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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읽는 詩 22] 대못을 박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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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읽는 詩 22] 대못을 박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길
  • 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 승인 2020.10.21 11: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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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효 시인(1956년생, 본명은 ‘창식’)
충남 논산 출신으로 동국대 국문과 졸업, 1984년 ‘현대문학’ 추천으로 등단.

<함께 읽기> 요즘 시는 대체로 길다. 그래선지 이렇게 짧으면서도 강하게 ‘확’ 하고 가슴에 안기는 시를 필자는 참 좋아한다. 짧아 외우기가 쉬워 좋고 많은 뜻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슴에 못 하나 박아놓지 않고 사는 사람이 어디 또 있을까만은 세상사 갑질 사회에서 당한 울분의 못에서부터, 부모에게 비수처럼 박은 불효의 못, 자식에게 수도 없이 박은 강요의 못, 게다가 스스로의 가슴에 망치질한 자승자박의 못까지.

내 가슴 깊이 박히고 남의 가슴에 못을 박은 적이 많은 필자는 이 짧은 시를 대한 순간 갑자기 먹먹해졌다. 그리고 '글쟁이'니까 자위하면서도 웬지 부끄러워진다.

"생의 가장 뜨거운 부분"에 걸린 못이 너무 많아 굳이 박아야 했다면 잔못만 박았어도 될 걸 대못을 박아서도 그렇고, 그 못이 할퀸 생채기를 기억못해 더욱 그렇다.

어릴 때 아버지에게 순종했지만 머리가 커지면서 대드는 일이 많아지며 아버지 가슴에 대못을 박았던 필자다. 아버지 또한 평소 남들에게는 잘 대해주시다가도 가족들에게는 꼭 모진말로 못을 박았다고 생각이 든다.

어릴적 필자는 절대로 아버지를 닮지 않겠다고 맹세했건만 어느새 그대로 따라 모든 이들에게 못을 박으면서 살았음을 뒤늦게 사 깨닫게 된다.

"생의 가장 뜨거운 부분"에 박힌 못. 이걸 상처로 여기기보단 훈장(특종)으로 여기며 살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영원히 아물지 못하도록 만든 상처, 그 아픔과 그 외로움과 그 '싸한' 맛을 끌어안고 살아가야 함이 자꾸 사람 사이를 멀어지게 하는 것 같다.

이 시를 읽으며 한 번쯤 내 생애 가장 뜨거웠던 부분이 뭔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함께 읽으시는 독자분들도 아마 필자처럼 떠올릴지 모르겠다.

못 하나 박지 못하도록 미지근하게 살지만 않았다면, 내 삶의 가장 굳건한 기둥으로 든든히 박혀 "그 못을 차마 뽑아버리지 못하는 것은" 남에게 못을 박는, 특히 대못을 박는 일만은 없었으면 좋았으련만. 하지만 대못을 박지 않으면 거기 걸어 놓았던 모든 진리가 땅에 떨어져 내리는 세상사 아니던가.

 

[전국매일신문] 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sgw3131@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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