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매일신문
지면보기
 표지이미지
지방시대
지면보기
 표지이미지
[윤병화의 e글e글] 복수불반분(覆水不返盆)
상태바
[윤병화의 e글e글] 복수불반분(覆水不返盆)
  • 전국매일신문
  • 승인 2021.11.09 16:2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윤병화 성남미래정책포럼 이사장

엎지른 물은 다시는 물동이로 돌아 가지 못 한다. 다시말해 한 번 저지른 일은 다시 돌이킬 수 없다. 한 번 헤어진 부부는 다시 돌이킬 수 없고, 한 번 헤어진 벗은 다시 만나지 못하게 된다는 뜻이다. 

중국 주(周)나라를 세운 '무왕' (武王)의 아버지, '문왕'(文王) 의 시호를 가진 ‘서백’이 어느 날 황하강 지류인 위수로 사냥 나갔다가 피곤에 지쳐 강가를 거닐던 중 낚시를 하고 있는 초라한 행색의 한 노인을 만났다. 수인사를 나누고 잠시 세상사 이야기를 하다가 서백은 깜짝 놀라고 만다.  

초라한 늙은 시골 노인이 외모와는 달리 식견과 정연한 논리가 범상치 않았다. 단순히 세상을 오래 산 늙은이가 가질 수 있는 지식 정도가 아니라 깊은 학문적 지식을 바탕으로 한 뛰어난 논리였다. 

잠깐의 스침으로 끝낼 인연이 아니라고 생각한 서백은 노인 앞에 공손하게 엎드려 물었다.

"어르신의 함자는 무슨 자를 쓰십니까" "성은 강(姜)이고 이름은 여상(呂尙)이라 하오"

"말씀하시는 것을 들어 보니 제가 스승으로 모셔야 할 분으로 여겨집니다. 많은 것을 배우고 싶습니다" "너무 과한 말씀이오. 이런 촌구석에 사는 농부가 뭘 알겠소"

‘강여상’은 거듭 사양을 했으나, 서백의 끈질긴 설득으로 끝내 그의 집으로 따라갔다. 그때 강여상은 끼니 조차 잇기 함든 곤궁한 상태였다. 그런 그에게 못 견디어 아내 ‘마씨’ 마저 집을 나간지가 오래됐다. 

강여상은 서백의 집으로 따라 가 그의 아들 ‘발’의 스승이 돼 글을 가르쳤다. 그 발이 바로 주나라를 창건한 무왕이고 강여상은 주나라의 재상이 되어 탁월한 식견과 놀라운 지도력을 발휘했다. 

강여상이 어느 날 가마를 타고 행차를 하는데, 웬 거지 노파가 앞을 가로 막았다. 바로 자신을 버리고 떠났던 아내 마씨였다. 남편 여상이 주나라 재상이 됐다는 소식을 듣고 천리 길을 걸어서 찾아온 것이다. 마씨는 땅에 엎드려 울면서 용서를 빌었다.

강여상은 하인을 시켜 물을 한 동이를 떠 오게 한 후 마씨 앞에 물동이를 뒤짚어 엎었다. 물은 다 쏟아지고 빈 동이는 흙바닥에 나뒹굴었다. 그런 후 마씨에게 "이 동이에 쏟아진 물을 도로 담으시오. 그렇게만 한다면 당신을 용서하고 집에 데려 가겠소"

마씨는 울부짖으며 말했다. "아니! 한 번 엎질러진 물을 어떻게 도로 담습니까 그것은 불가능 합니다"

강여상은 그 말을 듣고는 "맞소. 한 번 쏟은 물은 주워 담을 수 없고 한 번 집과 남편을 두고 떠난 아내는 다시 돌아올 수 없소" 마씨는 호화로운 마차에 올라 멀리로 떠나가는 남편 강씨를 멍하니 바라보며 눈물만 흘렸다. 

노인 ‘강여상’이 바로 낚시로 세월을 낚았다는 ‘강태공’이다. 이 "복수불반분"의 이야기는 긴 세월 동안 전승돼 오늘날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조선 숙종 때 작자 미상의 고전소설인 ‘옥단춘전’ (玉丹春傳)에 한 마을에 ‘김진희’와 ‘이혈룡’이라는 같은 또래의 아이 두 명이 있었다. 둘은 동문수학하며 형제같이 우의가 두터워 장차 어른이 되어도 서로 돕고 살기로 언약했다.

