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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우리 동네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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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우리 동네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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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08.04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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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철 김포시 통진읍 도사리 꽃씨맘씨농장주

김포 하성에서 일을 보고 한강 제방도로를 달려오는데 보름달 뜨는 것이 강물에 어른 거렸다. 달빛에 어른거리는 잔물결을 보노라니 이바노비치의 ‘다뉴브강의 잔물결’이 생각났다. 어렸을 적 강변에서 불렀던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라는 김소월의 시도 생각났다.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 빛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그랬다! 그 노래의 가사처럼 당시에 내가 살던 동네의 한강에는 금모래가 하얗게 깔렸고, 강섶에는 갈대 잎이 사철 바스락거렸다.

물 건너 고양시의 산과 강변의 집들과 강둑의 포플러 나무들이 강물에 거꾸로 비치고, 강변의 회벽 칠한 교회의 덩그렁 거리는 종소리가 강물 위를 건너왔다. 바닥까지 보이는 맑은 물이 마치 호수처럼 잔잔하며 소리 없이 흐르는 강위에 고기잡이배들은 졸고 있는 것처럼 미동도 않고 있었다.

강둑에 앉아서 보고 있노라면 호밀밭 너머로 보이는 강물 위로 흰 돛과 붉은 돛을 단 배들이 바람을 가득안고 행주산성 쪽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걸 볼 수 있었다. 우리들은 황포 돛을 단배가 지나가면 빨간 배요, 흰 광목천 돛을 단 배가 지나가면 하얀 배 지나간다고 말했다.

지금은 강 옆으로 제방도로가 개통되어 자동차들이 줄을 잇고 달리는데 내가 어렸던 그때에는 사람들이 다녔던 흔적과 마차 바퀴자국으로 패인 길만이 가르마처럼 제방위에 길게 그어져 있었다. 둑 위에 소들이 배설해 놓은 쇠똥 옆으로 흙이 봉긋이 솟은 곳을 파보면 쇠똥경단 뒤로 까만 쇠똥구리가 있어서 그것을 잡아서 장난감으로 놀고는 했다.

둑을 내려가면 우리들 키의 두 배나 됨직하게 자란 호밀이 바람에 가는 허리를 내맡긴 채로 흐늘거렸다. 우리들이 호밀밭 사이를 숨바꼭질하듯 지나가면 호밀밭 고랑에서 알을 품고 있었을 법한 종달새가 인기척에 놀라 하늘로 솟아올라서 자지러지는 날갯짓을 하며 울어대기도 했다. 옆의 감자밭에는 감자 꽃 색을 띤 나비가 조개껍데기 벌린 것과 흡사한 모양으로 날개짓을 해대며 날아다녔다.

강변의 아람드리 포플러 밑에다 옷을 벗어 놓고는 그릇 하나씩을 들고 강으로 조개를 잡으러 갔다. 갈대 잎이 부스럭거리는 갈대숲을 지나서 썰물로 금모래가 드러나며 모래밭에서 잡는 조개는 어른 손톱만큼이나 컸다. 흙탕물도 일어나지 않는 모래밭물은 가랑이 사이로 노란 조개를 비추어 주기도 했고, 우리들은 그물을 떠서 먹기도 했다.

우리들은 조개잡이보다도 물장난이 더 좋아서 연신 첨벙대며 물장난치며 놀다가 입술이 새파래져서야 나와 옥수숫대를 하나씩 비틀어 꺾어서 단물을 빨아먹고는 했다. 나이가 들면서 우리들은 썰물 때 드러나는 모래섬까지 건너갈 수 있는 수영 실력을 자랑하고 싶어서 목숨을 담보로 무모한 짓을 하기도 했다. 강 가운데 커다란 무인도가 있었다. 가까이 보이기는 했지만 거리가 약 1킬로미터는 되었다. 그 섬까지 수영으로 건너간 사람들이 동네에 몇 사람이 있었다.

무인도를 한 바퀴 도는 시간은 족히 두 시간 정도는 걸렸다. 그 섬에 갔다 온 사람들의 말로는 오리 알이며 온갖 철새 알들이 바닥에 하얗게 깔려있어 발걸음조차 떼지 못할 정도였다고 했다. 그 섬에는 노루도 뛰어다니며 그야말로 야생 천국이라고 했다.

기다리던 여름방학 때는 우리들은 강가에서 매어 있던 배를 타고 강을 건넜다. 밀물에 섞여 밀려오는 고기떼를 보고 무척이나 놀랐다. 고기는 물속으로만 다니는 줄 알았는데, 팔뚝만 한 고기가 물을 차며 날아오르는 것이 장관을 넘어 겁이 다 났다. 바다에 살던 연어가 알라스카의 강물을 메우듯 몰려오는 것을 영화에서 본 적이 있는데, 아마 그 정도쯤은 되는 것 같았다.

세월이 흘러 지금의 강에는 어린 시절의 허클베리핀을 닮은 모험심을 유발시켰던 무인도는 없어진 지 오래였다. 강 상류로 댐이 생기고 모래 유입도 적어져서 강바닥에는 시커먼 뻘 흙이 쌓였고, 강물은 한 치 속이 보이지를 않았다. 그래도 한강하구는 멸종 위기종 및 보호 야생 동·식물이 서식하는 자연생태의 보고(寶庫)이며, 밀물과 썰물이 겹치는 곳이다. 또 반가운 것은 예전보다 물이 맑아져서 사라진 어종들이 다시 강에서 헤엄친다는 것으로나마 위안을 삼았다.

[전국매일신문 기고] 유재철 김포시 통진읍 도사리 꽃씨맘씨농장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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