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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193] 흑두루미가 이룬 순천만의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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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193] 흑두루미가 이룬 순천만의 기적
  • 서길원 大記者
  • 승인 2023.01.18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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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길원 大記者

순천만의 흑두루미는 이제 순천만의 흑두루미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흑두루미가 됐다. 지자체의 손길에만 맡길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중앙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반가운 겨울 손님인 '흑두루미'가 올해도 어김없이 전남 순천만을 찾아왔다. 여기저기 무리 지어 날아오른 새들이 커다란 날개로 우아한 군무를 펼치고, 노랫소리는 찬 바람을 뚫고 메마른 겨울 하늘에 울려 퍼진다.

올해는 순천만을 찾은 흑두루미 개체 수가 지난해보다 3배 이상 급증한 1만 마리 안팎이라고 한다. 1996년 순천만에서 흑두루미 70여 마리가 처음으로 관찰된 이후 역대 최대 규모다. 전 세계 1만6000~1만7000여 마리가 남은 상황에서 60%가량이 순천만을 찾아온 것이다. 순천만은 흑두루미가 매년 10월이면 시베리아의 혹독한 겨울을 피해 일본 이즈미시로가는 중간 경유지에서 이제 정착지로 바뀌었다.

흑두루미의 순천만 방문이 갑작스레 증가한 것은 저절로 이뤄진 현상이 아니다. 순천시와 주민들이 흑두루미 ‘영접’을 위해 온갖 정성을 쏟고 애써 노력한 결과다. 순천시는 난개발을 막기 위해 대대 뜰에 생태계 보호지역을 설정한 뒤 전봇대를 뽑았다. 흑두루미가 날다 전깃줄에 걸려 죽는 것을 방지하려는 조치였다.

흑두루미를 위한 특별한 식탁도 마련했다. 200톤에 달하는 벼를 겨울철새 먹이로 제공했다. 먹이가 부족한 1월부터는 매주 8톤의 볍씨를 먹이로 뿌리고 있다. 순천시는 우리나라를 찾는 흑두루미가 계속 증가할 것으로 보고 조류인플루엔자(AI) 발생에 대비, 인근의 밭과 비닐하우스를 매입해 월동지도 대폭 늘렸다. 서식지 확대와 분산을 통해  AI와 같은 전염병을 사전에 예방하기 위한 조치다.

순천시가 이같이 흑두루미 관리에 노력을 기울인 결과 올들어 우리나라에서 폐사한 흑두루미는 지난 5일 기준 192마리로 집계됐다. 일본의 1367마리에 비하면 14%에 불과하다. 순천시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앞으로 토지를 추가 매입해 현재 62ha 가량인 월동지를 171ha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또 해당 지역에서 농사를 짓던 농민에겐 벼 미수확금을 보상하고 경작한 벼는 수확하지 않고 존치해 흑두루미 등 철새 먹이로 사용할 계획이다. 흑두루미의 지상낙원이 아닐 수 없다. ‘사람도 힘든 세상에 무슨 새의 낙원이냐’는 물음이 나올만 하다. 하지만 순천시는 그런 질문에 대한 명쾌한 답변을 이미 내놓고 있다. 사람과 자연이 함께 하는 세상은 서로에게 순기능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작은 지방 도시가 보여주고 있다.

생태계 서비스 지불제 사업을 시행해 농가들에게도 혜택이 돌아가도록 한 것이다. 흑두루미 영농단 참여 농가들은 벼를 수확하지 않고도 그에 못지 않는 보상금을 받으니 일석이조가 아닐 수 없다. 흑두루미는 농가가 고맙고, 농가는 흑두루미가 고마운 세상을 만든 것이다. 순천시 담당 공무원의 말을 빌리자면 이렇다. 농가에서 수확하면 1m² 당 1,320원을 벌 수 있는데, 이 단지에서는 장려금을 포함해 1,680원을 보상한다. 즉 농민들은 1m² 당 360원의 소득을 얻는다는 것이다.

천혜의 자연환경에 주민과 지자체의 노력이 더해지면서 순천만은 세계 최대 규모의 흑두루미 월동지이자 ‘인간과 자연이 함께 만들어가 가는 세상’의 이상적 가치를 보여준 셈이다. 한국뿐만 아니라 중동의 알자지라 방송, 일본 NHK방송, 중국 국영통신 중국신문, 프랑스 통신사인 SIPA등에도 소개될 정도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대한민국 국가정원 1호인 순천만이 우리나라만의 생태도시가 아니라 전 세계의 생태도시임을 증명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흑두루미는 국제자연보존연맹(IUCN)이 적색목록에 올린 멸종 위기의 희귀동물로 우리나라도 천연기념물과 멸종 위기 야생동물 2급으로 각각 지정해서 관리 중이다. 지구상에서 1개의 종이 멸종할 수 있다는 아픈 경고의 또 다른 표현이다.

흑두루미는 인간이 보호하지 않으면 ‘한 때 지구상에 존재했다’는 기록으로만 남을 수 있다. 순천만의 흑두루미는 이제 순천만의 흑두루미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흑두루미가 됐다. 지자체의 손길에만 맡길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중앙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흑두루미 뿐만이 아니다. 멸종위기 동물만이 아니다. 궁극적 목표는 인간과 자연이다. 인간이 자연을 보호할 때, 자연도 인간을 보호한다는 지극히 당연한 이치를 인정한다면 중앙정부 관심의 지원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지 않다.

순천시와 지역민이 만들어낸 흑두루미의 기적이 대한민국의 기적이 되었으면 하는 것은 필자만의 바람이 아니라 믿는다.

[전국매일신문] 서길원 大記者
sgw3131@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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