커서 김진희는 과거에 급제해 평안감사가 됐으나, 이혈룡은 과거를 보지 못하고 노모와 처자를 데리고 가난하게 살아가던 중 평양감사 된 친구 진희를 찾아갔지만 진희가 만나주지 않았다.

하루는 연광정(鍊光亭)에서 평양감사가 잔치를 한다는 말을 듣고 다시 찾아갔으나, 진희는 초라한 몰골의 혈룡을 박대하면서, 사공을 시켜 대동강으로 데려가 물에 빠뜨려 그를 죽이라고 한다.

이때, ‘옥단춘’이라는 기생이 혈룡이의 비범함을 알아보고 사공을 매수, 혈룡을 구해 그녀 집으로 데려가 가연(佳緣)을 맺는다. 그리고 옥단춘은 이혈룡의 식솔들까지 보살펴 준다.

그후 혈룡은 옥단춘의 도움을 받아 과거에 급제, 암행어사가 돼 걸인행색으로 평양으로 간다.

연광정에서 잔치하던 진희가 혈룡이가 다시 찾아 온 것을 보고는 재차 잡아 죽이라고 하자, ‘어사출도’를 해 진희의 죄를 엄하게 다스린다. 그 뒤 혈룡은 우의정에까지 오른다. 어린 날의 맹세를 생각하며 찾아온 이혈룡을 멸시하고 죽이려 한 김진희는 겉으로는 우의를 내세우며 자신의 체면과 이익을 독점하기 위해 우정을 헌신짝처럼 버리는 양반층의 순겨져 있는 추악하고 잔인한 이중적인 본래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강태공과의 천생연분을 함부로 끊은 아내 마씨와 이혈룡과의 친구간 우애를 칼로 무자르듯 잘라버린 김진희는 모두 말로가 매우 비참해졌다. 이것은 상식이다.

연분과 인연과 우정의 맺힌 끈은 자르는 게 아니라 푸는 것이 지혜롭다. 삶에서 생긴 고리도 함부로 끊는게 아니고 푸는 것이다. 일단 끊어 버리면 다시는 돌이킬 수 없다.
사랑도 그렇고, 우정도 그렇다.인연과 연분을 함부로 맺어도 안 되지만, 일단 맺은 인연이나 연분을 절대 쉽게 끊으려 해선 더욱 안 된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처럼 연(緣)을 함부로 맺고 또 마구 자르는 것은 무식한 자의 몰상식한 소치에 불과하다.

사랑과 우정 등 인연의 진정한 가치는 '어떻게 끊어 내느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연륜에서 생긴 매듭을 어떻게 풀어 가느냐,에 달려있다. 여기서 '군자'와 '소인배' 모습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대부분의 소인배는 인연과 연분을 마구 끊는 큰 실수를 저지르고는 '자신은 아무 잘못이 없는데 상대가 잘못했다'는 '독설'로 상대를 공격하는 잔인성을 드러내고 만다.

자신의 과오는 모른 채 나를 그 지경에 빠뜨린 상대방 탓을 하는 사람은 언제나 똑 같은 경우에 맞딱뜨리게 돼 끝내는 허방에 빠져들고 만다.
 
사랑과 우정에 혹시라도 얽힌 매듭이 생겼다면 하나 하나 지혜롭게 풀어 나가야한다. 그게 숱한 인연과 연분속에 더불어 사는 지혜로운 삶이다.  

잠시의 소홀로 연을 함부로 끊어버리면 양쪽 상대 모두 비참해지고 인간성마저 추악하고 피패해 진다.

나이가 들수록 연분과, 인연과, 우정을 무 자르듯 잘라내는 '불학무식'(不學無識) 상태에서 벗어날 줄 알아야 아름답게 늙어갈 수 있다.

우리가 만든 인연에 매듭이 생기면 더 오래 인내하면서 풀어 나가는 지혜로운 습관을 습득한 지성인만이 인생의 최종 승리자가 된다.

[전국매일신문 칼럼] 윤병화 성남미래정책포럼 이사장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