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지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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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지붕
  • 전국매일신문
  • 승인 2021.02.17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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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철 김포시 통진읍 도사리 꽃씨맘씨농장주

나탈레와 루이사는 결혼을 했지만, 사방 벽에 지붕이 얹혀진 오막살이 한 채도 없었다. 전후의 이탈리아엔 폐허 속에 주택사정이 열악했다. 자기 땅이 없는 사람들이 국유지나 사유지에 단속의 눈을 피해 무허가 집을 짓는데, 지붕만 얹어놓으면 더 이상 단속은 못하고 약간의 벌금만 부과했다.

집이 없어 낙담하던 루이사가 임신을 했다. 집의 필요성을 깨달은 나탈레는 철도변 시유지에 불법 건축물을 짓는다. 밤새 집을 지어 아침에 단속이 나오기 전까지 지붕만 얹어 놓으면 철거를 못하는데, 지붕을 채 얹기도 전에 날이 밝아 단속경관이 나왔다.

그 순간 임신한 아내는 침구를 방안에 던져 놓고, 구경꾼의 아이를 빼앗아 안고 집안에 들어가서 경관을 쳐다봤다. 경관은 하늘을 훤히 뚫린 공간을 쳐다보며 “그러나 벌금은 내야하오.”라는 말을 남기고 돌아섰고 나탈레와 루이사는 힘찬 포옹을 했다. 빗토리오 제시카 감독의 <지붕>이라는 영화의 한 장면이다.

우리 부부역시 결혼식을 마치고 신접살림을 틀었던 집은 토담이었다. 짚으로 이엉 엮어 씌운 지붕은 썩어서 장마철이면 처마 밑으로 간장물이 떨어지듯 검은 물이 떨어 졌다. 영락없는 아프리카 통인들의 집으로 착각할 만 했다. 북향을 바라보며 입 벌린 대문은 한겨울의 삭풍을 집안으로 끌어들였고, 겹겹이 발라진 천정의 도배지는 떨어져 펄럭거리며 방안의 기온을 끌어내렸다.

새마을 연탄보일러는 밤새 배 앓는 소리를 내며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해 기나긴 겨울밤을 이불을 겹겹이 덮고 자게 만들었다. 음식의 기름 냄새라도 풍기는 날이면 쥐들은 등상으로 시렁으로 유별나게 뛰어다녔고, 허기진 배를 채우지 못한 앙갚음인양 목재기구를 갉아댔다. 부엌의 식기들은 연탄가스로 부식되어 갔다.

어느 날 땅주인이 땅을 팔아서 우리 내외는 그 집을 나오게 되었다. 전세금도 부족해 딱히 갈 곳이 정해져 있지 않은 상태였다. 보다 못한 처남이 이사를 가며 살고 있던 집을 우리에게 넘겨주었다. 그 집은 팔이 긴 사람이 껴안아서 옮겨도 될 정도로 작았다.

집 장사꾼이 잇속을 챙길 목적으로 지은 날림집이라 단열이 제대로 되지 않아 방안에서 성냥불을 켜대면 불꽃이 나부낄 정도였다. 이곳에서도 추위는 악연처럼 우리 부부를 감기와 오한으로 들볶았다. 그렇지만 이 집에 살았던 사람들은 이사 후에 다 잘 산다는 미신에 가까운 말을 부적처럼 믿고 희망을 품었다.

식구와 가구가 늘어나면서 집이 좁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집을 넓히기로 마음먹고 돈이 생기는 대로 자재를 하나둘 사들였다. 농한기 때 집 평수를 넓혀가며 혼자서 집수리를 했다. 그런데 무허가로 하다 보니 영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엊그제 동네에서 기존의 낡은 변소건물을 헐고 새로 짓는데, 무허가라고 부숴놓은 터이라 가슴이 타들어 갔다.

토지주가 보면 집을 못 고치게 제동을 걸지도 모르겠고, 단속 공무원의 눈에라도 띄면 무허가라고 부숴버릴 일이다. 눈 가리고 아웅 하듯이 포장을 얻어다 집주위에 둘러쳤다. 그 안에서 일을 하려니 좀 더운가? 중동 근로현장의 더위만큼이나 했다. 지붕만 얹어놓으면 별로 문제가 없을 것 같았다. 본래의 지붕 뜯어내고 새로이 지붕 얹는 일을 공무원들이 쉬는 일요일에 하도록 했다.

공사장에 일 나가는 읍내 형님 되는 사람을 반강제로 불러와서 일을 시작했다. 나는 영화의 나탈레가 되었고, 읍내 형님은 나탈레의 친구가 되어서 더운 여름날 일요일 하루 만에 일을 마치려고 연신 땀을 흘리며 쉬지 않고 지붕을 얹었다. 게딱지같은 집하나 수리하는데도 가슴 두근거리며 하는데, 그린벨트나 수자원보호구역에 아무렇지도 않게 성곽 같은 집을 짓는 사람들의 권력이 부러웠다.

지붕위의 두 사람은 영화 속의 주인공들처럼 쉬지 않고 지붕을 뜯어내고 새로 씌우는데, 아내는 밑에서 근심어린 표정으로 쳐다보는 것이, 아마도 단속 공무원이 나오더라도 영화 속의 경관 같은 인정이 있는 사람이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 같았다. 별이 뜬 그날 밤 우리 부부는 지붕에 소리 없이 내리는 이슬을 쳐다보며 두 손을 마주잡고, 나탈레와 라이사의 흉내를 내느라 포옹을 해봤다.

[전국매일신문 기고] 유재철 김포시 통진읍 도사리 꽃씨맘씨농장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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