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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의 데스크席] ‘젊은 노인’들 급증 사회적 논의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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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의 데스크席] ‘젊은 노인’들 급증 사회적 논의 필요
  • 최재혁 지방부국장
  • 승인 2022.09.15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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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 지방부국장

‘늙는다’는 말의 정확한 의미는 신체·정신적 능력이 떨어지고 전반적으로 건강이 약해지는 것이지만 흔히들 ‘나이 드는 것’과 같은 의미로 생각한다. ‘나이 드는 것’의 정확한 의미는 ‘단순히 시간이 지나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늙는다는 말은 나이 든다는 말과 크게 다르다. 다시 말해서 나이 든다고 반드시 늙게 되지는 않는다. 이처럼 늙는다는 것과 나이 든다는 것이 다른 의미지만 대부분의 경우 늙는다는 것은 곧 나이 드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이 드는 것 그 자체만으로 실제로 사람이 늙게 되고, 늙는 것으로 착각하게 된다.

연령주의(ageism)는 ‘연령을 근거로 사람의 건강상태, 능력, 생각과 태도를 판단하는 것’을 말한다. 즉, 연령주의에서는 나이 드는 것이 바로 늙는 것이라 판단한다. 연령주의는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것이고 연령주의 관련 사항들 대부분은 과학적으로 검증된 바가 없고, 과장되고, 편향되고, 부정적이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 연령주의가 사회에서 널리 인정되고 있기에 많은 노인들 자신도 그대로 받아들여 사실로 믿고, 믿는 대로 행동한다. 즉 노인들 스스로 자신을 능력 없고 기억력과 학습능력도 떨어지고, 건강도 나쁘고,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차별받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고, 계속 발전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고, 노력해도 효과가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나이 들면 다 그런 거지”, “이 나이에”, “지금 와서 해봤자” 등으로 생각하기 일쑤다.

하버드대학 심리학 교수 엘렌 랭어는 연령주의는 부정적 고정관념이며 긍정적 가능성을 좀먹게 만드는 가장 큰 원인이라 지목하고 있다. 연령주의는 나이 드는 것이 늙어가는 것으로 판단하고 “나는 할 수 있다”라는 자신감과 노력하려는 의지를 꺾게 만든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연령주의는 실제로 우리를 늙게 만든다는 것이다. 나이 들면 사람의 신체적 및 정신적 기능이나 능력이 떨어질 가능성이 높아지지만 그렇지 않을 가능성도 상당히 크다. 사회적 및 심리적 현상을 말하는 이론이나 법칙, 심지어 많은 의학적 이론이나 법칙까지도 그렇게 될 가능성이 그렇지 않을 가능성보다 좀 더 높다고 말할 뿐이므로 반드시 그렇게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요즘 65세 이하는 노인 축에도 못 낀다. 외모도 장년층 정도로 보이고 경제활동 능력도 충분한 사람이 많아서다. 보건복지부가 65세 이상 1만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0년 노인실태조사에서 응답자들은 ‘노년이 시작되는 연령’을 평균 70.5세라고 답했다. 변호사와 목사의 육체노동이 70세까지 인정되는 등 법원 판결도 이를 반영하고 있다. 70세는 넘어야 노인 대접을 받는 시대다. 주요 선진국은 고령화를 반영해 앞다퉈 노인연령 기준을 올리고 있다. 일본은 지난해 권고사항이긴 하지만 70세 정년 시대를 열었다. 일본 노년학회는 한술 더 떠 고령자 정의를 75세 이상으로 올리자고 제안했다. 독일은 2012∼2033년에 걸쳐 노인연령을 65세에서 67세로 높이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영국은 2020년 노인연령을 65세에서 66세로 조정한 데 이어 2026년에 67세로 높이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우리나라 노인 연령 기준은 만 65세다. 이 기준은 지난 1981년 노인복지법을 제정하면서 설정됐다. 이 법 제정 당시 국민 기대 수명은 66.1세였다. 당시 기대 수명을 감안할 때 노인 연령 기준은 적정했다. 우리나라 국민 기대 수명은 2020년 기준으로 83.5세다. 40년만에 무려 17.4세나 길어졌다. 하지만 노인 연령 기준은 40년 넘게 그대로다. 올해 우리나라 인구 중 노인 비율은 16.8%로 초고령 사회로 질주하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지난 6일 ‘노인 연령 기준 상향이 시급하다’는 보고서를 냈다. KDI는 평균 수명 연장에 맞춰 10년에 한 살씩 높여 나가자고 제안했다.

만 65세인 노인 연령 기준을 2025년부터 올려 2100년에 73세까지 높이자는 주장이다. 노인 연령이 현재와 같을 경우 2054년 이후 노인 인구 부양 부담이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수준에 달할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저출산·고령화 속도는 세계에서 가장 빠르다. 지난해 우리나라 합계 출산율은 0.81명으로 세계에서 가장 낮다. 반면 기대수명은 일본과 유사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아이는 줄어들고 노인 수는 늘어나면서 생산가능인구(15~64세)도 5년째 감소 중이다. 생산가능 인구 대비 노인 인구 비율인 노인 부양률도 크게 상승하고 있다. 우리나라 노인부양률은 2015년 19.4%에서 2050년 72.4%로 올라간다. 노인 연령 상향은 노동인구를 늘려 노인부양률을 줄여준다.

노인 연령 조정에 대한 여론은 호의적이다. 지난 6월 여론조사에서 국민 62%가 노인 연령 기준 상향에 찬성했다. 다만 노인 연령 조정은 기초연금·장기요양보험 등 24개 노인복지사업과 연결돼 있다. 우리나라 노인빈곤율이 OECD 1위라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정년 연장 및 일자리 확대 등 노인층의 복지 향상을 위한 다양한 시스템 개편이 함께 추진돼야 부작용이 최소화 될 수 있다. 윤석열정부는 ‘고령자 계속고용을 위한 사회적 논의’를 국정과제로 제시했다. 연금개혁에 착수한 정권 초반이 노인연령 조정의 골든타임이다. 생산연령인구 기준도 올리는 등 분야별 검토를 통해 정교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세계 최고의 저출산고령화 국가에서 젊은 노인들을 생산인구로 활용하는 건 국가와 개인 모두를 위한 일이다.

그러나 노인 기준이나 국민연금 보험료율 상향 조정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당장 은퇴를 앞둔 중장년층·고령층을 중심으로 반발이 생길 수밖에 없다. 노인 기준을 높이면 현행 60세인 정년을 더 높이는 노동개혁도 병행돼야 한다. 세대 간 충돌 등 사회적 갈등이 첨예화할 이 같은 난제를 단번에 해결할 방도는 없다. KDI 제안처럼 단계적·점진적 접근으로 사회적 부담을 최소화하면서 연착륙시키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어려운 과제지만 우리 사회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 꼭 풀어야 할 매듭이다.

[전국매일신문] 최재혁 지방부국장
jhchoi@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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