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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화순의 나물이야기] 겨울에 제격인 시래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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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화순의 나물이야기] 겨울에 제격인 시래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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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12.26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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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전통식품명인 남양주시 하늘농가(주) 대표 고화순

시래기는 푸른 무청을 말린 것을 칭한다. ‘시래기’라는 이름은 ‘쓰레기’에서 유래됐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이는 근거 없는 속설이다. 한편 인도에서 건너와 고조선을 세웠다는 고대 아리안어의 ‘시라게(silage; 살아있는 초목)’에서 유래됐다는 설이 좋은 뜻에서 유력하다. 무는 전 세계적으로 재배되는 채소로 원산지는 중앙아시아로 추정되는데 우리나라에는 불교의 전래와 함께 삼국시대부터 재배되기 시작했다.

시래기는 싱싱한 무에서 나온 줄기로 푸른빛을 보이며 잎이 연한 것이 좋다. 제품이 변질되어 썩은 냄새 또는 곰팡이 냄새가 나는 것, 공기 중에 오랫동안 노출되어 상품이 마르거나 변색된 것은 안 된다. 좋은 무청을 골라 그늘에 말려 서늘하고 통풍이 잘되는 곳에 보관해야 비타민 손실이 적다.

푸성귀가 겨울 찬바람을 맞으며 완전히 말라야 시래기가 된다. 일교차가 커야 시래기가 얼고 녹기를 반복하며 맛있어진다. 최소 3번은 얼었다 녹기를 반복해야 맛이 살아난다고 한다. 일교차가 20도 이상 벌어지고 해발 300~500m 분지의 강원도 양구 펀치볼 시래기가 유명한 이유다. 양구시래기는 소비가 많아져 잎과줄기가 연하고 뿌리는 작은 시래기 생산 전용 무까지 재배하고 있다.

시래기는 채소를 먹기가 어려운 겨울철에 모자라기 쉬운 비타민과 무기질, 식이섬유 등 부족한 영양분을 보충해주는 음식이다. 시래기의 원료인 무청은 무 뿌리보다 비타민 C, 식이섬유, 칼슘, 칼륨, 엽산 함량이 높으며 그에 따른 효능·효과 또한 무 뿌리보다 월등하다. 칼슘의 경우, 무청 100g 당 칼슘 함량이 무 뿌리보다 약 10배가량 많다. 암을 억제하는 성분이 무 뿌리보다 무청에 많이 함유되어 있으며 이러한 성분들은 위암, 간암, 폐암, 췌장암, 유방암, 결장암 등을 억제하는 효과를 보인다.

특히 시래기의 대표 성분인 식이섬유는 위와 장에 오랜 시간 머물러 포만감을 주고 배변활동을 도와 체중관리 및 변비에 도움을 준다. 또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출 뿐만 아니라 장내 독소와 노폐물을 배출시켜줘 대장암 예방에도 효과가 있다. 철분이 많아 빈혈에 좋고, 칼슘과 비타민 D가 풍부하여 뼈를 튼튼하게 하며 골다공증 예방에도 도움을 준다.

시래기는 오래 푹 삶아 찬물에 우렸다가 다양한 요리에 쓰인다. 구수한 맛과 부드러운 촉감이 일품이다. 시래기에 쇠고기나 돼지고기를 다져 넣고 갖은양념을 하여 기름에 볶아 시래기나물로 요리한다. 특히 정월대보름에는 겨울을 끝내고 봄을 맞이해 오곡밥과 묵나물을 해 먹었는데, 묵나물에는 시래기가 꼭 들어갔다.

시래기를 적당한 길이로 썰어서 된장을 걸러 붓고 쌀을 넣어 쑨 시래기죽을 만들어 입맛이 없을 때 먹으면 별미다. 또 시래기에 쇠고기, 된장, 두부 등을 넣고 시래기찌개로도 요리한다. 시래기에 된장을 걸러 붓고 끓인 시래깃국도 있다. 쇠고기를 잘게 썰어 넣거나 조개를 넣고 끓이면 더 맛이 좋다.

감자탕에 돼지의 등뼈와 함께 시래기를 흠뻑 넣어 먹는다. 이밖에도 쌀가루와 섞어서 찐 시래기떡, 콩나물․무와 함께 섞어 만든 시래기 지지미 등이 있다. 시래기는 된장과 잘 어울려 풍미와 구수한 맛을 내고 된장에 부족한 비타민을 보충해주면서 된장의 나트륨 배출을 도와 혈압을 조절해주는 궁합이 좋다. 자극적이지 않아 입에 넣자마자 맛있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지만, 순하고 깔끔한 맛이 다시 떠오른다.

시래기는 원래 가난한 이들의 음식이었다. 불과 30~40년쯤 전까지만 해도 시장에서 버려진 무청을 주워 모아 시래기죽 같은 음식을 해 먹기도 했다. 우리 문학작품에서도 시래기 관련 표현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조정래의 <태백산맥>에는 “잡곡밥에 시래깃국, 김치가 고작이었다. 한 가지 반찬이 더 오르는 경우 동치미나 무말랭이무침 정도였다”며 가난한 상황을 표현하기 위해 시래기가 등장했다.

이랬던 시래기가 이제 건강웰빙식품으로 없어서 못 먹는 음식이 됐다. 겨울엔 시래기가 어울리는 계절이다. 필요 없다고 버려지던 때도 있었지만 말없이 잠잠하게 추운 겨울을 버텨 자기 존재를 드러낸 시래기처럼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묵묵한 이들을 보살피는 겨울이 되었으면 한다. 푸대접받던 시래기가 이제야 제대로 대접을 받고 있다.

[전국매일신문 기고] 대한민국전통식품명인 남양주시 하늘농가(주)  대표 고화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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