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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읽는 詩 49] 슬픈 운명의 채식주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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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읽는 詩 49] 슬픈 운명의 채식주의자
  • 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 승인 2021.11.17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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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택수 시인(1970년생)
전남 담양 출신으로 경남대 국문과 졸업.199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함께 읽기> 소가죽으로 만든 북을 치는 소리를 들으며 ‘소’와 ‘어머니’의 모습을 함께 떠올리며 엮어나가는 시라 하겠다. “소는 죽어서도 매를 맞는다 / 살아서 맞던 채찍 대신 북채를 맞는다” 소는 참 불쌍한 동물이다. 살아서는 인간을 위해 수레나 쟁기를 끌다 주인의 채찍을 맞고 죽어서는 부위별로 팔려나가고 또 가죽은 북이 돼 북채로 맞는다.

 “살가죽만 남아 북이 된 소의 / 울음소리, 맞으면 맞을수록 신명을 더한다” 살아서도 맞지만 죽어 북이 되어서는 더 얻어맞는다. 맞을수록 그 소리가 더 사람의 신명을 돋 우게 하는 역설. 인간의 논리로 보면 당연한 일이나 소의 입장에서는 정말 억울하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얻어맞으니 말이다.

“노름꾼 아버지의 발길질 아래 / 피할 생각도 없이 주저앉아 울던 / 어머니가 그랬다” 소가 어머니로 바뀐다. 아니 어머니가 바로 소다. 땡볕에 나가 남의 집 밭일거들며 마련한 돈은 노름꾼 아버지에게 다 빼앗기고, 게다가 술주정이라도 하면 발길에 차이기도 한다.

더욱 딱한 노릇은 소가 맞을수록 신명을 돋우듯 어머니도 애먹이던 서방이 병들면 내팽개쳐야 좋으련만 “머리를 풀어헤치고 울던 울음에도 / 저런 청승맞은 가락”처럼 울고있으니, “살가죽에 와 닿는 아픔을 되새기며 / 둥 둥 둥 둥 지친 북채를 끌어당긴다 / 끌어당겨 연신 제 몸을 친다” 소리꾼이 소리를 할 때 쇠북치는 고수의 장단에 맞춘다. 그 소리에는 한(恨)이 담겨야 제대로 된 소리꾼으로 대우받는다.

"채식주의자의 질기디 질긴 습성대로“ 소와 어머니는 질기고 고단한 삶의 숙명을 받아들인다는 면에서 동일한 존재다. 조선의 어머니들은 가부장적 구조 하에서 일방적으로 희생을 강요당하고도 말 한마디 못한 채 순종하며 살았다.

살아서 채찍을 맞으며 남을 위해 몸 바친 삶을 마치고도 가죽만 남아 북채를 끌어당기는 소나 발길 질 해대는 아버지를 피하기보다는 주저앉아 받아들이는 어머니. 이들은 공통적으로 채식주의자일 수밖에 없어 아프고 고단한 삶을 운명처럼 온몸으로 끌어안고 소리를 낸다. 문득 아버지에게 무조건 순종하며 살던 채식주의자 우리 어머니가 생각나는 오늘이다.
 

[전국매일신문] 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sgw3131@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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