 삶, 별거 아니다. 별거 아니라서 얼마나 다행인지. 넘치는 이에게도 쪼들리는 이에게도 주어진 봄의 길이는 같고, 잘난 이에게도 못난 이에게도 진달래와 개나리는 보인다. 삶 별거 아니다. 오늘은 울지만 내일 웃을 거리 찾아다니면 되니까. 오늘 외로우면 내일 행복 찾아 떠나면 되니까. 그렇게 살다 가는 게 삶일진대... 내가 걷는 길은 삐까 번쩍해야 하는데, 여태 내가 걸어온 길이 잘못됐다고, 그래서 다시 돌아가야 한다고 생떼 쓰다 보니, 잘못 살아온 듯싶고, 남보다 불행한 것 같고, 자꾸만 후회하는 게 아닐까. 왔던 봄이 또 가고 있다. 올해의 봄은 내년에는 마주칠 수 없다. 보내고 난 뒤 안타까움과 탄식으로 보내지 말아야겠다 하루 하루 모든 날을 의미 있는 시간으로 보내기야 힘들겠지만, 한번 쯤은 반짝이는 시간 갖기를 소망해 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