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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189] 가을에 떠나야 할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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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189] 가을에 떠나야 할 사람
  • 서길원 大記者
  • 승인 2022.10.19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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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길원 大記者

제정신이 아닌 이들로 인해 제정신의 국민들이 고통과 분노 속에 하루하루를 살지만, 계절은 위로처럼 어김없이 단풍으로 찾아오고 있다. 잠시 내려놓고 자신을 바라보라는 시간이기도 하다. 자신을 바라보게 하는 가을은 국민이 아니라 ‘안에서 썩은’ 그들에게 필요한 시간이다.

여행하기 좋은 계절이다. 일교차가 심하기는 하지만 활동하기에 이만한 날이 또 없다. 서늘 바람이 불어 흘리는 땀방울도 상쾌하다. 단풍은 아직 절정의 시간을 남겨놓고 있지만 이미 시작된 가을산은 형형색색으로 물들어가고 있다.

지방자치단체마다 가을 축제가 잇따라 열리고, 신문과 방송에서도 여행이 빠지지 않는다.

오래 전 휴가철에 유행했던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는 구호가 새롭게 와 닿는다. 휴가철은 아니더라도, 휴가를 내지 못하더라도 주말과 휴일을 이용해서라도 집을 나설 일이다.

설악산이나 내장산이 아니면 어떤가. 해외가 아니라 한들 무슨 상관인가. 가까운 뒷산이면 어떻고, 억새꽃 끝물로 지는 집 앞 들길도 좋다.

생뚱맞지만 살기 위해서라도 떠나야 한다. 떠나봐야 이 강산을 지켜 뿌리내리고 살아야 하는 이유를 알게 된다는 말이다.

지금 이 땅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보라. 제정신이라고 하기에는 제정신인 사람들이 살기 힘든 일들로 하루하루가 차고 넘친다. 

‘비속어’라고 표현되는 대통령의 언어는 지나치게 가벼우면서도 사납고, 이를 둘러싼 비난이나 옹호는 그 속이 접시에 담긴 물보다 얕다. 옹호하는 측은 그 옹호가 ‘쪽팔릴 것’같지만 천연덕스럽기만 하고, 비난하는 측은 ‘분개하는 것’ 같지만 미소 속 감춰진 이빨이 보인다.

‘국민’만 이리 붙이고 저리 붙이면 된다. 그 바보들이 국민을 바보 취급한다. 

최근 국민의힘 정진석 비대위원장은 "조선은 왜 망했을까. 일본군의 침략으로 망한 걸까"라며 "조선은 안에서 썩어 문드러졌고, 그래서 망했다. 일본은 조선왕조와 전쟁을 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가해자의 논리’라는 지적에 앞서 그의 말이 맞다면, 가리키는 손가락은 어디를 향해야 하는가. ‘안에서 썩어 문드러져 망했다’면 ‘안에서 썩은’은 누구인가. 누구라고 말은 않겠지만 국민은 아니다. ‘안에서 썩은’ 그들로 인해 국민은 재산을 잃고 목숨을 잃었을 뿐이다.

얼마 전에는 동해에서 연합훈련을 마치고 돌아갔던 미국 핵 항공모함 로널드 레이건호가 다시 동해로 돌아왔다. 반복되는 북한 도발에 대응, 다시 한미일 연합훈련을 펼치기 위해서였다. 북한은 이에 반발해 연이어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북한의 핵 실험 준비가 최종 단계에 진입했고, 국제사회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미사일 추진체 역량이 기술적 성과를 거뒀다는 유엔의 평가도 나왔다. ‘북한의 핵실험 준비가 최종단계’라는 진단이다.

한반도에서 핵전쟁이 발발할 수도 있다는 경고는 이제 가능성의 단계를 지나 현실성으로 다가가고 있다. 

그런가 하면 며칠 전에는 카카오세상이 한 순간에 무너졌다. 데이터센터 화재로 인한 카카오 '먹통' 사태로 국민의 일상이 일순간 멈춰섰다. 국민메신저인 ‘카카오톡’이 내려 앉으면서 소통이 멈추고, 카카오택시가 멈춰 국민의 발길도 멈추고, 카카오뱅크가 닫혀 국민의 경제활동도 멈췄다. IT강국의 어두운 현실이다.

금리는 ‘빅스텝’인지 ‘자이언트스텝’인지 ‘스텝’이 커지면서 애먼 국민들의 스텝이 꼬이고 있다. 금리가 오르자 집값은 바닥없이 추락하고 증권에 희망을 걸었던 개미들의 곡소리만 커지고 있다.

제정신이 아닌 이들로 인해 제정신의 국민들이 고통과 분노 속에 하루하루를 살지만, 계절은 위로처럼 어김없이 단풍으로 찾아오고 있다.

잠시 내려놓고 자신을 바라보라는 시간이기도 하다. 자신을 바라보게 하는 가을은 국민이 아니라 ‘안에서 썩은’ 그들에게 필요한 시간이다. 그렇게 걱정하고 입만 열면 들먹이는 국민이 나라를 지킬테니 제발 그들이 가을 여행을 갔으면 좋겠다. 가서, 가을 호수에 비추는 자신의 얼굴이나 한 번 보고 오라. 탐욕과 술수와 중상의 가면을 벗어버리고 한순간이라도 국민이 되어 돌아오라고 가을이 말하고 있다. 

시인 윤동주는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이라는 시에서 ‘가을이 오면 물어볼 이야기들이 있다’고 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나는 나에게/물어볼 이야기들이 있습니다//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나는 나에게/사람들을 사랑했느냐고 물을 것입니다/그때 가벼운 마음으로 말할 수 있도록/나는 지금 많은 사람들을 사랑하겠습니다//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나는 나에게/열심히 살았느냐고 물을 것입니다/그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도록/나는 지금 맞이하고 있는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하며 살겠습니다//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나는 나에게/사람들에게 상처를 준 일이

없었냐고 물을 것입니다/그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도록/사람들을 상처 주는 말과/행동을 하지 말아야겠습니다’

가서 ‘안에서 썩은’ 그 무엇을 버릴 수 없다면,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했던’ 시인의 시라도 한 번 읽어보길 바란다. 제발 ‘국민’을 들먹일 시간에 앞산에라도 한 번 다녀 오라고 가을이 익어가고 있다.

[전국매일신문] 서길원 大記者
sgw3131@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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