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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필의 돋보기]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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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필의 돋보기]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다
  • 최승필 지방부국장
  • 승인 2024.01.07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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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필 지방부국장

법이 제대로 행해지지 않는 것은 위에 있는 사람부터 법을 어기기 때문이라는 뜻의 ‘법지불행자상정지(法之不行自上征之)’라는 말이 있다.

중국 전국시대(戰國時代) 진(秦)나라의 법가(法家)를 대표하는 정치가이자 개혁·사상가인 상앙(商)이 한 말이다.

‘사기’에 따르면 어릴 때부터 법으로써 나라를 다스리는 학문인 ‘형명학(形名學)’에 관심이 컸던 상앙은 진나라의 군주였던 진효공(秦孝公)의 절대적인 신임 아래 새 법령을 반포(頒布)하고, 시행했으나 법이 너무 번거롭고 무거워 당시 대신과 백성들의 불평불만이 많았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 상앙을 좋지 않게 생각했던 태자(太子)는 고의로 법령을 위반했다.

상앙의 지나친 조치에 불만이 컸던 백성들의 의사를 반영하고자 하는 의도로, 백성들을 대표해 직접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하지만 상앙은 노여워하면서도 오히려 좋은 기회다 싶어 “법이 행해지지 않는 것은 윗사람이 먼저 범하기 때문”이라며, 태자를 법으로 다스리려 했다.

그러나 태자는 왕의 뒤를 이을 사람이기에 처벌하지 못하게 되자 그 법을 제대로 시행하고자 한다는 명목하에 태자의 스승인 태부(太傅) 공자건(公子虔)을 지도를 잘못한 책임을 물어 처형하고, 공자건의 스승인 공손가(公孫賈)의 이마에도 먹물을 넣었다.

이 소문이 백성들 사이에 퍼져나가자 그 후부터는 진나라 백성으로서 감히 새 법을 따르지 않은 이가 없었고, 새 법령을 10년 동안 유지하자 진나라 백성으로 좋아하지 않을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길에 떨어진 물건을 줍는 이가 없었고, 산에 도적이 없었으며, 집은 넉넉하고 인구도 늘어난 가운데, 나라를 위한 충성심도 더욱 높아갔고, 사사로이 다투는 일도 없어졌기 때문이다.

상앙은 법가적인 입장에서 많은 법을 제정해 국가통치의 도구로 삼았으며, 법 시행은 다소간의 무리가 따르더라도 철저하게 시행한 인물이다.

이 이야기 속에는 도불습유(道不拾遺)라는 말도 나온다. ‘사람들이 너무 무서워 길에 떨어진 물건을 줍지 않는다’는 뜻이지만 ‘사람들이 하나같이 선량하고 바르기 때문에 길에 물건이 떨어져 있어도 줍지 않는다’는 말의 태평시대(太平時代)를 나타낼 때 사용된다.

최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불의의 피습을 당한 후 우리 정치권에서는 가짜뉴스 및 음모론에 대해 날카로운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 대표는 지난 2일 오전 10시 25분 부산 강서구 대항동 가덕도 신공항 부지를 방문, 기자들과 만나 질의 응답을 마친 뒤 차량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흉기를 든 60대 김모 씨에게 피습됐다.

이 대표의 피습 직후 많은 극단 유튜버들이 각종 정치적인 음모론과 배후론, 가짜뉴스를 쏟아내며 정치적인 갈등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민주당 지도부가 ‘정치적 해석은 하지 말라’는 당부에도 불구, 일부 의원 등이 매우 부적절한 발언 등으로, 여야 갈등을 부추겼다.

강성 친명(친이재명)계인 이경 민주당 전 상근부대변인은 자신의 폐이스북에 “이 대표가 부산 방문 중 습격을 당했다”며 “대통령이 민생은 뒷전이고 카르텔, 이념 운운하며 국민 분열을 극대화 하니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거 아니냐”고 했다.

또, 안민석 의원은 이낙연 전 대표의 신당 명분은 이재명으로, 국가 사회적인 아젠다가 없는데, 병석에서 수술하고 있는 이재명 대표를 공격할 수 있겠느냐며, (피습사건은) 정치판이 흔들릴 수 있는 커다란 변곡점이 될 것이라고도 했다.

‘코인 사태’로 민주당을 탈당한 김남국 의원은 폐이스북에 “정치인에 대한 단순한 폭력이 아니라 계획된 살인미수에 해당하는 전대미문의 사건”이라며 “최악의 정치 테러”라고 했다.

이 같은 언급은 이 대표의 피습사건을 아전인수(我田引水)격으로 해석하고 있는 매우 부적절한 발언이라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극우·극좌 성향의 가짜뉴스가 쏟아졌고, 이에 동조하며, 정쟁을 일으키는 이 같은 정치인들에 대한 비난의 여론도 거셌다.

이 같은 극단으로 치닫는 정치, 상대를 악마화하는 정치가 불신과 혐오·증오를 부추기고, 결국 흉기 피습사건 등 비극적인 상항을 만들었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민주당 의원들은 지난 3일 국회에서 열린 비상 의원총회에서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자유로운 정치활동을 위축시키는 모든 종류의 폭력과 혐오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정성호 의원은 “민주주의가 무너지는 과정에서 가장 결정적 징후는 상대방에 대한 관용의 정치가 실종되는 것”이라며 “상대 정당에 대한 자기 견해와 달리하는 사람들을 악마화하는 데 정치인들이 앞장서는 게 아닌가 걱정된다”고 했다.

또,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는 “여야 모두 독버섯처럼 자라난 증오 정치가 국민께 악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인정하고, 머리를 맞대 정치문화를 혁신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그는 “다수의 국민은 정치에 더 등을 돌렸지만 극단적인 지지자들은 더 격렬히 정치적 갈등에 감정을 이입해 상대 정치인을 증오하게 됐다”고도 했다.

서병수 의원은 “상대방을 증오하고 혐오 부추겨서 이익을 챙기겠다는 정치문화부터 해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팬덤정치’는 대다수 국민들의 민심이나 상식에 의한 정책이나 입법행위가 이뤄지는 정치 행위가 아닌 극성 지지자들의 입김과 이득만 반영되는 정치 행위다.

이번 흉기 피습사건은 극단적인 팬덤정치·증오정치의 산물이다. ‘윗물이 흐리고 탁하면 아랫물도 깨끗하지 않다’는 뜻의 ‘상탁하부정(上濁下不淨)’이라는 말이 있다.

국민이 간절히 바라는 ‘태평시대’는 진영에 매몰된 여야의 극단적 대결 정치와 증오의 정치언어들이 사라질 때 가능하다.

[전국매일신문] 최승필 지방부국장
choi_sp@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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