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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190] ‘장관직 사퇴가 폼 나는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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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190] ‘장관직 사퇴가 폼 나는 일인가’
  • 서길원 大記者
  • 승인 2022.11.16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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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길원 大記者

성역 없는 수사를 위해서는 이 장관이 ‘폼 나게 사표를 던지는 것’이 아니라 책임을 통감, 겸허히 사퇴해야 한다. 그 길만이 장관의 자리를 더 이상 욕되게 하지 않고 참사로 유명을 달리한 희생자들에 대한 진정한 사과와 반성이다. 장관의 사표는 폼 내기 위해 던지는 것이 아니라 책임을 지기 위해 던지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며칠 전 아세안 정상회의 참석차 출국하던 길에 어깨를 툭 쳐준 탓에 기운이 상승한 탓이었을까. 흔히 그러지들 않는가. 잘못을 저질러 몸 둘 바를 모르는데 오히려 선생님이 어깨를 쳐주면 학생들은 괜히 목에 힘이 들어가고 우쭐해지는 그런 거 말이다. 자책했던 잘못을 잊어버려도 좋을 만큼 사소한 일이 되는 순간이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국민들의 희생 앞에서 ‘폼 나게 사표를 던지고 싶다’고 했다. 정확히는 기자와 문자를 주고받으면서 “누군들 폼 나게 사표 던지고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겠나”고 했다.

2022년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 한복판에서 158명의 생때같은 목숨이 압사했다. 서울 용산구 이태원에 핼러윈 축제를 즐기기 위해 10여만 명이 모였지만 경찰과 구청의 안일한 대응이 불러온 참사다.

‘정부는 어디에 있었느냐’는 국민들의 울부짖음에 국민의 안전과 재난관리의 총책임자인 행정안전부 장관은 ‘폼 나게 사표를 던지고 싶다’고 답했다.

비난에 직면하자 기자 탓으로 돌렸다. “기자가 사전에 인터뷰 사실을 알려주지 않아서 기사화 될 걸 전혀 인지하지 못한 상태였다”는 것이다.

기자와 문자를 나누면서도 기사화될 줄 모르는 그렇게 어리숙한 장관이라고 믿어야 할지, 아니면 둘러대다 보니 앞뒤 안 맞는 변명을 하고 있다고 여겨야 할지 난감하다.

변명이야 그렇다 치자. ‘폼 나게’라니, 그게 국민의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주무장관이 제정신으로 할 말인가. 국민들의 집단희생 앞에서 기자가 아니라 혼잣말로도 해서는 안되는 말이다.

국민의 희생 앞에 주무장관의 자리가 욕되어도 한창 욕되고 부끄러운 자리로 변했는데, 죄책감으로 사표를 내도 시원찮을 판에 ‘폼 나게’라는 말이 나올 수 있는가.

국민의 희생과 비통 앞에서 자신의 체면과 영광스러운 ‘폼’을 생각하며 한탄하는 국가재난관리 총책임자의 천박한 발상에 그저 놀라울 뿐이다.

그는 참사에 대한 자신의 지휘 책임을 한 번도 인정하지 않았다. 책임을 인정하지 않으니 사과할 리도 없다.

오히려 참사 직후 “경찰이나 소방인력을 미리 배치해 해결될 수 있었던 문제는 아니었다”라거나 “경찰과 소방인력 배치 부족이 사고 원인이었는지 의문”이라며 책임을 온 힘으로 밀어냈다. “사고 원인 발표 전까지 선동적인 정치적 주장을 해서는 안된다”고 계엄 선포하듯 하기도 했다.

‘참사 희생자’를 ‘사고 사망자’로 표현하도록 한 것과 관련한 국회 질의에서는 “거의 참사 수준의 사고”라고 했다. 언어유희가 따로 없다. 사고도 아니고 참사도 아니고, ‘참사에 가까운 사고’는 도대체 어떤 현상을 말하며, 목숨을 잃은 국민들은 ‘희생자에 가까운 사망자’라고 불러야 하는가.

국민들은 ‘참사’라는데 장관은 ‘사고’라고 부르고 싶고, 국민들은 ‘희생자’라고 부르는데 장관은 ‘사망자’라 부르고 싶은 것이다. 책임으로부터 멀찌감치 떨어지고 싶은 장관의 마음이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반성이 없으니 부적절한 발언이 잇따르고, 모호하고 애매한 표현이 나오는 것이다.

참사 현장에서 사력을 다하고도 업무상 과실치사상 등 혐의로 입건된 최성범 용산소방서장의 책임감이 돋보이는 것은 장관의 책임감과 비교되기 때문이다.

참사를 대하는 태도나 공직자로 서의 자세가 장관과 서장은 이쪽 끝에서 저쪽 끝만큼이나 대조적이다.

최 서장은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책임질 각오가 돼 있다”며 오히려 “책임을 통감하고 아쉬움에 통탄하고 있다”고 자책했다.

이 장관이 최 서장에게 겸허히 배우고 공인의 자세를 따라잡아야 할 대목이다.

며칠 전에는 대한민국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 소방청지부가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이 장관을 직무유기 및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부실대응 혐의를 수사중인 경찰청 특별수사본부도 이 장관의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에 대해 법리검토에 착수했다.

성역 없는 수사를 위해서는 이 장관이 ‘폼 나게 사표를 던지는 것’이 아니라 책임을 통감, 겸허히 사퇴해야 한다.

그 길만이 장관의 자리를 더 이상 욕되게 하지 않고 참사로 유명을 달리한 희생자들에 대한 진정한 사과와 반성이다. 장관의 사표는 폼내기 위해 던지는 것이 아니라 책임을 지기 위해 던지는 것이다.

[전국매일신문] 서길원 大記者
sgw3131@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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